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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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앞만 보며, 달려온 당신 ! 지금은, 더 멀리 뛰기 위해 뒤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한국 전쟁이후 황폐해진 땅에,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숨가프게 달려온지 60년이 지났다. 세계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만큼, 고도성장을 이뤄냈지만, 외환위기와 수출위주의 경제성장, 외면받는 민주주의, 노사갈등, 지역갈등,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 등 다양한 문제점도 안고 있다. 서양에서는 300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이루려는 시도가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빠르게 앞만보며 달려왔다면,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달려야 할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아지즈 네신이라는 터키작가가 태어났던 때의 터키도 한국전쟁의 우리나라와 경제상황이 비슷했다.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기, 작가는 풍족해진, 소비사회의 풍조로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이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잊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자전적 소설을 썼다.빠른 사회의 변화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이웃간의 끈끈한 정, 우정, 인간의 소중함 등, 잊어가며, 잃어가는 것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작가가 털어놓는 유년시절의 추억들은 우리가 잊어가며, 잃어버린 아름다운 보석보다 소중한 가치들을 어둠 속의 촛불처럼 은은하게 비춰준다.
 
 
# 너무나 가난했던 삶, 웃음과 풍자로 풀어가는 이야기
 
 
  가난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보통 가난의 서러움과 함께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나처럼 살면 안된다는 훈계로 끝나기 십상이다. 풍자와 위트의 작가 아지즈 네신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가난해서 안타까운 순간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묘한 힘이 서려있다. 명절을 맞으면 입는 새빔 하나도 준비하기 버거웠던 어린시절, 양동이 끌고 물을 길어와야 했던 부끄러운 시절과 부자 아이에게 구박받던 에피소드와 뒤에서 싸움을 부추기지만,정작 싸움의 순간에는 비겁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동네 형의 이야기들은 슬픈 상황을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컴퓨터와 게임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추억들을, 네신의 이야기를 통해 바라본다. 가난했지만, 비굴하지 않았던 삶, 어린 마음에 많은 걸 할 수 없었던 삶이 부끄러웠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작가의 말처럼, 모두가 가난할 때 가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부자인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현실에 순응하며,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모두 부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모두가 열심히 근검절약하면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악마의 유혹같은 말에 벗어나, 어떻게 사는 삶이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삶인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이익에 조금 피해가 되더라도 공존을 위해 견딜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간다는 외면했던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실천하는 지성이면서, 자신의 모든 작품의 인세를 고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네신 재단으로 모두 기부하는 저자의 책이다. 고통과 힘겨움을 이겨내는 힘이 웃음이듯이, 가장 낮은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기에, 저자의 글들이 풍자와 웃음으로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돈이 있으면 많은 걸 누릴 기회를 가진 현대사회 일수록, 절대적 빈곤에 놓여 하루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을 잊고 살아선 안된다 생각한다.
 
  작가는 어머니가 다른 집에 빨래를 대신하며 생계를 유지한 친구가 백만장자가 된 후,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고귀한 신분이며 부모님도 고위관료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부모 세대 모두가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가난을 부끄러워 하는 삶이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는 그의 마음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가난은 벗어나고 싶은 대상이지만, 수치를 느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한다.
 
  네신의 글을 읽으며,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꿈꾸었던 세상을 다시 떠올려 본다. 가진 것의 정도에 상관없이,모두가 가난했지만 함께 나누며 살 줄 알았던 시대, 그때의 따뜻한 마음을 어떻게 유지시켜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잘 전하는 일이 지금 세대에게 주어진 책무라 생각한다. 돈이 없어 하루를 굶어 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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