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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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짜리 지폐를 볼 때마다, 매번 만나지만..
 
 
  새로나온 천원짜리 지폐에는, 퇴계 선생의 초상과 명륜당, 매화그림과 도산서원의 풍경이 담겨있다. 천원짜리 지폐를 볼때마다 매번 그를 만나지만, 유명한 성리학자 라는 점을 빼면, 아는게 거의 없다. 『아버지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 유명한 성리학자의 모습 뒤에, 가난하였지만, 가난에 지지 않은 마음의 여유를 지닌, 처가살이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의 퇴계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외부의 평가가 아닌,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는 건, 그의 글이라 생각한다. 나아감과 물러섬을 알고, 후학을 많이 키운 학자가 아닌, 토계 마을에서 시를 짓고, 농사를 지으며, 공부를 하는 일상인의 선비를 만나고 싶었다. 『퇴계 잡영』은 벼슬에서 물러나 퇴계마을에서 머물면서 지인과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풍경을 볼때마다 느껴지는 감흥을 옮긴 시를 모은 시집이다. 시집을 옮겼다기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과연, 5백년의 시간, 달라진 문화의 공백을 넘어,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감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 흘러간 시간의 공백은 꼼꼼한 주석과 유려한 산문으로 채우다.
 
 
  20년 이상 퇴계시를 번역한 공저자들의 노력과 대중이 읽기 곤란한 부분은 쉽게 산문으로 바꿔 옮긴 정성이 5백년이란 시간의 공백의 벽을 무너뜨렸다. 사서삼경, 한자를 모르더라도, 풀어쓴 산문을 읽다보면, 그 당시 퇴계가 어떤 풍경과 누구를 만나, 어떤 감흥을 만났는지 느낄 수 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꼼꼼하게 달린 주석이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될거라 생각한다. 문외한과 전공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오랜 세월 퇴계를 연구한 저자의 정성과 독자를 생각하는 배려라 생각한다.

   
  아파트나 현대의 주택보다는, 산과 정원 등의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책을 읽기를 권한다. 글 속에 담긴 정취를, 상상으로 채우는 것보다, 실제 자연과 접하면서, 감흥을 떠올린다면, 퇴계의 시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생각한다. 시에는 신하로서의 충성됨, 오래된 벗을 만난 즐거움, 토계마을에서의 일상의 삶이 잘 드러나있다. 선비라고 해서, 책만 읽는 샌님일 줄 알았는데, 주경야독, 땀과 독서가 함께 어우러진 삶을 살았고, 늘 공부의 퇴보가 일어날까 경계하는 꾸준함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천원짜리 화폐의 초상과 함께 나올만큼 매화를 사랑한 마음 또한 시에 잘 드러나 있다.
 
  관직과 명예, 부라는 세속의 가치보다는 시골의 숲 아래에서 태평성대를 즐김을 더욱 기뻐하였던 선비의 기품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일상의 풍경과 떠오르는 마음을 마음에만 담아두지 않고, 글로 적어 남겨두었기에, 세월이 흐른 후에도 한 시대를 알차게 산 선비의 일상과 함께, 그 당시의 풍경과 문화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게 된다. 조선시대에 기록문화가 발달하였다는 점을, 『퇴계잡영』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토계마을로 옮겨온 퇴계는 뜰 앞에 매화 두 그루를 심는다. 가을이 되니 매화나무는 다른 초목보다 빨리 시들어있고, 골짜기 안쪽의 빽빽하고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은 마구 섞인 모습을 서로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려는 듯 다투고 있는 모습으로 바라본다. 매화나무던지 골짜기 안쪽의 나무던지 한 차례 서리가 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고 한 번 몰아치면 잎이 빙빙 돌며 떨어지는 풍경은 절개가 굳은 나무나 무른 나무나 차이가 없다고 퇴계는 시에서 말한다. 자민만이 가진 아름다운 향기도 알고 보면 다 제 때가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남들이 모두 다 함께 알아주어야 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글귀에서, 세간의 이목에 자유로운 선비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젊은 시기에는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난 후에는 퇴계 선생처럼 조그만 공간에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자연을 느끼고, 지인을 만나고, 그 감흥을 시로 옮겨, 지금의 삶을 기록하고 싶다고 할까. 큰 벼슬과 넉넉하지 못한 재산, 하지만, 마음이 여유롭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간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삶이라는 점을 『퇴계잡영』은 시로 들려준다. 돈이 많은 걸 해결해주는 사회, 하지만 돈에 메이지 않고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일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여유를 안겨준다. 현실적 잣대에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 잔잔한 바람처럼 마음의 여유를 남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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