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  영원할 수 없는 사랑. 하지만 평생을 걸쳐 살아가야 하는 삶, 그 간격 사이의 이야기.
  
  
  사랑에 빠질 때 인간은 시인이 된다. 자기만을 모르던 이가, 또 다른 대상을 자기만큼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 사랑의 가장 큰 힘이다. 문제는 사랑은 헌신이나 희생처럼 평생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하룻밤 소나기처럼, 예고없이 찾아왔다 사라져 버린다. 찾아온 사랑을 얻는 일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도, 지나가 버린 사랑을 지켜내는 일도 인간에게는 쉽지 않다. 행복했던 순간들은 때론 무료한 일상의 고통이 되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들이 힘겨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사람이 없어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힘든게 아니라,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없을거라는 불안, 다시 행복해지기 위한 그 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 그럼에도 그 사랑을 영원히 지킬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용기가 없는 면도 있다 생각한다.
 
  사랑은 용기있는 자만이 해낼 수 있지만, 사랑이 식은 이후는 용기있는 자만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이면서 현명하게 사랑을 끝낼 수 있다. 사랑했던 사람과 관계가 끝난 이후, 사랑했던 사람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다른 남자』에서는 사랑 이후, 다양하게 나타난 사랑 이면의 것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준다.
 
 
# 사랑, 그 시작과 도중, 끝난 이후에 찾아오는 낯선 경험들.
 
 
  『다른 남자』에서는 사랑의 시작, 도중, 끝난 이후에 찾아오는 사랑에 대한 낯선 경험들을 소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6편의 이야기 속에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아버지가 생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야기하지 못한 비밀, 부인이 사별한 후 그녀에게 찾아온 다른 남자의 연애편지를 통해, 질투와 그를 찾아가는 남자, 낯선 이국땅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 때 떠오르는 생각,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처럼 절친한 친구와 친구의 아내, 그리고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세 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그 덫에 빠지고 마는 남자, 길고 긴 결혼생활에서 찾게 된 일탈의 용기, 그리고 미묘한 기분들, 다양한 사랑의 프리즘속에서 자연스럽게 화자에 몰입되게 만다는 작가의 글솜씨에 빠지다 보면,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때론 배신을 감수해야 하기에 더욱 불안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자동차 운전 때 찾아오는 불의의 사고처럼, 나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할까. 하지만, 왠지 불안한 일이 벌어졌을 때, 상대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둘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는 경우인데도 말이다. 민족의 분단, 유대인 학살을 겪은 독일에서 태어난 작가의 작품이다. 헌법재판소 주립판사를 역임하는 그의 경력이 잘 드러나,  유대인 핍박과 연루, 통일 이후에도 쉽게 친해지지 않는 동서의 낯선 모습들이 작품에 잘 드러난다. 유대인 핍박에서 '지역차별'과 '광주학살', '친일파'등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그들의 가족과 친족들의 경우를 떠올려보았고, 동서의 차이에서 남북의 차이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사랑을 했을 때 느껴지는 충만한 기분, 그리고 찾아오는 불안과 신뢰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평생 겪지 못할 수 있는 문제들, 하지만 찾아오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소재들을 대리경험하며, 사랑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볼 수도 있게 된다. 스스로 강해지고,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자가 가장 사랑을 잘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완벽한 이가 과연 사랑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족한 2퍼센트를 서로 발견하고 채워가면서, 상대의 모자란 부분도 아껴주는 일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 그리고 인연이 아닐 땐, 보내줄 수 있는 마음. 결혼이라는 제도와 자식과의 관계가 벌어진 이후에도 그 선을 잘 고민해 보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혼율과 서로에 대한 구속이 자유로울 수록, 더욱 큰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때론 자신의 모든것을 파멸시키고, 돌아본 후 상처뿐일지라도, 사랑의 순간은 아름답고 고귀하다.
 
  인생의 짧은 순간,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고민하고 많이 힘들어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을 위해서도 멋진 일이니까. 사랑이 오는 달콤하고 영원할 듯 행복한 첫맛 뒤에 찾아오는 번뇌와 고통, 불안등의 끝맛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사랑을 잘 할 수 있다 생각한다. 달콤한 순간만 살짝 먹고, 버리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그 이후에 찾아오는 힘겨움까지 이겨내는 멋진 사랑을 하고 싶다. 알면 알아갈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사랑, 그럼에도 늘 설레게 하고, 피할 수 없는 매혹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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