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갤러리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2
김영범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역시, 서양철학은 어렵다.
 
 
  철학을 모른다고 해서, 사는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잠깐 윤리와 수업시간에 책을 접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철학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생을 살아가는 데 큰 장벽을 느끼거나 곤란한 적은 없었다. 철학은 꼭 학창시절에 가까이 하고 싶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친구 같은 느낌이다.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공통점도 없어 보이고 왠지 느껴지는 거리감이 다가서기 힘들게 한다고 할까. 그 친구가 절대 먼저 다가오진 않는다. 어떤 학문을 공부하더라도 그 정점에는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다만 지금의 철학과 달리, 많은 학문이 포괄적으로 포함되었다고 할까. 철학자의 이름과 유명한 일화들은 체면치레로 들은 기억이 나는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억나지 않는다. 윤곽만이라도 크게 정리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기초 수준에서 핵심을 잡아주는 책은 만나기 어려웠다. 깊은 내용에서 더 깊이, 아니면 어느 정도 철학을 아는 이들에게 더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정도의 책은 보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철학적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보니, 머리속에서 생각이 떠돌리만 했다. 결국 역시, 서양철학은 어렵다로 정리해버리고, 읽으려 했던 책들은 서가의 눈길가지 않는 쪽에 모셔두었다.
 
  탈레스에서 시작된 서양철학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계보로 정리했다는 부제가 끌렸다. 부록으로 함께 온 계보도는 50명이 넘는 사상가들의 관계가 빨강과 파란 선으로 이리저리 뒤엉켜있었다. 계단을 타고 오르듯이, 모래를 모아 성을 만드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고, 때론 정치적 사건을 통해 철학 자체에 대한 논의가 없어지기도 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물러서기도 하면서 성장하듯이, 인간의 학문, 철학 역시 여기저리 부딪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할까. 1장을 펼치니, 그리스 에게해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가들의 얼굴과 숫자가 보인다. 101, 105 이런 숫자가 무엇인가는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파악되게 된다.
 
 
# 한 줄로 사상가의 이론을 설명하는 포인트와 영향을 끼친 관계가 잘 설명된 책.
  
  
  340페이지의 책에 50명이 넘는 사상가가 소개되었다. 산위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았을 때, 특징적인 부분만 보이듯, 개괄적인 사상가의 포인트가 첫 시작글에 잘 설명되어 있다.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사상가 소개 첫 머리에 그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고, 누구에게 영향을 끼쳤는지가 기호와 숫자를 통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된 점이다. 포스트잇을 사용한 것처럼, 오른쪽 상단부터 차례로 체크되어 있는 숫자들은 빠르게 책을 찾아볼 수 있게 배려되어 있었다. 탈레스를 설명하는 글에서 니체가 나왔다. 니체의 이름에 파란색 바탕글과 함께 오른쪽 끝에 그를 바로 찾을 수 있는 페이지도 적혀있다. 철학에 문외한이여서, 바로바로 새로 등장한 사상가들을 살펴보면서 읽어보니, 저자가 정리한 사상가의 이야기가 쏙쏙 잘 들어왔다. 작은 배려에 감동과 함께 학습의욕도 고취된 기분이다.
 
  철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는데, 저자가 소개한 사상가들은 어떤 의미인지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이성을 가까운 거리에서 세밀하게 볼 수 없지만, 먼 발치에서 그의 특징을 알아챈 느낌이랄까. 기원전 육백년전 너머, 탈레스가 정의내린, 세계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외침에서 시작된 철학의 의문은 시대와 문화에 맞게, 기존의 지식을 발전, 한계를 반박하면서, 때론 독창적인 생각이 등장하며 다양하게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철학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지금 문명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지라는 감탄과 함께, 말하지 않았으면 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하는 못된마음이 함께 떠오른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많아 포기하고 말았다. 책을 읽고 나니,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친절하게 큰 틀에서 보여준 설명 덕분이다. 서양철학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은데, 너무 아는게 없어 주춤주춤하는 이에게, 한 권으로 큰 얼개를 잡아줄 책으로 추천할 만한 책을 만났다. 독자를 배려한 편집부의 노고의 흔적이 보여,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도 주목하게 될 것 같다. 서가에 두고, 철학자들이 소개되었을 때 어떤 이인지 살짝 맛보기에 좋은 책이다. 깊은 내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찍는 프로필 사진처럼, 철학의 알갱이를 함께 모은 사진첩같은 책이다. 프로필로 그를 다 알 수 없다. 호감도를 체크한 후, 그를 이해하는 일은 다른 책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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