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 하나의 사건, 한 장의 사진. 이야기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1995년 1월에서 3월 사이에, 일본을 뒤흔든 고베 대지진과 독가스 살포로 시야가 보이지 않는 고통을 느끼면서 괴로워하는 테러를 일으킨 옴 진리교 사건이 일어난다. 컬트 종교집단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라고 보도되는 언론보도와 달리, 저자는, 교주 아사하라의 인도 행보에 주목하며 비슷한 경험을 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로 결정한다.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기억을 떠올리고, 기억을 더듬으며 삶을 돌아본다.
 
 
#  그의 글에는 만남과 성찰이 공존한다.
 
 
  1장에서의 옴 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형과의 만남, 2장에 도시화된 폐색상태에 빠진 젊은이와의 인터뷰,  3장에서는 쇼코가 종교단체가 되기 전 명상모임일 때 출간한 책의 사진, 탄트라 승려와의 만남, 4장에서는 인도의 종교행사에 반항했다 몰매맞은 기억과 공중부양을 자랑했던 프랑스 청년과의 만남, 5장에서는 티베트 고원에서 약물을 하다 피해망상증에 빠진 Y를 달래기 위해 떠났다가 만난 경험 등 그의 글에는 만남과 사진,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에피소드 뒤에는 삶에대한 성찰이 덧붙여 진다.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인도로 떠났던 두 인물이 비슷한 경험을 하였지만,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 결과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공업화를 넘어 정보화로 넘어가던, 인간으로서의 감각이 무너져내리던 삶의 공포를 두 사람은  똑같이 자각했지만, 저자는 ’리얼’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떠났고, 아사하라는 삶의 도피처로써 깨달음이라는 답을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에 앞서, 미나마타병으로 앞을 못보게 된 아사하라가 독가스 테러로 사용했던 독가스의 증상이 앞이 안보이는 시야협착이었다는 점에서, 옴 진리교가 선택했던 수행방식이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모토리와 비슷한 모든 감각과 정보를 차단한 채, 어두운 곳에서 자신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였다는 점에서, 산업화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다시 되돌아오는 건 아닌가 하는 섬뜩함을 느꼈다.
 
  인간을 소중히 여기던 관리사회의 일본사회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재가 들개와 까마귀에 먹힐 수 있는 인도에서 인간사회의 그물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는 저자의 경험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작은 충격과 변화의 계기가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경험한 생의 공포의 에피소드를 인터뷰 했던 젊은이는 TV 프로그램의 하나로 인식하며 웃는다. 미디어 매체에서 성장한 젊은이는 인디아나 존스나 할리우드 영화의 큰 스케일과 파괴의 이야기들의 의사경험하는 하나의 허상으로 인식한다. 젊은이의 이야기와 저자가 만났던 티베트 승려의 만다라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허상과 파괴, 생을 살아가면서 느끼지 못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기회를 주는 점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 개인의 삶을 너머, 현대 사회의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있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책.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세대간의 차이의 한계를 넘어 청년들이 고민하게 되는 방황과 고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념의 큰 줄기와 시대의 외침에 고민했던 386세대와 한단계 민주주의 넘어, 생존을 위해 개인의 삶에서 고투해야 하는 지금의 20대는 주어진 삶의 환경은 다르지만, 청년의 시기에 느꼈던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똑같이 인식했다고 생각한다. 청년이란 사리나 이치가 아닌 동물적 감성으로 세계를 헤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한다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꼭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춘기부터 20대에 걸쳐, 사회의 족쇄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정교하게 갖추어져 있고, 벗어나는 일은 많은 고통과 자유를 필요로 한다.
 
  저자는 인도여행을 통해 인간의 삶이 지나치게 강조된 현대사회의 모습을 엿보았고, 아사하라는 거기에 전염되어 인간의 의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망상을 선택했다. 인간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믿음, 자연과 인간의 삶을 별개이며, 인간의 몰락과 자연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은 고베 대지진 이후, 사회의 건물들을 파괴되었지만 자연과 숲은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공업화와 자원의 낭비가 심해질수록, 태풍과 폭우와 같은 자연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들은 더욱 더 강렬해질 것이라는 느낌, 문제는 자연의 변화가 아니라, 폭우나 태풍의 피해들을 자원의 사용으로 이익을 가장 크게 추구한 사회의 고소득자가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힘없고 돈 없는 약자들이 그대로 피해를 경험하는 현실이 문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는 비, 태풍이 문제가 아니라, 반지하에서 피해당하는 사람을 ’그러길래 돈을 벌어 거기서 안 살면 되지’라고 바라보는 냉정한 시선이, 능력부족으로 바라보는 그 시각이 몰락하는 사회의 첫걸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과 절망을 느낀 사람이, 약자에 대한 그 느낌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이해는 하지만, 거기에 대한 반발로 부유하게 산 자신을 긍정하며 과거를 외면하고 능력의 부족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인도에서의 동일한 경험도 누가 경험했느냐에 따라, 삶의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하고, 파괴의 시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니까. 단순한 여행에서, 만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인간사회,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국가의 경계를 한 번 건너뛰면, 자국에서 크게 고민되는 사건이 한 단계 건너면 절실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고베의 대지진, 이세신궁의 교체, 옴 진리교 사건 등 일본의 사례일 뿐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책이다. 표면에 보이는 사건의 뒤에 숨겨진, 현대 사회에 대한 시선, 공업화 정보화의 삶에서 무너져 내리는 현대인의 풍경과 그들이 선택한 두 가지 길의 결과가 궁금한 이에게는 생각의 변화의 계기를 선사할 것이라 믿는다. 타인의 행동에서 호불호의 감정을 살피는 이가 아닌, 그 행동의 감정과 그 뒤의 풍경까지 헤아릴 마음의 여유가 있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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