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유명인의 책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지만, 편견도 함께 따라붙는다.
 
 
  생각이 깊고,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으로 사회적으로 따스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차인표씨가 책을 냈다. 유명인의 책 출간은 스타의 영향력에 의해, 대중의 깊은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작가 차인표가 아닌, 배우 차인표가 쓴 책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인해 공정하게 평가받는 일이 신진작가보다 배로 힘들다. 유명세가 불러일으키는 매출의 힘과 배우가 글을 쓴다는 편견은 불행 뒤의 행복처럼 분리 할 수 없다.
 
  책을 집으로 데려오고 나서도, 오래 망설이다 읽은 책이다. 유명인의 책이라는, 일류요리사가 배우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아마추어적인 느낌의 선입견을 버리고, 입문하는 신진작가와 동일한 시선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신진작가의 책이라면 이렇게 깊은 관심을 두고 읽지 않았을 것이다. 편견을 애써 없애려 노력하지 않고, 편견의 한계를 인정한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역사적 사실을 로맨스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돋보이는 책.
 
 
  1931년 백두산 언덕 가까이에 있는 호랑이 마을에는 마음씨 좋은 촌장 할아버지와 착한 마음씨를 지닌 순이가 살고 있다. 마을에 내려와 짐승을 잡아먹는 사나운 육발이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마을주민들이 공포에 떨 때, 슬픈 사연을 가진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가장 사납다는 백호를 잡기 위해 마을로 찾아오게 된다. 백호를 잡기위해 마을에 머문 황포수와 용이는 육발이를 대신 잡게 되고, 마을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지만, 마을 아이들의 혈기로 인한 작은 사건이 가져온 상처로, 마을에서 쫓겨난다. 7년이 시간이 흐른 후, 마을에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인구조사의 목적으로 방문하였고, 순이에게 반한다. 마을사람들을 수탈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가즈오와 병사들. 그 와중에 위안부 공출이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게 된 가즈오는 경악하고, 인구조사를 했던 자신으로 인해 순이가 피해가 입게되는 현실을 괴로워하게 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수탈을 감내해야 했던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조선인 여자 인력 동원 명령서라는 이름으로 조선처자들을 위안부라는 이름의 전쟁의 노예가 되게 만들었던 일제의 만행이 소설에 잘 드러난다. 비정한 사회의식과 위안부의 피해에 조명을 맞추기 보다, 어렸을 때의 순박하게 마음이 끌렸던 두 남녀의 사랑과 국적을 넘어 한 여인을 흠모했으나, 자신의 조국의 부당한 명에 의해 괴로워해야 했던 한 사내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는 진행된다. 초등학생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랑 이야기 속에, 행복한 순간과 함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약자인 조선 여성이 겪어야 했던 불행한 사실을 함께 기억할 수 있게 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좋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루는 작품들에는 슬픔과 비애, 분노가 많았다. <잘가요, 언덕>에서는 용서와 로맨스가 함께 있어 무거운 마음을 덜 수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아픔으로 분노에 휩싸여 하늘위에 떠 있는 용서라는 엄마별을 바라보지 못하던 용이에게, 순이는 엄마별이 너무 보고 싶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하니까 용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가해자가 용서를 빌기보다는 망각을 바라는 듯한 용서하기 힘든 순간의 사람들에게, 저자는 순이의 입을 빌어, 용서는 가해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피해자의 마음을 감싸안는 그 따스한 마음이 좋았다. 언론에 알려진 바른 이미지와 어울리는 따스한 성품을 작품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된다.
 
 
# 조선인 모두는 피해자, 일본인 모두는 가해자라는 흑백의 시선에서 벗어난 수작.
 
 
  조선인은 피해자, 일본인 모두가 가해자라는 흑백논리가 아닌,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악역을 맡게 되는 일본군 하급 관리자의 고뇌와 돈이라면 같은 민족이라도 배신할 수 있는 장포수, 일본군은 모두 적이라고 생각하는 용이 등 다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져 좋았다. 순박하고 맑은 산골에서 티없이 순수한 아이들이 벌이는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호랑이 마을을 배경으로 우리가 잊고 살던, 농촌의 풍경과 순수한 마음을 다시 헤아려보게 한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는 858회가 되어간다. 집회가 열린지 1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흘러,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생을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아픈 현실.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닌, 역사의 가장 약자였던 이들이 흘렸던 슬픔과 절망, 그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과 아이들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어른들이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생각한다.
 
  한 편의 이야기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생각이 굳어버린 어른보다 아이들이 많이 읽으며, 그들의 부모와 함께 대화했으면 하는 책이다. 무조건 일본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 제국주의의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정부의 잘못과 그를 이어받는 정부의 각료들이 정통성을 외면하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이며, 일본이 저질렀던 행위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큰 힘을 가진 나라가 되었을 때 일제처럼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는 사실이 잊혀지지 않아야 한다.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는 일! 높은 산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처럼 불가능해 보이고, 힘들어 보인다. 아픔을 인식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면, 기억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꾸준히 노력한다면 꼭 이루어질거라 믿는다.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그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용서의 깊은 의미는 머리로 이해하였지만 가슴으로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위안부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 용서하는 법은, 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도전해야 할 숙제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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