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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거짓말, 절도, 가출, 반항, 마음 속 나쁜 생각 등. 착한 일을 해야하며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하고 실수를 거쳐가며, 어른이 된다. 작은 마음일 때는 욕망을 억제하기보다 욕망에 충실하거나 나를 더 많이 생각해서 행동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 마음의 본성에 그런 경향성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을 어린시절에 굳게 믿었다. 착한 마음이 마음 속 호수처럼 고요하게 있지만, 생을 살아가며 깨끗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함께 뒤섞여 어지러워 보인다고 할까. 스스로 마음을 청소하는 노력을 해낸다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중학교 2학년까지 그랬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 이후, 본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었지만 한 쪽에 무게를 두지 못하다가 군대를 계기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억압된 틀 속에서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군대! 군대를 겪으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자신의 욕망과 권력의 관계, 순수한 의도가 사회적 함의에 의해서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과 체력의 단련과 함께, 권력에 쓴맛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예비역이 된다는 건 자신이 무너질 수 있는 한계를 경험하고 난 후, 그 한계에 휘둘리지 않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복학 이후,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책과 철학책들을 보며,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사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천사의 나이프』를 읽으며, 소년의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권 보호의 이면과 피해자의 슬픔등을 함께 느껴가며, 아이들의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과 용서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14세 미만의 어린이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인권보호와 교화의 목적으로 정보가 일체 공개되지도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고 한다. 교정시설을 통해 사회적 재교육의 과정을 거친다고 할까. 실제 일본에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중범죄를 처한 소년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저자는 독자에게 고민의 문제를 던진다.
# 용서의 의미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게 하는 책.
3인조 강도에게 아내를 잃은 히야마 다카시씨는 다섯 살 어린 딸과 함께 커피숍을 경영하며 살고 있다. 범인은 13세 중학생들로 미성년자들로 사죄도, 용서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정보를 알지 못해 마음 속에 속상한 마음이 가득하다. 범인들이 하나씩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히야마 다카시씨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게 된다. 조금 더 깊은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는 범인들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WBC에서 한국이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잘 짜여진 조직력이 큰 힘이었다. 착착 맞아떨어지는 수비와 타이밍을 잘 이용하는 공격력이 잘 조합되는 모습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한편의 멋진 스포츠의 감동을 느끼듯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는 다양한 시각에 처해진 많은 이들의 상황과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때론 피의자의 마음에서 때론 가해자의 마음에서, 또다른 이의 시선에서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로 인해 상처와 슬픔을 겪는, 용서와 고통을 겪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담하게, 정교한 이야기의 구조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보여준다.
인생에 묻어버린 검은 얼룩은 쉽게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스스로 그 얼룩을 지워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검은 얼룩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겨냈다고 자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외침을 통해, 자신과 당신의 인생에 묻어버린 검은 얼룩은 스스로의 힘만으론 결코 닦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닦아 줄 수 있는 건 자신이 상처 입힌 피해자나 그 가족뿐이라며 피해자가 용서해 줄 때까지 끊임없이 속죄하는 것이 진짜 갱생인 거라고 외친다. 진정한 용서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깊은 이해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인정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속에서 생겨나는 아주 여린 작은 씨앗이라는 것을 히야마 다카시씨가 휘말린 사건을 추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내가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 될 때 인간의 냉정한 시각을 가지게 되고, 내 일이라 생각되면 더욱 감정적으로 사안을 바라보게 된다. 성폭행, 살인 등의 사각지대에 쉽게 당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더욱 감정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이유와 그 반대의 상황의 인물들이 더욱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일은 그 자신이 처할 수 있는 입장의 차이라고 할까.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난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보는 사건이 아니라, 내 주변에 실제 발생한 일이었을 때 나 역시, 모범정답처럼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을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쉽게 휘둘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작은 자신의 티끌을 감추고자 자신의 집을 다 불태우는 무모함을 보면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의 본성으로 단정짓기에는 교육과 본성에 대한 다양한 틈이 있다고 할까.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가변적 존재인 인간, 작은 변수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에, 사회적 틀의 함의와 용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도가와 란포상의 만장일치 수상이 이해가 되는 책이었다. 현실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면서도, 미스터리 소설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저자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