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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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습, 김이은, 금오신화.
 
 
  김시습을 생각하면 먼저 세종과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뛰어난 글솜씨를 보였던 김시습을 아꼈던 세종은 어린소년이었던 김시습의 재주에 상을 내리며 비단 여러필을 가져가라고 한다. 꼬마였던 김시습은 무거운 비단 여러필을 늘어뜨려, 끝과 끝을 묶어 길게 늘어뜨려 가지고 갔다. 아이의 재치를 느꼈다고 할까. 단종이 그대로 보위에 올랐다면, 김시습의 빼어난 활약을 볼 수 있었을텐데, 역사는 수양대군의 단종의 보위를 뺐는 것으로 김시습을 방랑자로 만들었다. 비정하고 견디기 힘든 현실에 살다보면, 이룰 수 없는 꿈을 꿈꾸며,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꿈꾸기도 한다. 금오신화는 주자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현실과 달리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운명적 사랑과, 저승의 이야기 등 5편의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8 올해의 문제소설에서 「가슴 커지는 여자 이야기」라는 단편소설로 김이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출신의 독특한 이력과 흡입력 강한 문체가 인상적이였다. 금오신화를 옮겨적은 이가 그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존의 문학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던 소설이였기에,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할까. 고전 소설은 이야기의 뼈대가 많이 알려져있기에, '누가' 번역하느냐에 따라 글의 맛이 크게 달라진다. 한문을 전공하고, 문체의 힘이 있는 작가가 옮긴 책이였기 때문이었을까. 원본의 탄탄한 매력과 역자의 부드러운 옮겨쓰기, 묘한 여운을 남기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금오신화 중 두 편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 한자를 모르는 세대도 싶게 읽을 수 있게 풀어 쓴「이생규장전」과「만복사저포기」
    
  
  한자를 모르는 세대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초등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자로 이루어진 소설을 모두 한글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중간중간 이야기의 배경과 처지,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 및 다양한 역할을 하는 '시' 역시, 형식을 바꾸지 않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읽어내기 쉽게 풀어 썼다. 원문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독자층이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함을 고려했기에 한글로 전부 꾸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편의 이야기 모두, 선남선녀가 사랑을 꿈꾸지만, 그들은 여러가지 현실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에서는 재산과 신분차이로 인한 이생의 아버지의 반대와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겁탈당하는 산적에 반항하다 온몸에 살이 다 찢기는 겪는 아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생생히 담겨 있다. 「만복사저포기」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목숨을 잃고 3년간 인적이 드문곳에 외로이 있던 처녀와 양선비와의 이승과 저승을 넘어선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야기라고 할까. 현실의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한 한을 달래주는, 변치않는 사랑이야기가 현실적 조건을 따지는 현실과 비교해서 많은 걸 생각해보게 한다.
 
  조선 세조때 만들어진, 꽤 오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구성이 탄탄하고, 복선과 '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세상을 방랑하는 김시습의 행보에 걸맞게, 이야기의 배경도 개성과 남원 등, 조선을 무대로 하여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시를 읊으며 마음을 전하는 그당시의 풍습과 고려시대, 불교를 숭상했던 풍습 등 옛 사람들이 살았던 풍경의 모습도 소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전에 나왔던 소설과 다른 파격적인 부분은 여성의 적극적인 의사표현이었다. 이생이 아버지의 명에 따라 시골에 내려가자, 상사병에 걸린 최씨 처녀가 부모님을 설득해 결혼을 하는 부분이라던가, 만복사에서 먼저 부부의 연을 맺자고 주장하는 처녀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에 억압적이였던 조선시대와 달리, 여성의 지위가 어느정도 보장되었던 고려시대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옛날부터 여성은 박해받았던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여성의 차별이 심했던,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아버지의 명에 거스르지 못하는 이생의 모습과, 소설 속 혼사와 추도식을 통해 자식을 애틋하게 생각했던 마음은 천년전에도 늘 한결같은 한국문화의 특색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 짧지만, 알찬 책.
 
 
  이야기에 빠져,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어린 아이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접근성을, 성인에게는 '고전' 이라는 딱딱함을 벗어나 쉽게 옛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매력이 담긴 책이다. 덧붙여 나온 심경호 교수의 해설은 금오신화를 다양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한 번 책을 읽은 후, 내용을 생각하며, 이야기 중간에 담긴 삽화를 보다보면, 환상적인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고, 사랑과 전쟁, 문화의 차이 등 여러가지 부분에 대해,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궁금해하는 부분을 친절히 가르쳐 준다면, 아이가 책에 가까워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공부에 도움이 된기에 알려주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 자식과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까.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다보면, 맑고 틀에 갇히지 않은, 정답이 없는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주는 책이다. 대학생이 읽어도 많은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여름에 자주하곤 했던, '전설의 고향'에서 처자와 손잡고 걸어오는 주인공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귀신에 씌었다고 알아보는 대목이 떠올랐다. TV와 영화에 나오는 부분들이, 옛 이야기에 소개된 부분에서 이어져 내려온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고전을 읽으면, 당대의 현실이 더욱 잘 보인다고 할까.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실적 조건이 어느새 마음에 내면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승과 저승, 운명의 한계를 넘어선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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