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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인형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이게 책이야?
오랜만에 책의 정의에 대해 검색을 하게 만든 책이였다. 책은 표지를 제외하고 49면 이상을 채워야 한다. 『꼬마인형』은 80페이지이니, 책의 조건을 충분히 뛰어넘는다. 대사는 거의 없이, 연필로 그린듯한 소묘로 전부 채워진 작품. 한 소년이 노인이 운영하는 인형극에서 꼬마인형을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다룬 책이다. 그림보다 문자에 대한 집착이 심한 나로서는 어리둥절한 책이였다. '그림이야기'라고 하지만, 소묘로 다 채워버리다니, 너무 심했다고 할까. '이게 책이야?'하는 울컥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책을 읽고 난 후 한시간, 하루가 지났는데도 책에 그려진 벵상의 그림의 이미지가 마음에 남아있다. 각인되었다고 할까.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이, 오직 그 그림에 빠져들게 하는 그림처럼, 책을 읽은 후 긴 여운이 잔잔히 남아있다. 각인된 기억은 작은 추억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 방금 연필로 그린듯한 그림과 살아숨쉬는 인물, 인형들의 모습.
우리가 쉽게 놓쳐가는 풍경들.
'돈'보다 인정과 마음에 더 마음이 이끌렸던 어렸을 때의 모습으로 책은 돌아가게 해준다. 타임머신을 탄 느낌처럼, 어렸을 적 작은 인형 하나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했던 추억, '꼬마인형'을 두고,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 그리고 화해까지. '돈'과 이해관계가 들어있지 않았던 시절에 내게 있었던 것을 환기시켜 주듯, 책을 읽으면 잊고 살아가는 살아가며 쉽게 놓쳐가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책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라도, 순박한 그림으로 이루어진 벵상의 그림이야기에는 쉽게 빠져들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처음 읽으면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세세하게 전부를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빈 여백속에 더욱 많은 표정을 담고 있는 인물들이 가슴에 남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다.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고, 아이에게 선물해 주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담겨있기에,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하기에 좋은 책이다. 단,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려는 마음을 억누를 수 있다면 말이다. 사회화가 진행되기 전의 아이들의 생각은 독창적이고 새롭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려 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표정과 생각, 마음들을 함께 공감한다면, 더욱 친해질 수 있다 생각한다.
벵상의 그림을 보면 콜비츠가 생각난다. 콜비츠의 그림에는 슬픔의 기운이 가득하지만, 벵상의 그림에서는 따스함이 묻어있다. 슬픔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따스함은 우리가 세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을 준다. 많이 슬퍼하고, 많이 희망을 가지는 일은, 경제적 여건을 더 나이지게 해 주지 못하지만,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림이야기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아동문학은 자연스럽게 피해읽는 경향이 짙었는데, 그 마음의 편견을 부숴준 책이다. 편식하지 않고, 그림이야기 책들도 조금씩 읽어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