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 아무도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청바지.

  
  두껍고 질긴 무명으로 만든 파란색 바지를 청바지라 이야기한다. 패션 모델들은 청바지 하나와 면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뽐낸다. 모델이 아니더라도, 체형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파란색 바지인 청바지는 너무 흔해서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만큼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꼭 청바지를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입을 수 있게 집에 한 벌 정도는 장롱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1849년 골드러쉬와 함께, 황금을 캐기 위한 열망으로 모두가 미국으로 모여들던 그때 튼튼하게 입기 위해 만들어진 청바지는 1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러가지 외양을 바꾸면서 때론 명품프리미엄으로, 누군가에겐 저자의 싸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의 문화와 힘이 세계에 큰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 생각해보니, 청바지는 코카콜라, 맥도날드, 스타벅스와 함께 미국문화의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누구나 많이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코 읽어본 이는 많지 않은 고전처럼, 청바지에 대해 누구나 조금은 알고 있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서를 보는것처럼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닌, 즐겁게, 톡톡튀는 개성 넘치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9개의 그림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되고, 각 그림마다 메세지가 살아있는 독특한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 신입사원을 훈련시키기 위해, 내어준 하나의 과제! "청바지를 읽어라!"

    

  광고회사에 새로 입사한 패기있는 신입사원 7명에게 "청바지를 읽어라!"라는 하나의 숙제가 주어졌다. 청바지라는 소재를 가지고, 누군가는 청바지의 탄생에 주목했고, 다른 이는 미국문화와 상징을, 다른 이는 저항의 수단이었던 이념을, 또 다른 이는 프래그머티즘으로 불리는 실용이라는 코드를 읽었다. 보헤미안과 부르주아라는 서로 상반되는 문화의 세계를 보보스로 통일한 매개가 청바지였다고 본 이도 있고, 월급의 10분의 일이 넘는 값비싼 프리미엄 청바지를 수선하기 위해, 싼 청바지 하나 살 돈을 지불해야 하는 문화적 트렌드에 주목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청바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청바지가 인간을 선택한다는 의견까지 하나의 문화적 잣대로 자리잡아버린 청바지를 해석하는 이도 있었다. 다양한 시선이 공존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청바지의 탄생부터 현재의 영향력과, 미국역사의 큰 틀의 변화까지, 사회, 문화의 눈으로 바라보는 150년의 청바지 역사를 살피고 있다.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트렌드를 먼저 읽어내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일까. 독특한 아이디어를 통해 광고를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달리, 치밀하고 깊게 인간의 문화를 들여다보는 그들의 생각의 깊이가 느껴졌다. 각자의 생각들이 겹쳐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고, 그 책은 청바지의 흐름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꽤 괜찮은 안경이 되었다.  

  20초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예술이라는 말처럼, 광고의 담긴 메세지는 어렵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라 생각된다. 한 편의 광고가 나오기 위해, 뒤에 숨겨진 수많은 노력들이 보였다고 할까. 문화와 트렌드를 잘 읽고, 사람들의 세상을 바꾸는데, 보이지 않게 광고가 큰 역할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7개의 발표로 이루어진 각 장은, 전체의 큰 틀로 보면, 사회문화 현상으로서의 청바지가 세상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은 많이 변화했지만, 그 틈에서도 청바지는 생생하게 자신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의 상처와 독충들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파란색 청바지는 누군가에게는 그 옷을 입기위해 자신의 체형을 바꾸고, 자유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그 가치를 사는 대상으로 변하였다. 너무나 비싼 청바지와 값싼 청바지가 공존하는 문화는 손목시계가 시계로서의 역할을 휴대폰이나 다른 대상에게 많이 넘겨주고, 저가의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손목시계와 고급 수제품의 고가의 손목시계로 공존하는 것처럼 아직까지 잘 사람들의 생활공간에 잘 살아남아 있다.

 
# 한가지 아쉬운 점은..

  
  청바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청바지를 통해 사회문화적으로 세상을 읽는 그들의 메시지는 컨셉에 맞게 잘 정리되어 있다. 기존의 활자로만 이루어진 책과 달리, 한 편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는 것 처럼, 다양한 디자인과 파격적인 글의 배치가 읽는데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책을 읽는다기 보다, 강연회의 연설자의 발표 원고를 본 느낌이다. 좋은 질문에 좋은 답변이 잘 나온 한 편의 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과거와 현재를 읽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없다는 점이다. 청바지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런 변화를 거쳐서 아직까지 이렇게 살아남았다라는 꽤 정밀한 분석은 이루어졌지만,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전망에 대한 생각할 거리는 보이지 않는다. 책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과거의 흐름을 통해 미래를 전망해 보고픈 욕망이 만들어낸 아쉬움이다. 이런 아쉬움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독특한 분석에 대한 매력이 강하기 때문에 만들어낸 급부라 생각한다.  

  애플의 I-pod를 통해 삼성전자가 플래시메모리를 팔아 많은 수익을 남기는 것처럼, 명품 청바지의 데님에 일본의 큰 제조업체가 아직도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 등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도 잘 담겨 있다. 주어진 사실들을 자신의 목적에 맡게 재배치하는 그들의 말하기 방식은, 글쓰기의 한 방식으로서도 매력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글쓰기의 방식의 변화를 담고 싶을 때, 찬찬히 살펴 생각의 변화에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의 샘물을 만난 느낌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많은 의문과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고나니, 지금 우리의 일상에 스며있는 다양한 사회현상의 이면과 청바지의 앞으로의 모습, 청바지만큼 흔하지만, 우리 일상에 스며있는 다른 대상은 없는지,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답을 찾기에 부족한 나의 지식을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한 지식에 작은 충격을 준 책이라고 할까. 인기 TV 프로그램일수록, 방영전에 꽤 많이 등장하는 광고때문에 많이 지치고 짜증이 났는데, 이제는 그 광고 뒤에 숨겨진 수많은 노력들에 대해, 그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낯선 분야에 대해 조금 관대해진 마음만큼, 세상을 보는 시각도 미세하게 넓어졌음을 느낀다.  

  하나의 제품이 인기를 얻는데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많은 이들의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조금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함도 좋지만, 대중성과 함께 시대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좋은 광고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경쟁'과 '당신만 열심히 하면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어'라고 자극하는 광고가 아닌, '인간'에 주목할 수 있는 그런 광고 말이다.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어떤 광고를 만들어 내는지 잘 지켜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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