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 추억을 되살려주는 똥친 막대기.
 

   초등학교 4학년때던가. 외가에 한 달정도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하고, 오줌통과 재래식 화장실에 모은 인분을 거름을 만들어 쓰던 때였다. 집 근처에는 철길건널목이 있었고, 차단기와 함께 철도청 직원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통제를 막기도 했다. 한밤중에, 또는 새벽녁에 들려오는 기차소리에 잠을 깨어 밖을 내다보면, 반짝이는 별과 환한 달이 하늘에서 자리를 지키는 그림이 떠오른다. 창고대신에 광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고, 돼지와 소에 여물을 주기도 했다. 이뻐해 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을 그때는 당연하다 생각했었고, 할아버지를 따라 논에 농약을 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준비를 도와드리기도 했다. 지저분해 보이던 돼지가 매일 잠자리를 신경써줘야 할만큼 깔끔한 동물이라는 걸, 더러워 보이는 인분도 거름이 되어, 생물의 성장을 돕고, 다시 우리 입으로 돌아온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외가의 터는 그대로지만, 재래식 화장실은 수세식 화장실로 아궁이가 있던 부엌은 따뜻한 보일러의 기운이 들어오는 입식부엌으로 바뀌었다.

  다른 무엇보다 잊고 지냈던 농촌의 풍경을 책을 읽으며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공부보다 농사일을 도와야 했던 풍경은 재희의 일상으로, 집 주변에 얽혀있던 싸리나무가 종종 회초리가 되었던 경우도, 순해 보이는 소이지만, 앞에서 줄을 끌면 절대 따라오지 않고, 뒤에서 가만히 잡아주어야 한다는 소소하지만 정확한 농촌의 풍경, 그 시절의 풍경들이 작가의 펜에 의해  폭의 그림으로 다시 살아났다.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50점을 주고 싶은 소설이라고 할까.


# 마음 편히,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다가오는 자그마한 교훈.


  기질이 못되어서 그런지, 누군가 하는 잔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아야 하는 사실을 훈계식으로, 대단한 비밀을 가르쳐 준다는 식으로 알려주는 방식에,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느낌이 있다고 할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부딪쳐서 얻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쉽게 말해 가보지 않은 길을 지름길로 알려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설사 미리 가 봤다 하더라도 말이다. 동화나 짧은 소설에서 나오기 쉬운 훈계의 느낌이 없어 좋았다. 백양나무의 한 가지로 숨쉬고 살던 나뭇가지가 기차소리에 놀라 일을 하다 말고 다른 곳으로 달아난 암소를 잡도리하기 위해 몸이 꺽여 회초리가 되었다가, 시험성적이 나빠 어머니에게 혼이 난 희재의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화장실에 쓰는 똥친 막대기가 되기도 했다가, 논에서 어머니의 몸보양을 위해 개구리를 잡는데 쓰이는 낚시대가 되기도 한다. 나무가지가 화자가 되어 절박한 상황에서도 나무로 자라기 위해 꿈을 잃지 않는 마음을 지닌 막대기가, 오랜 고난을 거쳐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 소설이다.

  가만히 있고 싶은 나무를 변화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이,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더욱 공감이 갔다. 작은 변화의 사건속에서 여러가지 상황에 처하지만, 결국 혼자서 뿌리를 내리는 과정까지, 어쩌면 많은 사건들이 혼자서 묵묵히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큰 힘을 준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농촌의 초등학생을 둔 가족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살가운 마음도 들었다. 농촌은 사라지고, 농업 노동자들이 생겨나는 현대 시대에 잊고 사는 풍경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고 할까.

  작은 에피소드 하나에 웃다 보니 책이 어느새 끝나 있었다. 부모님께 안부를 전하고 싶지만, 일에 매여 전하지 못해 기적을 울리는 기관사의 마음, 미처 대비하지 못해 놀라는 동물과 아기의 울음소리, 아비의 한 마디 호통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지만, 동네 아이들에게는 똥친 막대기를 흔들어 대는 말광량이, 그리고 회초리를 든 어미를 미워하지 않고 개구리를 잡아 보양시키려는 효심을 지닌 희재, 자상하지 않지만 속 깊은 아비의 딸에 대한 사랑과 어미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당돌한 딸의 행위와 말리지 않는 남편의 무심에 고민하다 결국 매를 들지만, 딸을 보살피는 어미 최씨의 마음까지, 굳이 사랑한다고 크게 속삭이고 말씀하지 않았지만, 깊은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부모님의 행동들도 엿볼 수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깊게 읽으려 하면, 다양하게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언어의 마술사 김주영씨의 글에는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기에 더욱 품격이 높다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나무에 관한 생물학 교과서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성장이야기 등 여러 모습을 지닌 소설이다. 청소년이 읽어도 좋고, 농촌의 풍경을 지닌 윗 세대가 읽어도 좋다. 여러 세대에게 두루두루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농촌에 살고 있는 귀여운 조카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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