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 힘이 없기에 살아야 하는 굴욕적인 삶, 슬픈 현실은 절박함은 되물림 된다는 것.


  히말라야 산 속의 작은 도시 칼림퐁. 허름하지만 대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초오유에서 늙은 판사와 그의 외손녀 사이는 요리사와 함께 살고 있다. 가정교사였던 네팔계 인도인 지안과 사랑에 빠진 사이는 그가 방문하는 시간을 기다리지만, 그를 찾아오는 건 판사의 총을 빼앗으려 온 어린 청소년들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아들을 미국으로 보낸 요리사는 미국으로 간 아들이 크게 성공해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내와 결별하고 혼자 산 판사는 점점 무력해지는 자신을 늘 그를 지켜주는 강아지 뮤트를 보며 견디고 있다. 그들에게 찾아오는 네팔계 인도인의 자치를 꿈꾸는 GLNF의 점령과 횡포 뿐이다... 


# 꼬리에 꼬리를 이는 이야기, 슬픈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능력. 


  600페이지에 가까운 두터운 책은 첫 만남부터 부담감을 전해준다.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표지를 바라보았을 땐, 인도와 미국으로 떠도는 슬픈 사람들의 아픈 포즈를 담긴 풍경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가족과 떨어진 채 칼림퐁의 작은 도시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했던 늙은 판사의 이야기와 그들의 딸의 러시아의 생활, 우리나로 따지면 일본과 한국의 아픈 역사를 가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미워하는 사회상에서 서로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다투지만, 다시 사랑을 기다리는 그들, 미국에서 그린카드를 얻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다시 인도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하게 되는 요리사의 아들까지, 민족의 분쟁, 가난한 처지 속에서 그들이 선택하는 결과들을 보는 일은 우리나라의 왜곡된 현실과 많이 겹쳐 보인다. 가난할수록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도와야 하는 마음과 실제 미국에서는 서로 돕는 일보다는 개인이 살기에도 바쁜 현실, 영주권을 위해 위장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 등  1986년을 배경으로, 제 3 세계의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좌절과 상실의 되물림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늙은 판사의 행동이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을 등지고 영국으로 떠났지만, 그들의 인종차별로 인해 극심한 굴욕감을 느끼고, 인도로 공무원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족과 자신의 민족을 버려야 했던, 화이트 콤플렉스라고 해야 할까, 미국의 문화가 좋다고 동경하지만, 결국 미국인이 되지 못한채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의 사고를 하며, 한국인을 멸시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드러났다고 할까. 사회 지도층이 매여있는 미국에 대한 동경과 미국적 사고들과 너무 절묘하게 겹쳐보여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지배층의 미국이 우리 손을 떼면 우리는 다 망하니까, 굴욕적이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미국의 눈치를 봐주어야 한다는 입장과 닮았다고 할까. 담담히 전해지는 서글픈 사람들의 슬픈 모습들이 우리의 사회적 현실의 맥락과 많이 닮아 있어 마음이 불편했던, 그래서 더욱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보고 싶은 장면만 보면서, 즐겁게 사는 일은 자기만족을 위한 기만이라고 할까. 밝은 태양이 있으면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러나듯이, 지식인의 책무는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는 부분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그린카드가 없어 굴욕적으로 많은 일들을 전전하고,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는 현실과 동남아시아인이 겪는 취업비자가 없어 겪는 고통은 너무나 닮아 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풍경들, 동남아시아 등의 취업연수생들의 피와 땀으로 우리 경제가 발전했다는 점을 잊고 사는 사람들, 이제 너무나 늘어나버린 외국인가정들에 이제는 함께 살 생활을 고민하고, 코시안에 대한 인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자후기에 나오는 보다 깊이있는 설명은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경제의 경기장이 평평해졌지만, 상처를 치유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처를 할퀴기만 할 뿐이라는 말과 오래전에 이루어진 움직임이 그 모든 것을 낳았다는 말에 대한 해석들, 그런 깊이있는 해석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읽더라도, 한국 사회와 비교해 많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