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착의 론도 ㅣ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표절의 씁쓸한 기억.
몇 달 전, 서평을 도용당한 기억이 있다. 내 글을 그대로 베꼈는데도, 내 글이 아닌, 그의 글이 우수리뷰가 되어 어이없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평을 도용한 사람도 기분 나빴지만, 무엇보다 무관심하게 대처했던 인터넷 서점의 작태가 더 화가났었다. 내 것을 뺏긴 기분은 말도 다 할 수 없이 불쾌하다. 추리 소설 역시, 자신이 쓴 작품을 도작당했다고 생각하는 한 남자의 수기로 부터 시작한다. 5년째 월간 추리 신인상에 도전하지만, 낙선의 고통을 겪는 야마모토 야스오는 이번에만 말로 꼭 신인상을 수상해서 부모님도 편안하게 하고, 쪽방에 살고 있던 삶을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서점에서 한 권의 추리소설을 읽고 영감이 떠오른 그는 하루에 30페이지씩 14일만에 원고를 탈고한다.
악필인 야스오를 위해 친구 기도가 그의 작업실을 빌려주고, 타이핑도 대신해 주었지만, 지하철에서 그만, 플로피 디스크와 출력본을 잃어버리고 만다. 좌절의 늪에 빠진 야스오는 다시 작품을 쓸 결심을 하고, 기도는 원고를 주었다는 이에게 백만원의 합의금을 제시받게 된다. 작품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마음에, 기도는 제의를 수락하고 야스오를 부른다. 작품을 주었던 남자는 기도를 죽이게 되고, 기도의 요청에 그를 찾아갔던 야스오는 살인 누명을 쓰게 된다. 살인범은 기도를 죽이고, 거리의 여인이 지어준 시라쇼리 쇼를 필명으로 하게 되고, 야스오는 신인상 발표 작품을 보고, 시라쇼리 쇼가 작품을 탄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복수를 결심하게 되는데...
# 흥미진진하게 벌어지는 사건에 휩쓸리다 보면...
살인범과 시라토니 쇼의 애인, 그리고 야스오의 추격, 그 다음해의 <도착의 론도>의 작품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와 있다. 치밀하게 구성된 서술추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 작품을 훔친다는 도작과 뒤바뀌어 거꾸로 됨이라는 도착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도사쿠로 같은 단어라고 한다. 두 글자의 미묘한 차이가 작품에 숨겨져 있다. 두 건의 살인과 계속 이어지는 도착, 마지막에 사건의 진실은 공개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슨 도작과 작은 부분을 살짝 비틀었다는 하나로, 작품 전체와 이야기 전체의 틀을 바꾸어 버리는 저자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3부를 꼭 나중에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서술추리의 장점처럼, 군데 군데 숨어있는 책의 트릭 속에서, 작품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처음 읽었을 때 절반 정도 추리의 비밀을 맞추었지만, 마지막 반전은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지럽지만, 마술사의 비밀을 공개하는 것처럼 허망할 뿐이므로, 생략한다. 비밀을 알고 나서, 책을 읽으면 두 배로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쉽게 말해, 두 번째 읽어도 재밌는 책이라고 할까. 뛰어난 영화는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고 한다. 추리소설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 이 소설은 에도가와 란포라는 일본의 뛰어난 문학상 후보까지 오른 작품이다. 수상에는 낙선했지만, 출간에는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까. 그 해 일본추리작가상 수상에 또 낙선한 실제 작가의 삶은 왠지, 작품 속 매번 낙선하는 야스오의 삶과 닮아 있어 좀 마음이 아프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낙선 추리작가의 고투를 잘 그려냈다고 할까, 하지만, 그 자신감이 심사위원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점이 참 아쉽다.
도착 시리즈는 3부로 이어져 있다고 한다. 2부와 3부가 기다려져 잠이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