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다사다난했던 2008년, 키워드는 배신.

  

  새해 첫 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감을 느낀다. 상식에 대한 기대가 많이 무너졌던 2008년이라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구조본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특검까지 만들어졌지만, 결국 한바탕 쇼로 끝나버렸고, 이건희 회장은 무혐의 처리되었다. 소고기 수입 위생조건의 수정으로,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심해지고, 오랜시간 촛불시위가 열리며 국민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소고기 수입은 처리되었다. 대운하 사업은 무산되었지만, 4대강 치수사업과 경기위기에 대한 공포를 틀어쥐고 언제라도 대운하가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부, 비정규직을 늘려 기업의 이익을 도모한다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고, 민간보험의 활성화로 결국 건강보험마저 무너뜨리려 했던 정부의 행동을 보며, 정부는 서민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너무나 큰 실망감, 배신감까지 느꼈던 한 해였다. 더 이상 기득권층에 대한 욕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던 한 해였다.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욕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원인과 어떻게 문제를 바라봐야 할지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일년에 한 번, 21세기를 사는 지혜 라는 이름으로 한겨레 21에서 열린 오프라인 특강이 5회째를 맞았다. 이번 키워드는 배신, 3월과 4월에 열린 특강이다. 총선 전에 강연들이 열렸지만,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지금 읽어도 원인에 대한 분석과, 지금 사회의 큰 틀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 굵진한 현안들에 대한, 차가운 비판.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과 특검 쇼, 이건희 회장의 무혐의 처리 등 일련의 결과들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삼성에 얼마나 매여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삼성의 최고경영자와 구조본의 핵심 임직원들, 즉 총수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직원들의 차명계좌를 이용해서 비자금을 만들고, 정치인과 공무원 등 이해관계의 대상을 돈으로 관리했던 현상에 비판했지만, 사회 일부에서는 개인의 품격에 대한 비난에 급급하거나, 국가를 위해 삼성의 신인도를 유지해줘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의견들이 우리사회의 수준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데,  마음이 아팠다. 돈이 된다면, 다 괜찮아 하는 무의식적 생각들과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딨어, 사람은 의리를 지켜야지라는 생각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제일 뼈 아픈건 이런 문제점이 밝혀졌음에도 그것을 보완하려는 제도들에 대한 논의들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거야 라는 시민들의 반응에 익숙한 정치권과 경제권의 로비가 결합되어 결국 희생양 몇 명만 만들어 놓은 채, 사건은 묻혀지고 마는 점이 안타깝다.

  배신의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의 특강도 흥미로웠다. 배신당한 사람은 많지만,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가 자신의 행동은 동기부터 생각하지만, 타인의 행동은 현상과 결과로만 생각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거나 기상 이변이 일어났을 때는 우리가 배신을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인간관계에서 많은 배신감을 느끼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정확한 매커니즘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에 왜 배신감을 자주 느끼게 되는 건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에서 많은 부분은 실제 배신이 아닌, 내 욕망과 기대를 상대에 투사한 후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인 유사배신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범을 연기했던 하정우씨도 실제 내 성격의 악한 기운이 있어 연기를 잘하는건 아닌지 고민했다는 말처럼, 내부고발자들 역시 스스로 많은 괴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양심선언을 했던 이를 매도하는 일은 줄여야 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박학기씨가 말했다던 사람은 태어나서 6살까지 효도를 다했다는 말도 흥미로웠다. 6살까지 부모가 시키는 데도 다 하고 그 이후부터 자아가 생겨,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기 시작하는 과정들을 부모의 기대되로 교정하고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기대를 줄여야 한다는 말, 나중에 부모가 되었을 때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이라 생각했다.  

  진중권씨의 강연에서는 논객의 태도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 지식인은 대중이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들어야 할 말을 하는 존재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대중에 대한 환호때문에 정치인들이 열광한다는 이야기와 지식인은 때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일관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수많은 논객들이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다 그 정권의 말로와 함께 막을 내리는 모습도 겹쳐보였다. 대학생들이 보수화되는 경향 역시, 철저하게 관리된 시대였다는 주장, 누구를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정당을 무조건 지지 하지 말고, 정당이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들으며, 많은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좋은 강연은 좋은 답을 내 주는 것이 아니라, 많이 고민하게 해 준다는 말과 부합되었던 시간이었다.

  정재승 교수의 강연에서 배신은 동물적인 본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배신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배신의 이득이 누구에게 가느냐이며, 더 큰 사회집단의 이익을 위해 하는 배신은 사회 공동체에게 이익이 된다는 말에 공감했다. 김용철씨의 배신은 삼성 내부에는 큰 손해이지만, 결국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에, 사회적으로 지지받을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내부에서 배신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그만큼 그들이 삼성내의 조직체에 길들여 졌다는 이야기라는 점이 서글프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배신을 했을 때 우리 사회가 지지보다는 비난을 하기에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전체의 건강을 위해 그 하부 집단의 병든 곳을 꼬집는 일을 다 미룬다고 할까. 그렇게 방치하다가 암에 걸리고 병들면서 사회가 몰락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회적 윤리와 침해되는 부분들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어머니 젖에서 나오는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이 애착관계의 형성에 도움이 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말이 밝혀졌고, 이 연구결과를 통해 배우자의 부정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것이냐는 비판과 부정은 질병의 행위가 아닌가 라는 의견이 나오는 등, 과학의 연구결과가  사회에 큰 논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미리미리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함을 알 수 있었다. 영화 가타카의 개봉 후 2년이 흐른 후 인간 지놈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사안이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연구가 깊어질수록 과학기술과 윤리가 충돌하는 부분은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기술이 상용화 되기 이전에 미리미리 사회적으로 시대정신을 논의해야한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정태인 전 비서관의 강연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747정책이 왜 사회적 약자에게 큰 피해를 주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경기는 활성화되지만, 결국 수도권의 과밀화를 더욱 부각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 삼성에게 맞춤 법안을 한나라당에서 논의했다는 뉴스보도가 나오게 된 연유를 정태인 전 비서관의 강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FTA의 4대 독소조항을 하면서 결국 이익을 보는 건 재벌들 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재벌들이 잘 산다고 해서, 취업이 많이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위 10퍼센트에 당신의 아이와 그 아이들이 들어간다는 보장이 있다면, FTA는 좋은 제도라는 말, 특권 계층의 독주가 이어졌을 때, 결국 그 사회는 말로를 겪었던 수많은 역사적 교훈들을 지금의 지도층이나 부유층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내가 그 10프로 안에 들어가면 돼지'라는 막연한 생각들이 어쩌면 우리 사회를 더욱 병들게 하는데 부채질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조국 교수의 강연에서는 교수와 법률가의 배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법률인을 적게뽑는 제도를 통해 그들을 특권화시켰고 정권에 영합하게 만들었던 사실, 그리고 많은 제도들이 전문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마음 아픈 현실이었다. 어떤 집단의 이미지로 그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사회적 약속에 부합하는지 고민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내년에 재보선 선거가 돌아오는데, 그 선거에 어떻게 투표를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가느냐에 따라, 지금 정부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꾸준히 사회현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현상이 어떤 방향을 예고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입장을 결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법은 무관심한 대중에게 서비스하지 않는다는 말이 가장 적확한 사실을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안을 내는 국회의원을 잘 감시해서, 부당한 법률을 내는 국회의원들에게 불이익이 가도록 행동하지 않는다면, 법률적 문제가 있는 사안들을 고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법은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존재 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약자는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급급하다. 그렇기에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지식인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지식인들이 그 책무를 다하지 않고 기득권의 문 앞에서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몰락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주체 모두 이기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모두의 이익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정치의 묘가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통제하고 억눌렀던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국가를 위해 한다는 말들이 사회집단의 이익을 위한 변명이 되었던 사실들이 많이 보인다. 현상의 원인들을 엿보게 되었으니, 이제 필요한 일은 그 현상에 대고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꾸어 갈지 고민해 보는 일이라 생각한다. 좋은 강연은 내 기분을 시원하게 해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강연이라 생각한다. 주변에 알리고, 꾸준히 관심을 잃지 않는 일,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함을 느낀다. 책을 읽고 나니, 강연자의 의견들이 내 머리에 쏙쏙 들어온 느낌이다. 강연자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기초로 비판하고, 사색하는 일을 거듭해 내 스스로 동의와 거부의 이유를 찾는 일, 결국 내 스스로 성찰하는 일을 수행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그렇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함을 느낀다.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공부들, 하기 싫지만, 할 수 밖에 없는 건 그 일이 사회적 약자들이 연대하는 데 작은 힘이 될것이라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