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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침대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내가 생각했던 박현욱 소설의 특징들..
'아내가 결혼했다'로 그를 만난 후, '새는'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동정 없는 세상'을 읽게되었다. 그의 작품 출품 순서와 반대의 순서로, 그의 작품들을 만난 셈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상식을 넘어선 파격적인 이부일처제를 통해 결혼제도의 틀을 구조적으로 깨는 시도를 하였고, '새는'에서는 80년대 고등학생이었던 은호가 은수를 동경하는 이야기를 통해, 첫사랑의 열병과 아련한 청년시절을 돌이켜보게 한다. '동정 없는 세상'에서는 수능이 끝난 후, 여자친구와 한 번 자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고등학생의 첫경험도 전기를 소개하며, 어른의 생활을 동경하던, 수능 후 입시전까지의 무료한 공백의 시기를 보여주었다. 소설보다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가 책장을 넘기게 했던 '아내가 결혼했다', 최동원이란 투수를 기억하게 하고,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 듣기시작해서 종료하는 과정까지의 형식이 독특했던 '새는', 성을 갈구했던 고딩의 심리묘사가 섬세했던 '동정 없는 세상'까지 각 작품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둘, 셋 사이에서 관계가 다 이루어진다고 할까.
등장인물을 많이 소개하지 않더라도, 소수의 인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작가의 필력의 힘이라 생각한다. '결혼'과 같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제도를 뒤집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박현욱소설의 매력이 느껴진다. 등단이후 8년의 시간동안 8편의 단편들이 모여, <그 여자의 침대>가 출간되었다. 2002년부터 2008년 봄까지 쉬면서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짧은 호흡속에 장편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색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느낌, 첫 단편을 읽고 난 후 가슴을 떠돌던 감정이다.
# '잊고 살기 쉬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단편들.
그의 단편들을 보면, '잊고 살기 쉬운 감정'들이 하나씩 떠오르게 된다. 남자아이들의 세계에서 지고 싶지 않아, 화해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결국 모진 말고 평소 다투던 학급 친구 혜정의 생일초대를 거부하고 집에서 홀로 그애에게 사주고 싶었던 꽃무늬 샤프펜슬을 보며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는 <해피버스데이>에서는 박정희 서거 직후, 새헌법투표를 하던 당시의 풍경과 어른들의 좌절, 그것을 따라하며 어른이 되고 싶었던 아이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있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했던 사회적 관계에 눌려 본능적 마음을 표현하기 꺼려했던 어린 아이의 마음을 읽는 재미가 잔잔하지만 쏠쏠하다.
매 순간 치열한 경쟁의 순간, 합격하게 되면 탄탄한 인생이 보장받은 것처럼 보이는 사법고시처럼,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지고 마는 강의 프로도전기를 통해 치열한 인생의 순간들과 그것을 놓았을 때의 묘한 후련함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열정과 다 쏟았지만 결국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아쉬움, 특별한 스타 몇명은 큰 부를 차지하지만, 많은 이들은 바닥에서 괴로움을 견뎌야 하기에, 용이 되지 못하고 이무기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는 그런 추억들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에 대한 발칙한 상상으로 <아내가 결혼했다>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작가이다. 많은 걸 기대하지 않고 행복이 아닌 사랑없는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모습을 <연체>,<그사이>,<생명의 전화>통해, 결혼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첫번째 이혼을 경험하며 담배를 끊고, 두번째 이혼의 상황에 직면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하지만, 결국 이혼을 하게 되자, 다시 담배를 찾아 무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에서 잔잔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행복해지려는 마음' 없이 결혼을 하였더라도, 결국 결혼에 실패하게 되는 모습, 결혼은 혼자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사랑의 마음을 지닌 채 결혼하더라도, 결혼에 회의를 느낄 수 있고, '사랑 없이 결혼'하더라도 결혼의 위기 상황은 계속된다.
연립주택에서 시어머니와 가까이 사는 것을 반대하며, 이사를 가자고 주장하는 아내와 돈이 없어 이사를 못한다는 남편은 서로 싸운다. 하지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 못하더라도 '그냥 나를 위해 이사해 달라는' 아내의 요구, 그냥 큰 느낌 없이 잔잔한 감동이 느껴져 결혼을 했던 남편은 아내의 측은한 모습과 비좁은 집안을 보고 새집을 사는 것이 아닌 전세로 이사로 가는 것으로 타협에 성공한다. 하지만 다시 이사했을 때 사야할 품목으로 한밤중 아내와 다투고 뛰쳐나오는 남편의 모습이 등장하는 <링 마이 벨>에서도 결혼이란 제도 속에, 서로 치열하게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결혼은 행복한 연애의 연장이자, 인생의 큰 목표가 아니라, 치열하게 의사를 극복해야 하는 전쟁터이자, 행복이 아니다라는 것을 작품을 읽다 보며 느끼게 된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에, 내 마음 만으로 다 이루기 힘들다고 할까. 결혼의 여러 풍경들을 단면적으로 잘 드러나 있고, 그 풍경을 보며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장편소설의 주제와 겹쳐보이는 단편소설도 있었다. 어렸을 때 감화받았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테너 솔로를 찾지만 결국 찾지못하는 <벽>은 지나버린 시절들의 소중한 추억들, 하지만 다시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편소설 <새는>의 주제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해피버스데이>을 읽은 후에는 <동정 없는 세상>이 떠올랐다.
20cm의 작은 공간, 하지만 초싱글 침대에서 더블베드 침대로 바꾸었다가 다시 초싱글 침대를 선택했던 여성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그 여자의 침대>에서는 삼십년의 세월 중 일 년 간 생활했던 결혼의 생활, 그 순간을 몸이 기억하고,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 결혼제도보다 혼자 사는 일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을 나타내준다. 사랑으로 다른 많은 부분을 공유하며 잊어갈 수 있지만, 혼자에 익숙해진 자기만의 공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고 할까. 남친과의 큰 갈등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미묘한 선택 하나로, 서로간의 갈등의 폭을 보여주기에, 작가가 관계를 보는 시각과 그 예리함을 느낄 수 있다. 어긋나고, 행복하지 않은 단편속의 주인공들의 삶을 보다, 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의 싹을 보았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박현욱은 총잡이나 신봉자가 아닌 아이러니스트라는 문학평론가의 평론의 글귀에 공감하게 된다.
다음 장을 계속 넘기게 하는 그의 재미있는 묘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다음 장면을 읽게 하는 가독성은 충분한 책이다. 재미있는 대사보다 좀 더 주변의 상황과 관계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특별한 때 먹는 스페셜 고급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김치를 놓고 먹는 식사를 한 느낌이다. 큰 마음의 감동은 없지만, 일상을 좀 더 들여다보게 한다. 읽었던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책을 선택해 읽었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