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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 쓰디쓴 진실을 대면한다는 건...
타인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아이, 히토시의 특수한 능력에 대해 그의 어머니인 하기타니 토시코씨가 죽은 히토시를 추억하며, 르포 작가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찾아온다. 시게코는 히토시가 남긴 그림 중, 9년 전 연쇄살인범과의 끔찍한 추억이 담긴 그림의 특별한 비밀이 스케치북에 담긴 것을 보고, 연루되고, 하토시가 참여했던 푸른아동모임, 아동상담소와 그가 남긴 베트맨 그림이 있는 풍향계 집의 회색옷을입은 소녀 그림을 통해 자신의 딸을 죽인 채, 16년간 마루에 방치한 부모의 사건에 빠져들게 된다. 차녀인 세이코는 충격을 받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미안해하는 부모님 대신, 부모의 범행의 진실을 알려줄 것을 세이코에게 요청하게 된다.
하나씩, 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면서, 딸의 부모를 힘들게 한 협박범과 협박범이 저지른 사건에 휘말린다. 아카네와 행동이 닮은 부모님이 동생을 예뻐해주는 것을 질투한 까칠한 소녀 마사코의 모습을 보며, 시게코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어머니의 고백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세이코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 혈육간의 정을 끊어야만 얻을 수 있는 낙원
패륜, 불륜 등 친족간에 세상 사람들이 지탄할 만한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만 없다면 이룰 수 있는 낙원, 그 낙원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행복을 망치고 싶지 않아, 딸 세이코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다니자키 부부는 살인을 결정하고, 패륜아인 협박범에게 돈을 뜯기는 신세가 된다. 아내의 언니에게 생겨난 문제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게 된 다쓰오와 세이코,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내 주변에 그런 경우가 없기 때문에, 쉽게 범죄와 그 주변에 대해 쉽게 이야기했던 건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자에게 해를 당한 피해자와 피해자 친족들도 슬픈 일이고, 또한 피해자의 가족 역시, 평생 마음의 상처를 안고 가기에, 범죄는 그만큼 슬프고 아픈 일이라는 걸 깨닫곤 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진실을 알고 싶어 시작된 시게코의 르포 작업은 뭔가를 감추려는 사람들의 아픈 약점을 공격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아낸다. 시게코가 숨기려는 사람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진실의 파편들을 주워모으는 모습을 보며, 의도는 다르지만, 다니자키 부부에게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행위와의 유사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모른 채 하고 덮어두면 될 일도, 사람들은 호기심이라는 이름과, 때론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도에서 타인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의도와 상관없이 피해보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할까.
뉴스와 신문의 정보를 해석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기에, 언론매체의 도덕성과 인간에 대한 배려가 더욱 중요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보도에도 현명하게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갖추려 노력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어려운 숙제를 만난 느낌이라 할까. 시게코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지만, 세이코나 아카네, 그 가족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았을 때,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답은 없지만, 비난은 쉽게 할 수 있고, 그 고통은 당사자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인것 같다. 성장기 예민한 아이를, 부모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사랑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하는 일도, 또한 부모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거품경제의 늪속에서 가난한 가정을 비관하고, 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던 아카네의 마음, 다른 상황이 되면 나도 좋은 아이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 마음, 다른 집은 잘 사는데, 왜 우리집은 가난해야 하는걸까? 나도 잘 했는데, 왜 난 칭찬해주지 않는 걸까? 내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원망의 마음이 가득찬 아카네의 사춘기의 마음도 공감이 가고, 부모의 안타까움도 눈에 보였다. 지금 즐기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철없는 마음은, 지금 충실한 인생을 살지 않으면,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로 바꾸어져 있다는 노모토 형사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내면에 존재할 수 있는 어둠의 요소가 보인다. 그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지 돌아볼 수 있기에 미유키 소설이 매력있고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에게는 추한 비밀을 알려서는 안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희생해도 좋아, 우리 사회는 이런 약점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현실과의 묘한 인연...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자신이 꾸었던 꿈에서 소설을 구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언니가 마루에서 죽어 있는 모습이 발견되는 꿈을 꾸었는데, 실제 작가에게 친언니가 있어서 슬펐다는 이야기와 모방범을 집필하는 당시에 꿈을 꾸었고 메모했고, 연재를 결정하고 준비 중에, 실제 일본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마루에 오래동안 방치했는데, 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는 이야기가 뉴스로 전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욕망에 굴복해 책을 펴냈다고 한다. 시게코가 그림에서 시체가 된 소녀가 묘사된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못한 것과 닮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파격적인 행동을 한 '도이자키 아케네', 죽은 소녀의 이름을 가진 소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은, 추격자의 감독이 친구의 이름을 따 김윤식과 하정우가 연기한 배역에 이름을 붙였는데, 하정우가 연기를 한 배역의 이름의 친구가 추격자가 인기 있을 때마다 욕을 퍼부었다는 이야기를 배우가 이야기하는 수상소감에서 듣게 되어 웃기도 했다. 소설은 픽션일 뿐이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세부적인 묘사와 현실성 강한 대사들은 현실을 보게 한다. 작가의 다음 소설이 궁금해진다. <모방범>을 읽고 난 후에 읽어도 좋고, 책을 읽은 후 <모방범>을 읽어도 좋다 생각한다. 책들의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면, 하늘에서 떠 있던 해가, 어느 덧 달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