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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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면했을 때 하지 못한 말을, 글로 적어 전하다.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편지의 양이 많이 줄어들었다. 전화와 인터넷, 휴대폰 등의 발달로,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면 금새 다른 이와 연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신 살뜰히 줄어들고 있는 건 입으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전하는, 편지의 마음이다. 직접 대면했을 때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편지로 간접적으로 전하면, 자신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조선 시대, 사대부의 생활은 내외의 구별이 뚜렸하고, 자식에게 엄하기로 유명했다. 예의를 강조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전하는 편지들은 그들의 문집에 실려, 아비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종종 보고, 통화하며 부모와 지내지만, 때론 글로 적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잔소리들을 편지로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늘 똑같은 소리를 듣었을 때 느껴지는 피곤함이, 달라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군대에 있을 적 기다렸던 부모님의 서한을 다시 보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 습속은 다르지만, 아비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에 한결같다.
  

  퇴계 이황의 편지부터, 추사 김정희의 편지까지 10명의 아버지의 94통의 편지가 들어있다. 각 편지의 번역문 뒤에는 해설을 달아, 편지를 보낼 당시의 정황과 아비의 마음을 덧붙여 전한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많은 사대부들이 과거 시험만을 노리는 시대에 아비의 마음은 과거에 무조건 합격하는데 있지 않았다. 과거라는 시험을 계기로 자신의 공부를 가늠하는 계기로 삼아,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득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현대의 아버지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가 자식의 공부가 부지런하기를 바라는 건, 젊음의 시절이 길지 않고, 물 흐르듯 기다려 주지 않고 흐르기 뿐이라는 그 말이, 젊었을 때도 한 때라는 현대의 아버지의 말과 닮아있다.

  가장으로서 집안에 넉넉한 재물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아비의 안타까운 마음이 잘 들어나 있었다. 벼슬살이를 하지만, 높은 녹봉을 받지 못하기에, 소소한 일들까지 신경써야 하는 자식을 걱정하고, 그런 소소한 일들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통한 인격의 성숙을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죽기 직전까지 마흔이 다되는 현감이 된 자식이 보낸 선물, 자식의 미쁜짓도 백성들의 원망이 섞여 있다면, 도리가 아니기에 받지 않는다는 퇴계 이황의 행동과 자식을 칭찬하는 주위의 말들에 기뻐하면서도 칭찬에 들뜨지 말고, 더욱 행실을 조심하고 삼가기를 바라는 백광훈의 마음,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지키면서 자신이 죽는것은 근심이 되지 않지만, 어버이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식의 마음 등 가정을 생각하는 아비의 마음이 찬찬히 전해져 왔다.

  호탕하고, 풍자가 강한 박지원이 고기를 볶고, 고추장을 담아 가족에게 보내고, 집안은 소소한 일까지 하나하나 당부하는 모습은 연암문집에서 보던 풍채와 다른 소소한 아비의 부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높은 벼슬에 올랐거나, 낮은 벼슬에 있거나에 세상의 명예에 초탈한 모습에 관계없이, 속세에 연하여 있는 자식의 건강과 손자의 모습에 일희일비하는 가정적인 사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할까. 습속은 현대와 많이 다르지만, 가정을 아끼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 소소하게 신경쓰는 아버지, 근엄하게 질책하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아버지, 유배지에서 가정을 그리워하는 마음 약해진 아버지 등 자식을 행복을 위해 고생하는 기러기 아빠와 가장의 짐을 지고 있는 아버지의 안쓰러운 모습이 눈에 겹쳐 보인다. 어머니에 대한 조명과 헌신은 우리 사회에 많이 나와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조명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한쪽이 강한 모습을 보이면, 한쪽은 따스한 모습을 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어머니가 따스한 모습의 역을 맡았기에, 함께 따스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어머니 못지 않게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안부 전하는 소식과 작은 풍경 하나에 조선 시대의 풍경을 알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옛 선인에게 배우고 싶은 아름다운 풍속을 하나 발견한 느낌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아비가 되었을 때, 다른 건 못해주더라도 글로 자주 마음을 전하는 일은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꼭 글로 보고싶다, 사랑하도고 전하지 않아도, 집안 사람들이 청소하는 데 어려움을 해소하는 작은 물품을 만들어서 보내는 아비의 마음에서도, 자식과 가정을 생각하는 도타운 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철이 많이 들지 않았지만, 글 너머의 풍경 속의 마음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매우 필요했지만, 아버지는 바빠서 보기 힘들고, 자라고 나면, 아버지가 나를 찾아 의지하려 하지만, 시간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편지가 힘들다면, 전화 한 통, 문자 하나라도 도탑게 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5년도 넘은 옛날 보낸 아버지 술 많이 드시지 마시고, 일찍 들어오셔야 해요. 아빠 사랑해요라는 문자가 아직도 아버지의 문자메세지함에 저장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먼데 떨어진 있는 형의 소식과 전화를 기다리는 마음, 형도 이미 장가를 들만큼 성장했지만, 부모의 눈에는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인가 보다. 책장에 두고 아비의 마음을 대신 헤아려 보기 좋은 책이다. 

  선인들의 가훈과 유언을 엮어모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거라 생각한다. 편지로는 순간순간 아버지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훈과 유언에서는 삶 전체를 아울러 자식에게 전하는 아비의 마음이 가슴에 전해진다. 난리 중에서도, 유배지에서도 아버지가 자식에게 전하는 말은 일희일비하지 말고 멀리 보며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라고 했다. 경제가 많이 힘들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포가 가득 찬 시절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멀리 보면서 다들 잘 견뎌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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