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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 박사와 루트 그리고 나의 이야기
오가와 요코.후지와라 마사히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저자와 집필에 도움을 준, 수학자의 아름다운 만남
80분 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 노인과 그 집에 청소와 음식을 준비해주는 파출부, 그리고 아들 루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있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딱딱하고 강압적으로 익혀야 했던 수학이 이렇게 아름답고, 감성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걸 작가인 오가와 요코 덕분에 알게 되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집필을 준비하는 중에 오가와 요코가 후지와라 마사히코 수학교수에게 취재를 위해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책의 출간 이후 그들은 한 토크쇼에서 수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토크쇼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와 취재도중에 들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모여 한 편의 책으로 묶어졌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지 않았더라도, 딱딱했던 수학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의 낭만적인 이야기와 수학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딱딱하지 않게 다가설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작가가 묻고 교수가 대답하는 대담을 듣다보면, 일상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멀게만 느껴지는 문학과 수학 사이에, 아름다움과 감동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수학 강의'가 아닌, 수학에 다정하게 다가 설 수 있는 책.
첫 인상은 인간이 관계를 맺는데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아무리 착한 심성과 따스한 마음을 지니고 있더라도, 첫 인상이 차갑거나 무섭게 느껴지면, 친근하게 다가서기 힘들다. 학창시절부터 학교에서 배우는 따분한 산수와 수학시간의 교육과 일상생활에 도무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활용성 때문에 수학은 재미없고 딱딱하고 피곤한 과목으로 인식되어진다. 수학에 서려있는 첫 인상의 딱딱함을 깰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알고 보면, 낭만적이고, 아름다움에 빠져 수학에 몰두하는 수학자의 모습과 아름다운 정리들은 지금 '당장'은 필요없지만, 아주 먼 오랜 시간에 매우 크게 활용될 수 있는 가치있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대담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수학자들은 5년, 10년 이상 한 문제를 고민하기에 집중력이 강하고, 연애에 빠지게 되면 오래 빠지는 성향이 있다거나, 뛰어난 성과를 냈지만, 큰 봉우리에 큰 골짜기가 따르는 것처럼 영광과 좌절의 깊이의 차가 컸던 천재수학자들의 드라마 같은 삶과 골드바흐의 추측, 페르마 정리 등의 큰 수학적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과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 등 수학적 현안문제들을 문제 풀이가 아닌, 수학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가이지만, 수학적 독창성과 통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와 부모님이 모두 문학가인 수학자와의 만남이었기에, 딱딱한 수학 이야기가 아닌 감수성 풍부한, 친근하게 다가선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허수와 완전수, 우애수, 0 등을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아름답게 표현한 대목과 작품 집필의 뒷이야기가 대담을 통해 소개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를 읽은 이에게는 에피소드를 들을 좋은 기회이고, 읽지 않은 이에게는 책을 읽어 볼 인연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연이라 생각한다.
# 기초학문의 발전 없는 실용학문의 강조의 미래는 밝지 않다.
대담에서 수학 교수는 천재 수학자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이나 자연에 대해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고,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정신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영국과 인도와 일본에 뛰어난 천재들이 많이 나온 배경과 라마누잔, 뉴턴, 라이프니쯔 등의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즐겁게 만날 수 있었다. 복잡하고 기기묘묘한 현상을 단 한줄의 수식으로 정리해 버리는 데서 느끼는 수학의 매력과 엉뚱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수학자들과의 만남을 듣다보니, 어렵기만 하던 수학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수학의 발전사 중에서 인도에서 0과 기수법을 발견하고, 물리학과 수학을 접목한 미적분을 유럽에서 발견한 점도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무와 공 사상을 인정하는 동양의 문화가 0을 인정하게 되었고, 세상을 신이 창조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마음이 세계는 조화롭게 이루었다는 믿음으로 미적분을 발견하게 되었고, 일본은 행렬식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점 등 각 나라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똑같은 수학도 발전하는 방향이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수학 역시 문화의 한 갈래라는 말에 공감했던 시간이었다.
일본의 작가와 수학자의 대담으로 인해, 한국에 생소한 하이쿠와 일본 수학자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의 수학은 문학 다음으로 세계에서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 역시, 하이쿠는 아니지만, 정형시와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지원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뛰어난 수학자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영어와 컴퓨터, 기업가의 정신 중학교때 주식과 채권, 대학때는 산학협동을 장려하자는 실용적인 학문만을 강조하는 풍토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실학도 중요하지만, 기초학문의 발전이 없다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열매를 딸 궁리만 하지 말고, 새로운 나무의 씨앗을 심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까. 새로운 나무를 키우지 않는다면, 열매를 다 따고 난 뒤에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열매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더더욱 씨앗을 심는데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정부 당국자들의 정책과 지원과 일반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