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고3 수능 시험이 끝난 후,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감. 
  

  고3에게 수능시험날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는 옭아매고 있는 족쇄에서 해방되는 그 날이었으며, 한 달의 황금같은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는 시간이었다. 딱 한 달, 수능시험성적표가 학교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치열한 대학입시를 위한 눈치작전이 벌어지기에, 한 달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내가 했던 큰 일 중의 하나는 볼링을 배운 일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한 달 정도, 하루에 2시간씩 친구와 함께 원없이 볼링을 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말 공부가 미친듯이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이 아니였기에, 대학에 가면 좀 더 내가 원하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결과가 돌아올까 불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지만, 내가 정말 선택해야 할 일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현실에 안개속을 걷는 느낌 뿐이었다.

 

  오직 '한 번' 여자친구인 서영과 하고 싶은 준호의 '총각 딱지'떼려는 분투기를 지켜보면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옛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잘 알려주지도 않고, 금기에 가까워 경험하고 싶은 환상을 가득 채워놓은 '첫 경험', 많이 닫혀있고, 성적 에너지에 많은 정신을 쏟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분위기와 '성에 대한 묘한 환타지'에 대한 생각으로 독자들을 쉽게 책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저자의 늪에 빠진 느낌이다.


# 좌충우돌 '준호'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첫 경험'이라는 호기심 강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준호가 '첫 경험'의 환타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한 줄로 주제를 말하자면 방황하던 청소년기의 꿈찾기? 라고 할까.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높은 성적에, 부모님의 바램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지만, 준호의 외삼촌인 명호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실업자가 된다. 어렸을 적 자신의 꿈이였던 '만화가게'를 시작하는 명호의 모습에서, 성적표를 받고 나서 친구들마다 제각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심심'의 늪에 빠진 '준호'는, 내가 너희들 보다 잘 쓰겠다 하며, 시험삼아 썼던 '야설'의 원고를 소설로 수정하는 것을 시도하며 자신의 꿈을 찾기 시작한다. 대학에 기대도 미련이 없던 그가 근사한 어른이 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대학에 가기로 결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알아야 어른이 된다'는 통념에 빠져있던 고3 시절, '첫 경험의 폭죽이 터지는 환상'에 빠져있던 준호가, 여자친구 인영을 졸라가며,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과정과 결국 기대감이 만들어낸 환상이다는 점을 알게되는 점은, 대학에 가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고 생각되어지지만, 막상 가보게 되면 사회생활의 진로와 자유의 폭 만큼 더 깊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되는 과정과 닮아있다. 사회적인 통념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빠져 있다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숙고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이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타인의 기대없이 내 스스로 결정한다고 할까.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 숙경씨와 함께 사는 '준호'와 열린 어머니였기에 결국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몸 건강히 지금까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어머니 숙경씨의 고백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박학다식 명호씨와 준호의 '성에 관한 대화'는 어설픈 성에 관한 안내서보다는 훨 나아보였다. '첫 경험'이 20살 아래여도 상관없지만, 자신이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상대의 동의하에 '첫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생각한다. 충분한 준비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한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준비와 능력과 마음이 되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호기심의 열정에 빠져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벌어진 생명의 탄생은, 행복해야 할 가정이 아닌, 서로에게 상처와 부담을 안고 헤쳐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여유가 된다거나, 단순한 끌림이 아닌, 오래된 열정이라 확신하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스스로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 생각한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의지로 길을 선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어진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하기에, 최악의 상황에도 담담하게 현실을 감내한다고 할까. 부모님과 친구와 선생님의 조언 역시, 조언일 뿐 결국 스스로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남아있다. 오랜시절의 꿈을 잊지않고 꿈을 이뤄낸 명호씨와 '첫경험'을 위한 분투속에 자신이 걸을 길의 방향을 잡은 준호에게 박수를 보낸다. 

  소수의 등장인물로, 거뜬히 한 편의 장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잘 발휘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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