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뒤돌아보면 가슴 설레였던 학창시절의 추억, 80년대의 방식으로, 그때를 돌아보다.
 

  학교를 등교하던 시절에는, 가슴 속에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하고 픈 마음 뿐이었다. 수학능력시험만 지나면, 대학에 들어가면 내 세상이야라는 생각에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랬었다. 대학생활마저 졸업하고 나니, 그때가 참 좋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뒤돌아보는 일들은 즐거웠던 기억은 두 배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시간들은 은은한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다. 다시 그때처럼 생활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것 같은데, 예전 일이라 생각하면, 슬며시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10년 아니, 20년이 지난 오래된 테이프를 다시 듣는 느낌은 어떤 기분일까? 오래된 테이프를 오디오에 넣고 옛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책 속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돌아가다.

  
  키도 왜소하고 음치에다 공부는 뒤에서 다섯번째이자,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은호는 달동네처럼 높은 동네의 다락방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집을 나가셨고,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다. 고등학교 1학년때 운동장 수돗가에서 첫 사랑인 공부 잘하고 예쁜 은수를 보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 설레고, 행복을 느꼈던 그 때,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닿기 위해 그 당시 아이들이 동경하던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아침에 신문배달을 시작한다. 신문배달을 해서 모은 돈으로 싼 기타를 사고, 기타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을 응원해주는 현주를 만나게 된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고, 갑자기 늘어버린 실력에 가을 축제에서 2학년과 함께 합주를 하게 된다. 

  은수가 문예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함께 합주를 했던 선배가 문예반원이라서 문예반에 들어간 은호는 온통 은수에 조금 더 닿고픈 마음 뿐이다. 매주 그애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독서토론회를 기다려하고, 그 아이와 한 번 대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해 한다. 같은 반 우등생이며 거만한 민수에게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과 문예반에서 활동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고, 현주는 종종 은호가 있는 도서관에 와서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눠준다. 다시 돌아온 축제에 연합 독서토론회가 열리고, 예전 현주가 알려주던 새로운 해석의 도움을 받아 민수에게 복수를 해 준다. 축제에서는 독주를 맡아 자신의 최고의 실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문예반에서 다시 연주를 하게 되고, 은수에게도 큰 박수를 받게 되자 용기를 얻은 은호는 은수에게 운동장에서 "은수야, 나는 네가 참 좋다"는 말로, 사랑 고백을 한다. 우린 고등학생이라며, 대학에 들어간 후에 생각하자는 은수의 말을 유보라고 여기며, 은호는 공부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늘 은호주위에 서성거리던 현주의 과외와 도움, 그리고 자신의 결심으로 조금씩 성적을 올려가던 은호, 일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서울에서 두번째, 혹은 세번째로 좋다고 불리는 학교에 합격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은수에게 고백을 하고, 현주의 숨은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갤러그라는 게임에 열광하고, 나이키와 죠다쉬를 갖고 싶어했던 80년대의 학창시절들을 돌아보며,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추억과 비교해 보게 되었다. 갤러그라는 게임은 <철권 시리즈>등의 액션게임들과 스타크래프트의 온라인 게임으로, 기타 또는 그룹사운드에 열광했던 시선은 B-Boy의 현란한 무대로, 나이키의 브랜드는 여전하지만 아디다스 또는 다른 유명 브랜드는 많았던 모습과 겹쳐졌다. 시대는 달랐지만,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과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던 첫사랑, 아니 짝사랑의 열정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모든 건 학창시절, 어렸던 마음이였기에 가능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하기에 자신을 바꾸었던 은호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고, 그런 열정을 "누굴 사랑하기 위해 내가 달라져야 한다면 나는 싫을 것 같아. 한 눈에 반한 사랑이란 건 스스로에게 씌워놓은 환상이야"라는 현주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노력했던 은호의 마음도, 늘 주변에 서성이며 보이지 않게 힘을 주었던 현주의 사랑방식, 시대는 흘렀고 그 방식은 또 변화된 시대에 맞게 달라지지만, 그 애틋한 마음들은 시대를 떠나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같다. 

 
#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방식은 달라지지만,  인간의 마은은 늘 여전하다.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 자꾸만 노래를 한다. /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나아간다. <새는>이라는 제목의, 송창식의 노래이다. 은수에게 거절을 대답을 듣고, 멍하니 하늘을 보았을 때 창공을 가르며 나는 새들의 모습을 보지만, 은호는 갈곳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찌어찌 학교에서 공부는 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과목을 찾지 못해 고민했던 대학입학의 과를 결정하던 내 모습과 겹쳐진다. 태어나면서 자신이 갈 곳을 정해놓고, 그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의 유성의 모습이 아름다워 날기 시작했던지, 어미 새의 이끌림에 헤어지지 싫어 따라가던지, 동경하는 새를 보고 그 새와 함께 날고 싶어 날기 시작하던지, 일단 나는 법을 배우게 되면 어디로든 날 수 있게 된다. 『새는』을 읽으며,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무엇을 위해 나는지도 모른 채 하늘을 나는 법을 억지로 배워야 했던 학창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어둠으로만 가득했을 때, 별빛의 아름다움 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이, 아무것도 모른채 나는법을 배워야 했던 그 시절의 아려한 추억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80년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 시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그 이하의 세대에게는 사람들의 이야기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시절의 풍경을 생생하게 엿 볼 수 있다. 그때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응하기 힘들었지만, 2000년대의 지금은 교권이 바닥까지 떨어져 버렸다는 문화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좁은 울타리, 선택의 폭이없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지만, 조금씩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교권이 무너지고 있지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 유지했던 90년대의 학창시절이 학교생활의 경계였던건 아니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르게 각도로 바라보면, 새로운 점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손가락을 잃고 난폭하게 변해버린 아버지의 폭력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과정이 보이기도 하고, 이름만 알고 있던 송창식의 노래 가사에 맞춰 소설이 구성되었음을 알 수도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최동원의 이야기를 통해, 자이언츠의 수호신이였던 그의 활약과 일대기도 볼 수 있다. 스포츠의 삶과 소설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이야기는 다음 작품인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풋풋함과 친근함이 공존했던, 80년대의 모습과 아무리 제약을 해도, 다들 할 건 다 했구나 하는 윗세대와의 묘한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다. 요새 아이들의 개방적인 인식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한다면, 세대와의 교감을 느끼는 데도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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