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뒤에 숨은 글 - 스스로를 향한 단상
김병익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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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파도타기를 시작하며 만난 인연..

  
  이권우씨의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복문을 즐겨쓰는 저자를 알게 되었다. 이권우씨가 3부 '책 뒤에 숨은 책'에 붙인 이름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작가의 묘한 인생관이 흥미로워 책 파도타기의 다음 책으로 선정하였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호감있는 저자의 책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택한 모험이기에 설레임도 컸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 자서전 비슷한 책과의 인연과 저자의 생각이 깊이 배어있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동아일보 기자였으며, 기자해직사태를 경험하기도 했고, 계간지 <문학과 지성>의 발간 멤버이지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의 발행인이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소장하고 있는 문학과 지성사의 책이 얼마나 되는지 책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최인훈의 <광장>과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한강의 <여수의 사랑>과 <그대의 차가운 손>, <기형도 전집>, 염상섭의 <삼대>가 있고, 읽은 책으로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문태준의 <가재미>, 정이현, 김애란의 작품들이 눈에 보인다. 책등에 색띠가 인상적이였던 출판사의 책을 보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유신정권의 탄압도 많았던 시절에도 고비를 잘 넘기면서 운영을 하였던 저자의 생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발행인이 문학과 지성사 대표인데 왜 산문집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는지도 궁금해졌다. 누군가가 궁금해지기 시작하자, 책을 읽는 일이 즐거워졌다.
 

# 드러내면서 숨기고 싶어하는 저자의 생애를 돌아보다. 에피소드에 마음이 빠져들다.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저자는 수줍음이 많았고, 어떤 사안이나 행동에 대해 되풀이해 생각하는 일을 거듭했고, 무언가를 확신있게 단언하는 말들을 두려워했다. 세계와 자아에 대해 밀려오는 허무감은 사소한 것에서 의미 찾는 일로 벗어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4.19 세대로 한글 세대라는 점에 자부심이 넘쳤고, 비평을 오랜 시간 해 왔으며 잘된 비평이란 현실 세계와 그것의 언어적 질서화 간의 관련성을 정확하고 의미 있게 메타화시키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자유주의와 보수적 민주주의 편에 서 있으면서도 사회주의와 진보주의의 현실화를 소망하는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기독교신앙에 올인했지만, 대학시절 담배를 물며 결별하였고,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기독교에서 배운 고뇌와 반성을 통해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점과 사랑이 사람들 관계의 구원을 얻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르며,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을 다행이고 축복으로 여긴다. 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활동을 하다가 1974년 노조사태에 한국기자협회장에 선출되고 10.24 언론자유선언 을 지원하다가 안기부에 연행되고 사퇴를 조건으로 석방된다. 그 사건으로 동아일보사에서도 해임되고 문학과 지성사를 창간하기로 결정한다. 커피와 바둑을 좋아하지만,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지만 담배는 지독한 애연가이다.  

  소소해 보이는 소재들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다 보면, 저자의 생애를 함께 지켜본 기분이 든다. 4.19, 5.16, 해직사태 등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큰 사건들을 담담하게 돌이켜 보는 점에 한 번 놀라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에 다시 놀라고 만다. 김현과 문화부 기자 동기들과 함께 계간지와 출판사를 만들었을 때의 에피소드와 오랜시간 출판사를 운영해가면서 생겨났던 에피소드 등을 통해 책 뒤에 숨어있는 여러 사건들을 들여다 보게 된다. 황동규 시인과 김현, 이청준 등 다양한 인연들과의 에피소드 등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멀게만 느껴지던 작가들의 인간적인 면모 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출판하기 전의 에피소드와 판금을 당하지 않고 출간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해외에서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전축으로 듣고, '노예들의 합창'이 너무 감명적이여서 귀국하면 오디오를 장만해서 듣자고 이청준과 약속해서 이청준씨는 여자가수가 등장하는 <제 3의 현장>이라는 소설을 써서 인세로, 저자는 이청준씨의 소개로 중원사에 약간 수정한 <1984년> 원고를 다시 팔아 그 수입으로 황동규 시인이 주선한 오디오 세트를 잔망했다는 이야기였다. 오디오 세트를 장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등을 상상하다보니,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기분이 좋아졌다.


# 소유하지 않는 문학 공동체의 꿈과 글쓰기의 힘겨움과 독자에 대한 배려.

  
  발행을 했지만, 상속이나 이전하지 않고 주식회사를 만들어 '문학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이가 깊어지면, 자신의 신념도 강해지고 자신이 해 놓은일에 대해 애착이 강해진다는 데,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사회'를 만들어서 공동의 운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흔치 않아서이기 때문일까. 개인적인 생각에 디자인을 중시하는 다른 출판사 책들에 비해 촌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에 탐탁지 않았었는데, 새로운 모습을 보니 출판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도 더해졌다. 평론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자의 비평글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도 느꼈고, 청탁받지 않았고 스스로 집필한 여행기의 내용도 궁금해졌다. 아무런 기대없이 찾아간 축제에서 큰 대접을 받은 느낌이랄까. 창비와 함께 한 시대의 획을 그었던 문학과 지성사의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담담하게 기술한 이야기에서 문단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처음 동아일보에서 첫 기사를 만들 때, 데스크가 10분간 수정해 준 경험을 계기로 저자는 두가지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글이란 그것이 하잘것없는 기사라 하더라도 힘든 고통 속에서 일구어진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글이란 내 생각이나 느낌의 자의적인 혹은 주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남에게 읽혀 소통해야 하는 관계적 형태의 것이라는 점이다. 힘든 고통속에서 글이 일궈진다느 말에 동의하며,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기 편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불편하지 않게 한 번 더 고려하면서 글을 다듬어야 한다는 점, 두 가지를 배운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소득이 된 책과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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