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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이권우 지음 / 해토 / 2005년 8월
평점 :
#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간다는 건...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책을 만들거나 책과 관련된 기자와 편집장을 지내다가, 책만 읽으면서 살아가기 위해 '도서평론가'라는 직업을 스스로 만들었다. 어느정도 출판계에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할 일이라 생각한다. 도서평론가 생활을 하며, 잡지와 신문에 기고한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내용을 배우고, 책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제목과 저자의 삶이 일치하고 있다. 사실 3년전에 저자의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저자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흘러들어간 책의 수만큼 내 안의 책을 보는 안목이 자랐기 때문일까. 다시 만난 저자의 책에는 가독성과 객관성의 두 마리 토끼가 살고 있었다. 글의 힘에 따라 줄줄 읽다보면, 깊이 있는 저자의 안목을 만나게 된다. 안목의 힘이 나를 사로잡았다.
# 48권의 알토란 같은 책들, 그리고 잘 짜여진 구성.
48 편의 글 속에는 50권이 넘는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통찰력의 힘으로, <글 뒤에 숨은 글>과 <한글 세대가 본 논어>가 소개되기도 하고, 비슷한 주제지만 다른 접근방법을 보이는 책을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의 구성 방식이 잘 짜여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자신의 경험과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관심을 사로잡고, 핵심적인 메세지로 책의 내용을 이해하다보면, 마지막에는 저자의 성찰로 글은 마무리 된다. 자신의 감성에만 치우친 '독후감'도 아니고, 책의 내용을 요약한 '다이제스트'도 아닌, 객관적 시각으로 작품이 장단점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수긍할 수 있게 완성되어 있다. '평론'이라는 객관적 틀이 잘 잡힌 책이라고 할까.
거기에 이권우라는 저자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기까지 하다. 정재승 교수의 <과학 콘서트>를 통해 저자가 1도시 1책 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초빙한 세미나를 통해 그가 소개하려는 작가의 성품을 알 수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 않았을 책들이, 그의 소개글을 보게 되며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어진다는 점, 저자의 신작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를 읽지 않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구성할지를 이 책을 통해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다.
# '책 파도타기'를 하기 좋은 책.
책을 가장 즐겁게 읽는 방법 중 하나는 재미있게 읽은 책의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거나, 저자의 책 안에 소개된 책들을 읽는 일이다.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물레처럼 저자의 다른 책과 소개된 책들이 촘촘히 짜여지면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생긴다면, 좀 더 빠르게 독서에 흥미가 생긴다고 할까.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책 파도타기를 할 책으로 김병익님의 <글 뒤에 숨은 글>을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지은이가 제목붙인 작가의 책 제목이 궁금하기도 하고, 보수주의자지만 진보주의를 이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주의에 대한 비판을 늦추지 않은 그의 삶의 자서전이기도 한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 책을 읽게되면 <글 속에 숨은 글>에 소개된 다른 책들과 <책과 더불어 살아가다>에 소개되었던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 책을 파도타듯 읽기 시작할 것이다.
파도가 치지 않아 내가 파도를 타지 못하였던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보지 않고 육지만 보고 있어 책 파도타기를 하지 못한건 아니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타는 파도이기에 서툴기도 하고, 지치기도 할 것이다. 어느정도 궤도가 오를 때까지 파도 타는 일을, 바다를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겠다. 나만의 성향에 갇힌 편독의 범주를 넓힐 좋은 계기를 준 책과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