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 명주 잠자리, 개미귀신 그리고 개미지옥

 
  명주 잠자리의 유충은 개미귀신이라 불린다. 양쪽 더듬이로 개미 또는 벌레를 잡아먹으며 1년 내지 2년간 생활하다가 명주 잠자리가 된다. 날개가 명주처럼 곱다고 해서 붙여진 명주잠자리의 유충인 개미귀신은 원뿔을 뒤집어 놓은 듯한 구덩이를 만들어, 그 안에 개미나 벌레들이 들어오면 잡아먹는다. 개미들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인 개미지옥처럼, 바겐세일 중의 백화점 쇼핑의 유혹에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


# 화려한 백화점 내부의 모습, 화려한 빛깔 이면의 어두운 긴 그림자.

  
  전문대를 졸업하고 딱히 취직할 곳은 없고, 등록금 대출금과 생활비 때문에 장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소영, 고졸 백화점 직원이라는 학력을 떼고 싶어 악착같이 공부하는 미선, 4년제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1년반째 휴학하며 일하고 있는 윤경, 미선과 고등학교 친구였고 가난한 형편에 허덕이는 정민은 백화점 옷 매장에서 근무한다. 상품권 깡으로 발품을 팔며 생활하지만, 매점 노인에게 밥목이 잡혀 악마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선영도 백화점 근처에서 배회한다. 백화점의 화려한 풍경과 그 뒤 어두운 그림자에서 허덕이는 인물들의 모습의 사실성 있는 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백화점 바겐세일 3일째 화장실에서 살인사건과 과도한 다이어트가 원인인 지영의 탈진사건이 벌어진다.


 3일간 있었던 일들을 옷 코너의 직원의 시선과 범행자 피해자의 시점에서 다시 보여준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소설이 전개되는 듯 하지만, 사회성 강한 메세지에 더욱 관심이 갔던 작품이다.  쇼핑의 덫에 빠져, 카드를 긁으며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덫에 빠져가는 소영, 윤경, 정민의 모습과, 개미지옥의 모습들은 허영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크나큰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기도 한다. 구매능력으로로 사람을 평가하고, 매출에 의해 평가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꽃인 백화점과 그 백화점의 허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 공감가는 표현들에 끌리다.


  다섯 명의 여인들의 개인사와 사건들이 얽혀들어가면서 이야기들의 전개가 하나로 집중되는 것보다 여러가지 풍경의 단면들을 보는 느낌이 강했다. 하나의 사건들이 잘 연결되었다기 보다는, 각개의 사건들의 풍경들이 지금 현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고 할까. 첫 직업을 고를때 망설이던 "처음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 백화점 내 풍경을 보면서 '자꾸만 갖고 싶은게 생기는 마음', 존중받는 기분을 얻고 싶어 백화점을 찾아간다는 말과 "여행하고 싶은 곳의 사진을 한 쪽 벽에 붙여둔 채 하루에도 몇 번 씩 쳐다보면서 자질구레한 업무를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는 말, 어른이 되면서 가면무도회에 쓰는 가면을 쓰면서 생활하는 것 같다는 표현에 공감이 갔다.

  선량하고 약해보이는 백화점 근처 매점 노인의 얼굴 뒤에, 악덕 포구와 거간꾼의 뒷모습이 있다는 건 자본주의에 경도되어 돈에 물든 어두운 인간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아래를 보며 잘 걷지 않으면 어느새 개미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개미처럼, 화려한 쇼핑의 풍경과 자본의 유혹에 빠져 빚의 수렁에, 인격이 무너져내려가는 모습을 쓸쓸하게 잘 담아냈다. 

 

# 자본주의의 개미지옥, 그리고 무기력..


  무기력한 인물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지만, 그 또한 현실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컴플렉스와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를 비난하면서도 그 잣대에 익숙해진 내 모습을 보았을 때 정신이 번쩍 든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현실의 모습에 적응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하고 만다. 초라한 거울속의 우리 사회의 풍경을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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