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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렌디피티 수집광
앤 패디먼 지음, 김예리나 옮김 / 행복한상상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 '신변수필'과 '평론'의 적절한 만남.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대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신변수필은 이성보다 감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평론은 감성을 억누르고, 이성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에 관하여'로 번역되는 Familiar essay, 수상록은 이성과 감성의 적절한 균형을 요구한다. 19세기에 유행했던 수상록의 매력을 작가는 12편의 에세이를 통해서, 그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어렸을 때 많이 했던 자연채집, 작가가 관심있어 하는 작가 찰스 램과 콜리지, 좋아하는 대상에 관한 아이스크림과 커피, 밤에 더욱 기운이 넘치는 올빼미족, 우편물과 이사, 국기에 대한 이야기와 청년시절 잊지 못한 어린 친구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물 속에서'까지 소소하고 개인적 취향이 강한 소재들을 논리적인 이성의 뒷받침으로 세상과 사회에 관한 작가만의 관점이 객관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잘 전개되어 있다.
# 소소한 소재들로 느껴지는 감동과 에피소드를 통해 추억을 되살려보다.
소소한 소재들은 그 대상을 보는 심미안이 없다면, 길게 글을 쓸 수 없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소재에 대한 작가의 안목과 관점이 돋보인다 할까.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긴 글을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연채집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어렸을 때의 체험과 자신의 아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을 읽다보면, 카페에 앉아 친구가 소곤소곤 속삭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이사와 우편물, 자연채집등의 일상을 통해 나 또한 느꼈던 예전의 추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할까.
쉽게 말하기 힘든 유년시절 지인의 사망사고에 관한 '물속에서'와 나비채집과 수집에 관한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에 대해 알아나가게 된다고 할까.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면서도, 가벼움에서 탈피할 수 있는 건 수상록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 있기에 가능한 건 아닐까 싶다. 카누를 타고 카악을 하다 뒤집어지면서도 참지 못하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준 작가의 오빠 이야기와 이메일과 편지 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에 대한 친근감도 더욱 커진다.
# 기억속에 사라진 책 속의 인물들이 재발견.
추억을 되살려주는 소재들과 함께 이제는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피천득님의 수필에서 만났던 찰스 램과 찰스 램의 친구였던 콜리지의 책은 국내에서 만나는 일 조차 어렵다. 이렇게 책과의 책의 연결을 통해 다시 한 번 기억속에 담을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작가의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도 멋지다.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했던 애니 블루, 스콜 피츠제럴드, 루이스 캐럴 등의 엉뚱한 행동들은 작가의 소소한 면과 함께 작가를 다시 만나는 기회를 준다. 책속의 책 따라읽기를 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소재는 가볍지만, 메세지는 의미심장하다.
가볍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뿐이라면 이 책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소한 주제를 통해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개인을 벗어난다. 9.11사태와 성조기를 연대해서 전하는 다양성의 중요성, 침대의 길이에 맞춰 사람의 몸을 자르고 늘였던 트로크루테스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읽어야 하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세상을 보는 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많은 책을 읽은 작가의 젠체하는 듯한 느낌의 지적정보들을 즐겁게 읽어 넘길 수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 또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의 위트에 미소 지을 수 있다.
7년의 세월동안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소소함과 깊이, 즐거움과 감동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책이다. 12편의 이야기를 한 번에 다 읽기 보다는 하루에 하나정도 읽으며 즐거움과 생각의 깊이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권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가벼움 속의 무거움을 느끼고, 두 번째 읽을 때부터 작가의 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며, 세번째부터는 책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곱씹어읽을 수록 더욱 큰 매력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면,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을만큼 매력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