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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 욕망과 욕망을 채워주는 '책' 읽어주기.
친구로부터 목소리가 예쁘다는 칭찬을 들은 마리-콩스탄트는 신문사에 광고를 내어 책 읽어주는 일을 시작한다. 곤란한 상황이 생길 때, 대학생활시 따랐던 교수의 의견을 들어가며, 하나씩 의뢰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광고에 대한 응답으로 지체장애를 가진 소년 '에릭'과 마르크스의 사상에 심취한 '백작부인', 돈은 많지만 마리를 유혹하는 일에 더 열심인 '미셸 도트랑', 일이 바쁜 어머니의 관심과 일탈을 꿈꾸던 소녀 '클로렝스', 늙은 백작부인과 생긴 에피소드로 만나게 되는 형사,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늙은 판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욕망'과 책 이외의 무언가를 원하는 '욕망' 사이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는 마리의 모습을 보면서, 책 읽는 행위의 의미, 욕망을 채워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독자의 욕망이 드러나는 책 읽어주는 행위.
책을 읽어준다는 말에 가장 먼저 생각이 났던 건 조선시대 유행했던 전기수와 책비였다. 규방에 있던 아녀자들에게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전기수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통해 잠시 세상에서 벗어나기를 꿈꾸고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꿈꾸었던 여인네들의 욕망이 떠올랐다. 또한 너무 나이가 들어 책을 읽지 못하는 양반들 대신 책을 읽어주는 어린 책비들의 모습도 눈에 떠올랐다.
책을 대신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그들이 원하던 것은 책의 내용과 함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충족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콩스탄트가 만나는 사람들은 책을 읽어주는 행위와 함께 개인적 욕망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지체장애로 인해 움직임이 불편한 '에릭'은 이성의 육체에 대해 엿보길 원하고 그에 대한 암시를 책을 통해,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입으로 말하게 된다. 마리가 읽던 책의 내용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마리의 허벅지 사이에 책을 읽는 '미셜 도트랑' 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을 때 드러나는 또다른 리엑션을 통해, 갇혀있던 집과 다른 보통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이상한 나라'로 여행하고 싶어하는 클로렌스의 '욕망', 책을 읽어주길 원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으며 자신의 욕망을 언듯 내 비추는 교수와 책 읽어주는 행위의 고통을 통해 책 읽는 행위를 방해하려는 늙은 판사의 욕망까지 단순히 텍스트를 읽어주는 행위와 다른 개인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책을 읽는 행위 역시, 저자의 생각과 교류하는 일 뿐 아니라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 책은 독자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책을 읽어주는 행위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마리의 욕망과 마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개인적 욕망들을 엿보며 책을 읽는 행위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성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책을 읽는 마리의 모습, 노동자의 시위와 노동절에 사람들과 함께 싶어하고 싶던 늙은 백작 부인의 욕망, 마리와 함께 관계를 맺고 싶은 사업가 미셜의 욕망들을 보면서, 마리가 채워주는 욕망의 실현 역시,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책을 읽어주는 개인적 욕망을 채워주는 일의 연장선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사유와 생각없이 오디오 북처럼 제시된 텍스트를 읽는 행위만을 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책을 읽는 행위와 책을 읽어주는 행위에느 제시된 본문을 읽는 이상의 의미가 포함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문화적 차이를 통해 마리의 행위가 이해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았지만,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만큼 책의 내용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행위는 저자의 생각을 읽어가며 또 다른 세상을 엿보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고 부정하기도 하고 동의하기도 하며며,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 생각했었다. 이성적 사고로 생각을 만들어 내는 행위 외에도 책을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욕망을 드러내는 등 다양한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점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얻는 감정의 변화이다. 마리가 의도를 가지고 책을 선택해서 의뢰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의뢰인들이 욕망을 가지고 특정 책의 부분을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저자가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독자의 옆에 앉아 자신의 글을 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고 변하는 생각이 아닌, '독서'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책을 통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들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