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산문집
박상우 지음 / 시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 나를 찾기 위해, 혼자서 떠나는 여행.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내 마음이 가는 곳을 생각해 본다. 삶의 무게가 어깨와 머리를 짓누를 때, 사람들과의 관계에 지쳐 쉬고 싶을 때, 마음이 편안해 지는 안식처를 찾고 싶을 때,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여행을 찾는 경향이 강했다. 무엇을 위해 떠나는 것일까? 생각하기 전에, 지금이 너무 싫어 무작정 도피한다고 할까. 결국 시간이라는 무기와 자연이라는 편안함이 내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찾기 보다는 현상을 피해가는 작은 도피처일 뿐이였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는 제목이 좋았다. 왠지 자기만의 아지트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가려 뽑은 10개의 공간에는 작가의 깊은 사연이 담겨있다. 박상우라는 작가를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작품과 자유에 대한 생각, '나'란 존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았다. 1999년 이상 문학상 수상 이후 10년간의 칩거와 여행 생활동안의 흔적이 담긴 그의 작품은, 이제 이 작품을 계기로, 새로운 작가 활동의 시작을 암시하며서 끝이 난다. 더 높이 날기 위한 휴식이라고 할까, 자기만의 깊은 사색이 담겨있는 그의 모습에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역사와 자연, 사연이 살아있는 저자의 아지트.
양양 조산리 앞바다에서는 의상법사의 법성계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서는 남이장군과 세조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삿갓 계곡에서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김병연을, 청령포에는 단종의 슬픈 역사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역사와 자연의 풍경,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책이다. 중간 중간 담겨있는 빼어난 사진들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게 글과 잘 어우러진다.
'말무리 반도'와 동일 제목의 책을 지었던 작가의 사연과 말무리 반도의 가게집 처자와의 사연도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뒷 이야기들이 많은가 보다. 그 뒷 이야기는 작품과 맞물려 더욱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말무리 반도>의 또다른 남자 주인공인 저자의 오랜 친구를 보내기 위해 떠났던 대관령으로의 여행과 여행의 끝에 그의 죽음을 인정하고, 종료를 통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 역시, 대리체험이라고 할까, 저자의 경험을 통해 또 하나의 경험을 하는 느낌이었다.
# 모든 관계의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광산촌으로 교사를 자원에서 생활했던 시간들, 글은 안 써지고, 고뇌와 시련을 겪었던 그의 시간들이 더욱 작가를 깊이있는 작가로 만든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면을 쓰는 것처럼 연극배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인생을 깨닫게 해준 용유도, 원유 유출로 생채기를 입었기에 마음으로 품어주어야 하는 태안반도,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청령포, 작가의 인생의 분기점이 된 말무리반도 등 잘 알지 못했던 작가의 아지트를 이 두 발로 꾹꾹 다니면서, 저자의 기분과 나의 체험을 비교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나만의 아지트인 장소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건 여행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 되기에, 자신을 잘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만의 숨결, 나만의 사연, 나만의 에피소드가 있는 곳이 존재할수록, 힘겨워 보이는 세상이 무게가 삶을 압박할 때,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믿는다. 혼자서 당당히 떠나는 여행! 내 의지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주어졌을 때, 삶이 힘겨울 때 저자가 귓속에 들려준 그의 아지트로 떠나 보아야 겠다. 그리고 나만의 아지트를 늘려 나가야 겠다.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공간의 필요함을 알려준 책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니 어둠과 함께 비가 그쳤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어둠 속 풍경과 함께, 나와 관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