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의 두려움.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캐비닛 안에 잠긴 비밀번호를 풀어서 375개의 변화된 종의 기록인 심토머를 만나게 된다. 심심한 일상에 견디지 못하고 한 일은 보수도 많지 않고, 다른 직업에서 버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지만 묵묵히 캐비닛 주인인 권박사의 업무보조를 수행하게 된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네오헤르미프로디토스, 외계인 무선통신을 하는 사람, 다중소속자 등 일반 사람들의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만나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인정하게 된다.
강력한 메탄가스를 분출하는 사람이 있다. 생일 잔치에 촛불을 끄다가 불이 붙어 앞에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태우는 일도 있다. 그가 숨을 내쉴때 불이 가까이 있으면 화염방사기가 된다. 그는 끔찍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 된다. 편리한 과학과 의학은 메탄가스가 많이 분출이 되니, 불 앞에서는 트림을 삼가해주세요 라고 처방을 한다.
하지만 그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나는 왜 입에서 불이 나가는 걸까'가 아니다. 그가 힘들어 하는 것은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넌 다르지 않아'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을 보통으로 규정짓고, 사회에서 일상적인 일에서 벗어나는 사람 중 사회적 요구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경우에는 따돌림을 그리고 특이하고 경이로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기인이라는 칭호를 칭하며 자신과 차이를 둔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는 순간 그는 평범한 사람이 다시 되지 못한다. 여러가지 심토어들을 이야기하면서, 점차 지구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롭게 변이하는 종의 출현의 이야기와 함께 차이와 공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 책의 가장 큰 매력, Funny
딱딱하고 어려운 책이 절대 아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조금씩 빠져들다가 끝까지 읽게 된다. 재미있다는 것, 글의 내용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심토어를 인정은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위해서 무언가 해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는 그냥 캐비닛처럼 그들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그들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것, 어쩌면 그들도 그것을 원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캐비닛을 열때마다 이런 글귀가 나와있다.
나무를 통째로 씹어먹는 코끼리의 힘과
꼬랑지를 계속 물어 코뿔소를 쓰러뜨리는 하이에나의 집요함과
늪속에서 6개월을 굶주리는 악어의 기다림과
천마리의 암컷들을 거느린 물개의 정력이
세계의 어둠을 밝히려는 그대의 열정과 함께하기를
이 글을 볼때마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져 이런 말들이 튀어나온다.
"세계의 어둠 좋아하네. 내 청춘에 자욱이 깔린 어둠도 못 밝히고 있다. 이 인간아."
예측되는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온다. 억지로 만든 설정이 아닌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는 부분이 중간 중간 적절하게 들어있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때마다 한 정 정도의 분량으로 짧은 글들이 나온다. 이야기의 내용의 의미를 잘 알수 있게 하는 장치인거 같으면서도 무언가 가르치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좋은 내용은 다 알지만 알려주면 하기 싫은 윤리선생님의 수업시간이라고 할까. 그대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뭔가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하는 건 이 책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 그냥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 VS 무언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책
첫번째 읽었을 때에는 즐겁고 재밌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와 시간이 이렇게 금방 지나가다니.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올듯한 일들과 그들의 고민들을 볼 수 있어서 재미나고 신기했다. 처음에 소개하는 상피에르 사람들의 이야기는 폼페이 최후의 날의 폼페이 사람들인거 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보았을 이야기로 거부감을 적게하고,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두번째 읽었을 때에는 다른 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어디까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용인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정상의 기준은 무엇일까? 100년 전에 지금 이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사람들에게 정상인이 될 수 있는것일까? 정상이라는 건 사회에서 사람들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장치의 척도가 되는 건 아닐까? 결국 모두의 의식이 높아져야 누구나 일반사람처럼 사람답게,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생각하면서 살게 되는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보통의 감옥들이 지하에 어둠속에 갇혀 있는데, 왜 상피에르에서는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을까? 음식과 식사는 엘리베이터로 보내는 걸까? 올드보이처럼 만두만 먹이는 걸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내 일상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세번째에는 나가 아닌 권박사나 손정은의 시선으로 읽어 보아야 겠다. 왠지 다른 느낌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