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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 오토바이와 청년의 관계. 어른이 된다는 건....
왜 오토바이일까? 자동차와 자전거의 경계에 선 오토바이는 방황하는 청춘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도구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각 작품에서 의미있는 도구로 거듭난다. 톰과 제리의 사랑에서는 여행과 첫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게 해 주고, 스노우 라이딩에서는 오토바이가 고양이를 유기하려는 장소로 이동시켜 준다. 지금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채워주기에, 오토바이는 청춘의 흔들리는 마음을 잘 표현한다 생각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돈을 위해 살지 않으려는 마음과 현실 사이에서 걷는 방황이다. 무의미한 일상에서 바이바이 베스파와의 만남은 잊고 지냈던, 때론 잊고 싶었던, 그리고 잊어야만 했던 청년 시절을 환기시킨다. 순수와 성숙의 경계에 선,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인 청년들이, 5대의 개성 넘치는 오토바이와 함께한 5편의 단편을 읽으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문을 만나는 느낌이다.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는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 짧은 글, 긴 여운..
큰 감동은 없지만, 잔잔한 여운은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톰과 제리의 사랑>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 첫 경험의 풋풋한 추억들이 매끄러운 이야기와 함께 잘 담겨있다.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서툰 표현과 설레임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그 풍경들을 통해 서툰 마음의 흔적들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스노우 라이딩>에서는, 일 년간의 동거생활을 끝내고 다시 자신들의 갈길로 결정한 커플,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은 누구도 데려갈 수 없었다. 산 속 숲에 버리러 가는 길에 함께 동행하게 되고, 고양이를 버리려다가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흰눈을 보며, 다시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고양이를 상자에 놓아둔 채, 자기가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말을 건냈던 커플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나 역시 그런 고민의 시간들을 거쳐 조금씩 성장해 왔길 때문이라 생각한다. 잊고 지냈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음속에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들을 다시 꺼내어 보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소녀 밍키>에서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상대의 변화된 모습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가장 멋진 건, 그녀가 바라는 모습으로, 어린 마음 그대로 바라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 마미 피쉬>에서는 물고기에서 우리는 진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작은 생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멋있었다. 쉬고 싶을 땐, 잠시 백만년 된 할머니의 품 속으로 들어가 푹 자면 된다는 말, 꿈만 같지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할머니가 이제 그만해도 돼, 잠깐 편히 쉬어도 된단다 말하는 듯히 들렸다. 크게 감동되는 건 없지만, 작지만 뭉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글과 그림들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읽고 난 후, 마음이 훈훈해진다. 소설처럼 글로만 이야기를 만났다면, 장면에 대한 세밀한 느낌이 없었을 것이고, 일러스트가 매우 강조가 되었다면, 디테일한 묘사부분을 놓쳤을 것이다. 글을 풀어내는 솜씨와 마음에 와 닿는 일러스트를 그릴 능력이 잘 배합된, 작가의 센스가 가득 담겨,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청춘의 시대는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느낌이라 생각한다. 흔들리고, 방황하지만, 순수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 흔적들을 잘 짚어내었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첫 사랑의 미묘한 밀고 당김, 미숙함, 그래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가슴 속 한 구석에 남아있는 마음들이, 작가의 단편을 만나, 떠나는 동안 다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려주게 한다는 건,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만이 할 수 있는 매력이다. 그런 책을 만나, 좋았다.
짧은 글 뒤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인 상황, 살면서 잊고 살아가는 작은 추억과 순수한 마음들, 그 추억을 잊지 않아야 어른의 시기도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풋 사랑, 서툰 표현을 하였기에, 그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다음 사랑에서 상대를 더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거라 믿는다. 어른 이라면 머리속 계산을 통해 하지 않을 일들도, 청년이기에, 아프지만,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건 관계를 맺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머리로 재지않고, 가슴만으로 벅차게 살 수 있던 청년시절이여! 바이바이 베스파! 오토바이와의 이별과 함께 그 시기는 떠나 보냈지만, 함께 했던 추억은 가슴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