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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이 행복해지는 희망 편지 - 개정판
김선규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 생명이란 주제로 찍은 사진들의 모음.
각 사진에 덧붙여진 사연들. 소통과 나눔의 흔적들.
들판에 보이는 할머니꽃, 나무에 감긴 철가시, 아이의 눈에 비친 파란 하늘 아래 해바라기 등 김선규 사진기자의 생명의 숨결에 닿은 한 장의 사진마다 각기 개성넘치는 사연들이 담겨 있다. 책띠에 적힌 휴머니스트 100인이 전하는 내일을 위한 선물이라는 말에 각각 개성 넘치는 100인의 저자들이 각자 사진을 찍고 거기에 사연을 덧불이는 줄 알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전하는 100명의 각자 사연들에 생명이라는 일관성이 있음에 놀랐다. 저자의 글을 천천히 읽고 난 후, 사진기자가 생명이라는 테마로 올린 사진에 다양한 사람들이 사연을 적고, 그 사연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인장에 적힌 낙서처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진도 있고, 우리 할머니 꽃처럼 쉽게 존재하지만 놓치지 쉬운 풍경도 보인다. 농부를 대신해서 부지런히 일하는 오리농부들의 사진에서 동물과 사람의 공존의 방안에 대해, 새벽 풍경에 맺힌 이슬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낸 사진에서 새벽녁의 아름다운 시간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가가 마음을 담아 찍은 사진과 그 사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동 저자의 글을 읽으며, 소통의 나눔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 잊고 있었던 풍경들.
탐스럽게 익은 토마토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사진기를 응시하는 청개구리의 모습, 풀밭위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제비꽃, 고향이 그리워 망연히 하늘만 보고 있는 동물원의 곰들, 아름다운 섬진강가의 뽀얀 물결 위에 떠있는 오리들의 모습 등 도시 속에서 잊고 있던 풍경들이 떠올랐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묵묵히 생을 이어가는 많은 동물과 식물들. 자연과 지구는 인간만이 아닌, 많은 생물들이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스쳐갔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보려하기 않았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 좁은 틀 안에서 보고 싶고, 보여지는 모습만 보았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마음이 환해지는 사진들.
주름살이 가득한 노부부의 미소, 역내로 들어오는 기차를 향해 손을 드는 철도원의 모습, 높고도 높은 고지를 지게를 끌며 묵묵히 겉어 올라가는 연탄장수 아저씨의 모습, 아이의 눈망울에 비치는 파란 하늘과 해바라기, 원숭이에게 과자를 건네주는 손과 손, 어스름한 등대에게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완수하는 등대지기와 등대의 모습 을 보며 마음이 환해짐을 느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미소라는 공동저자의 표현처럼, 세상의 많은 역정들을 함께 겪으면서 지냈던 노부부의 미소는 진솔하고 편안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지만 간이역에서 기차가 다가올 때 손을 흔다는 철도원의 모습에서 공동저자는 잊고 살았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멈춰섬이 필요한 내게는 중간 중간 간이역을 통해 쉬어가야 함을, 달리다 보면 철도원처럼 손짓해 주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함께 맞잡을 수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손과 손의 만남, 자신을 태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연탄과,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의 품을 팔아 올리는 연탄장수의 수고 등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많은 손길들의 교류를 통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지고 유지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모습이 가장 로맨틱한 것처럼, 아이의 눈에 비친 파란 하늘과 해바라기는 마음의 안식처처럼 편안해 보였다. 고뇌가 담기지 않는 맑은 눈빛을 통해 비춰지는 풍경은 하나하나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가장 좋았던 건...
서로의 급소를 향해 주먹을 지르는 아이와 개의 격투기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두 발로 서 있는 개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사연을 전해주는 저자의 개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희노애락, 사진을 통해 감정을 발산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런 감정을 끌어 낸 사진작가와 저자들의 사연이 좋았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많은 생각의 고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과 크고 심오하지 않은 잔잔한 체험과 진솔한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기에 또 다른 풍경도 볼 수 있고, 사진도 볼 수 있고, 다른 세상도 느낄 수 있다. 작은 몸짓, 아름다운 풍경, 갓태어난 아이의 모습 등 인간과 생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는 사진들을 통해 지금, 살아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산다는 건 하루하루 버텨나갈 수도 있지만, 하루 하루 항아리에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아리에 담긴 생각이 다채로울수록 더욱 더 인생과 타인과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폭이 넓어질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