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 몸은 딸의 모습인데, 정신은 아내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딸? 아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자동차 부품 조립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헤이스케는 아내의 정성들인 음식과 딸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행복해 하는 40대 가장이다. 장모님의 병환이 위독해, 장례 준비를 미리 하러 나가노 현으로 떠난 아내 나오코와 스키에 재미에 붙인 딸 모나미가 나가노현으로 가는 스키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간 다음날 아침, 혼자서 맞이하는 아침식사는 너무나 쓸쓸하다. TV를 켜보니, 속보라며 뜨는 뉴스! 버스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스키버스가 절벽 아내로 떨어졌다는 뉴스였다. 우리 가족은 아니겠지 하던 그는, 아내와 딸이 사고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앞이 막막해진다.
목숨을 걸고 딸을 구한 아내는 온몸이 피투성이 상태이고, 딸은 의식불명 상태이다. 숨을 거두기 전 딸을 부탁한다는 나오코의 말에 모나미의 손을 잡게 해 주며, 잘 지켜줄 것을 약속한다. 손을 맞잡은 순간, 나오코는 생을 마치고, 의식불명이던 모나미는 깨어나게 된다. 며칠 후 깨어난 모나미는 나오코와의 추억을 상기시키며, 나오코라고 주장하게 된다. 딸의 몸을 지닌 아내의 이성.. 헤이스케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망연해 진다.
# 딸로 다시 인생을 시작해가는 아내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헤이스케
정신은 아내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의 삶을 이어 살기로 나오코는 결심한다. 남편의 직업과 삶에 매여 살 수 없는 인생이 아닌, 스스로 결정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싶다며, 사립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남편의 승인을 부탁한다. 오후에는 아내의 역할과 오전에는 딸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기로 결심하고 계획한대로 목표에 집중하는 나오코는 사립중학교에 합격하게 된다. 딸 나오미의 담임선생님에게 여성의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헤이스케는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정신이 존재하지만 몸의 부재시 느껴지는 고충과, 갑작스런 딸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생겨나는 고충등이 첫번째 딸아이 친구의 만남과 말투와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모습 등에서 어색하지 않게 잘 표현되어 있다.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정말 그럴듯한 모습에 가독성도 높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독특한 상황 설정과 함께, 현대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담다.
아내가 딸의 몸으로 존재한다면? 이라는 독특한 질문과 함께, 트럭운전사의 과로 노동과 사건이 벌어진 후 유가족의 협상이 진행되는 모습이 함께 전개된다. 고된 무리를 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트럭운전사의 사연이 수수께끼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트럭운전사 부인와 맺어지는 인연과 함께, 피해자의 입장과 함께 가해자 가족의 삶도 함께 엿볼 수 있게 한다. 피해자 가족에서 사죄하고 싶지만 서로 힘들어지는 상황을 대면하게 되는 범죄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의 만남의 모습이라던지, 피해자 부인의 집에서 피해자가 겪는 죽음으로 사죄하라는 장난전화와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은 한 쪽의 시선에만 보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회사가 과로운전 관리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겨지는 엄청난 사고와 피해자 보상을 둘러싼 팽팽한 신경전, 동료가 외치는 하루정도 쉬어도 되는데 이렇게 아둥바둥 무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대화등에서 단순한 사건이 아닌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트럭운전사가 지난 2년간 헤어진 전 부인에게 매달 10-20만엔을 보냈음을 밝혀지진다. 하지만, 왜 보냈는지, 돈을 받은 전 부인은 왜 장례식에 오지 않았는지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오코의 냉랭한 시선과 "마음놓고 원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며, 일을 잊고 말지만, 첫 뒷부분에 운전사 부인의 장례식에 다녀오고, 운전사 부인의 딸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녀가 건네준 고장난 회중시계를 받음으로써, 조금 더 깊은 사연은 다음 권에서 풀릴 거라는 것을 암시한다.
보여지는 모든 장면을 활용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내용이 이제껏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과 전혀 다른 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매력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반전과 어색하지 않음은 작가의 구성력이 매우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미묘한 차이를 되새기게 하는 대화에서 조금 더 멀리 일상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아내로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식한 나오코와 헤이스케가 어떠한 삶을 살지, 궁금해진다. 트럭운전사가 과로를 해 가면서까지 돈을 보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도 알고 싶다. 타인에게 알릴 수 없는 딸 몸에 존재하는 아내의 존재라는 비밀과 함께 트럭운전사가 가족에게 숨겨야 했던 비밀. 2권에서는 두 개의 비밀이 모두 풀릴거라 믿는다. 멈출 수 없는 글의 재미, 다음 권을 펼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