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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안도현 엮음, 김기찬 사진 / 이가서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듯, 시 속의 풍경이 떠오르다.
소설, 희곡, 수필 등 다양한 문학형식 중에서 가장 짧으면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장르가 내게는 시이다. 시를 소리내어 읽으며, 귓가에 들려오는 시 속의 풍경들을 바라본다. 안도현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그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애착>이라는 시 모음집이었다.61편의 알토란 같은 시와 안도현 시인이 덧댄 짧은 글은 시를 더욱 좋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 만났던 나희덕님의 <찬비 내리고>, 김경미 시인의 <비망록>은 시인의 추억과 함께,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봄날 환하게 핀 꽃봉오리처럼 피어있다.
좋은 시를 노트에 옮겨 적은 시와 아끼는 시 48편이 이번 시집에 실려있다. 겹치지 않는 48명의 시인의 시와 안도현 시인의 짧은 코멘트, 거기에 안도현 시인의 코멘트에 어울리는 김기찬 사진작가의 사진이 함께 실려있다. 전부 흑백사진인 사진의 등장인물 중 많은 이들은 어린아이이다. 어렸을 때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고 있는 것들과 지나고 나서 더욱 빛을 발하는 여운을 남기는 사진들이 역자의 글과 잘 어울려 자리를 잡고 있다.
# 다양한 시를 만나 기분이 들뜨다. 시의 매력에 풍덩 빠지다.
각양 각색, 개성이 넘치는 다양한 시들이 내뿜는 향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손택수 시인의 <묵죽>처럼, 시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풍경이 눈에 보일듯이 그려지는 시가 있는가 하면, 박성우 시인의 <찜통>을 통해서는 인생의 애잔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김준태 시인의 <감꽃>에서 감꽃-죽은 병사의 머리 - 돈에 이어,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에서는 앞으로 어떤 대상을 통해 인생을 되돌아 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네이트 온에서 지인의 대화명에 "얘들아, 이게 시냐, 막걸리냐?"라는 대화명을 보고, 어느 시인의 시일까 궁금해 했었는데, 최승자 시인의 <이런 시>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어 좋았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소리내어 울리는 후렴구가 인상적이었던 <고래의 항진>,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를 통해, 매력에 뿍 빠진 함민복 시인의 <뻘에 말뚝 박는 법>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 소리내어 읽으면 더욱 좋은 시들..
한 번은 눈으로 읽고, 다음 번에는 소리내어 읽었다. 눈으로 읽었을 때의 느낌과 다른 기분 좋은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귓가에 울리는 시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거북이처럼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역자의 코멘트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또다른 시를 보는 관점을 제시해 주어 좋았다. 친구가 한 편의 시를 놓고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다른 이가 보는 관점을 통해 내가 보는 시선과는 다른 깊이의 폭도 넓힐 수 있었다.
이 시집을 읽는 것을 계기로, 마음에 드는 시를 작은 노트에 하나씩 필사하고 있다. 시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특별한 날, 선물 할 나만의 시집을 완성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마음에 와 닿고, 세 번 이상 마음에 울림을 준 시를 고르려니, 진척은 잘 되지 않는다. 시를 찾아읽다 보니, 다른 이가 올리는 시 또한 살펴 읽게 되고, 좀 더 많은 시를 접하게 되었다. 시집을 통해, 시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시집의 매력을 안 만큼, 다른 이에게도 시를 들려주고, 알려 주어야 겠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할 계획이다.
시인이 있기에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시를 읽는 독자가 사라진다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그림판은 이제 사라지게 되고, 시인 또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될 것이다. 시를 읽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시인이 언어로 인간의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멈추지 않을 거라 믿는다. 시인이 좀 더 풍경을 그릴 수 있도록, 활짝 핀 꽃들이 지기 전에, 지인에게 시집을 선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