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 갑자기 뒤바뀐 인생.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2001년 9월 12일, 하루 전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오지마 겐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바다로 떠났다. 미나미와 만나면서, 미나미가 서핑을 못 해 자주 오지 못했던 보드를 꺼내들었다. 게임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꿈이 있지만, 보수적인 사고를 지닌 아버지는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로 부모님 앞에 떳떳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되지 않는다. 파도의 흐름에 맞춰 몸을 날렸는데, 뭔가 단단한 것에 부딪힌 느낌.. 정신을 차려보니, 미군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의 나쓰미 마을로 오게 되었다.

  1944년 9월 12일, 가즈미가우라 해군항공대 소속인 이시바 고이치는 처음으로 단독 비행훈련을 받게 된다. 조국 일본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목숨따위는 버릴 수 있다고 믿는 고이치에게 일본은 생명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다. 교관의 말을 되뇌이며, 93식 육상공간 연습기로 조종을 하다, 바다로 추락하게 된다. 눈을 떠 보니, 병원 안이다. 보기 민망한 차림을 한 간호사 보인다. 창 밖에 열리는 영국축제가 대영제국이 이미 점령한 곳이라 생각한다. 2001년 겐타가 살던 곳으로 도착한 고이치, 하루 빨리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 세대의 차이를 대리체험으로 공감하다.

  50년 혹은 백년을 주기로 자신의 형체를 한 모습이  늘 세상에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키, 몸무게, 피부색, 외형까지 모두 일치하던 57년의 시간의 차를 둔 두 사람이 바다의 파도와 비행기의 추락이라는 동시간에 벌여진 사건으로 인해, 시간이 잠들어 모습이 바뀌었다는 전제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57년간 비참했던 전쟁터에서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지만, 고이치에게는 다른 삶의 양식이 새롭고
놀라울 뿐이다. 사고 후 기억상실로 슬퍼하는 겐타의 어머니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지켜 보기 힘들어, 고이치는 겐타인 척 하며, 하루빨리 항공대로 돌아가고 싶다. 미래의 사람들은 예의도 없고, 배려하는 마음도 없다. 무엇보다 일년 후, 일본이 망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느린 1944년의 시대, 겐타는 그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다. 낮게 비행하고, 방공호로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처음에는 몰래카메라를 찍는 줄 알고 나름 즐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패전을 알면서도 빨리 죽기위해 조종연습을 하는 항공대로 가야하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해주었던 음식을 먹으며 편히 방에서 쉬고 싶다.  가학적인 자신이 고이치가 아니라고 부정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무차별한 정신주입봉과 정신병원으로 끌려가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지 모르는 공포일뿐이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해..


# 전쟁이라는 것..


   가혹한 체벌과 기합, 상식밖의 생활을 견뎌내며 겐타는, 그 속에든 병사들 역시, 가련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 천황이 항복선언을 했지만, 전장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들에 대한 묘사들은 당시의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겐타는 지금의 의식으로 잊혀진 전쟁터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고이치는 간직한 기억으로, 이제 사라져버린 그들의 목소리를 생각한다. 마음에 담아둘만한 좋은 글들이 많았다.

 
    공습과 식량 부족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후방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신주입봉에 맞고 '턱'이 날아가고 '엎드려뼏쳐'에 눈물짓던 인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 아무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고이치 같은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쟁을 이제 사람들은 잊으려 했다. 잊고 싶다면 잊어 버리는 게 좋다. 하지만 잊을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다. 고이치가 얼차려 받으며 흘린 눈물도, 동기생과 나누었던 웃음도, 연습기에서 바라본 하늘도 모두 현실이었다.     - 고이치

  50년전, 이 땅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들도 말투와 행동은 고리삭았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 누군가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고. 뭔가 잘못한 거다. 어디에서 무엇을, 아주 조금 잘못했을 뿐이다.  틀림없이 아주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뜨린 것이다. 

  ... 정당한 전쟁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전사에는 존귀함도 천함도 없다. 책임자 새끼들 다 나와! 
    - 겐타

# 쉽게 잊어버리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
   
   어제로 803번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세계연대집회’가 열렸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이유로 많은 걸 놓쳐가면서 살고 있다. 꼭 위안부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라큰 전쟁, 내란, 폭력과 권력에 의해 잊혀져 가는 사건 등 많은 사실들이 부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식의 성숙도에 의해 밝혀질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많은 사건들. 지운다고 과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잊혀지는 것 뿐이라는 것을, 과거를 인식하는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망연히 잊고만 사는 많은 것들, 틈틈히 다시 반추하며 기억해야 함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 무겁지 않게 가미된 사랑 이야기.

  과거의 이야기만 진행되었다면, 세대간의 차이만 부각되었다면 다큐멘터리 처럼 진지함만 듬뿍 담겨 있을 뿐이다. 작가의 역량이 빼어난 점은, 무거움만 가득 차지 않게, 사랑이야기가 결부되었다는 점이다. 미나미의 할머니뿐 아니라 미나미의 가족들, 만나보지 못한 할아버지와 인연을 맺게 되는  겐타와 사랑을 체험하기 힘든 시대에서 사랑을 경험하면서 나라에 대한 사랑과 현실적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고이치의 행동들이 일상생활에서 사랑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겐타라 생각하고 사랑해 주는 미나미와 그런 미나미를 사랑하게 되는 고이치, 존재의 본질에 대한 화두도 스며있지만, 전반적으로 회상과 연애가 한쪽만 튀지 않게 잘 짜여 있다.

  군데군데 잘 던져놓은 복선의 끈은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구성을 탄탄하게 만들어 주었다.

  재미와 교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책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고민해 볼 수 도 있고,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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