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즈 비 Boys be
가쓰라 노조미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 큰 소동없는 잔잔한 전개.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다.


  거침없는 상상력이 펼쳐지는 소설. 일본 소설을 생각하면 상상력의 폭이 넓음에 감탄했었다. 일상의 폭을 쉽게 뛰어넘겨 버리는 작가의 상상력의 공간이 가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소박한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 이후, 잔잔한 소설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오랬만에 만난, 소소한 감동이 잔뜩 담긴 책, 느낌이 좋았다.

  대도시와는 전차로 세 시간 떨어진 외딴 시골 터미널 뒤편의 6층짜리 건물이 있다. 4층에는 자신이 만드는 구두밖에 아무것도 모르는 괴팍한 수제화 명인인 에이조씨가 일하고 있다. 일흔 살의 나이에 타인과의 관계에 서툰 괴팍한 에이조씨는 동생 나오야의 그림교실 끝나기를 기다리며, 작업대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하야토를 만나게 된다. 요의를 느끼고, 화장실을 갔다 오는 사이 반협박으로 자리를 부탁하게 되고, 그것을 인연으로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여름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동생 나오야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물어본다. 아버지와 상의하고 싶지만,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는 바쁜 아빠를 걱정하지 않게 하려면 나오야를 잘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엄마와 일란성 쌍둥이 동생인 미카 이모가 조금씩 엄마 역할을 하려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혼자서 많은 걸 속으로 감내하는 에이조씨를 만나면서 조금씩 힘을 얻게 된다.
 

# 매우 서툴다. 조금씩 몸으로  부딪쳐 가며 짙어지는 우정.


  고민거리가 있지만, 매우 바쁜 아버지와 조금씩 엄마 자리에 들어오려하는 미카 이모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하야토는 동생 나오야의 그림, 반 이성친구의 고백 등을 에이조씨에게 상의하지만, 관계에 서툰 에이조씨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툴고 작은 고민들과 부딪쳐 가면서 닿는 진심이 결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조금씩 부대끼면서 우정도 짙어지게 된다. 

  하야토는 엄마를 찾는 나오야에게 엄마가 보낸 것처럼 편지를 보내준기도 하고, 엄마가 해 주었던 맛있었던 푸딩 요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쓴다. 하야토를 도우며 에이조씨도 평소에 절색했던 건물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고,  관계를 맺으며 정을 쌓아가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하야토가 생각했던 어머니의 특별한 푸딩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을거라 생각했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재료로 쉽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너무나 쉬운 방법에 샐쭉하던 하야토의 모습에 안쓰러웠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렸을 때 대단해 보였던 것들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걸 배워가는 과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요리가 아니지만 하야토를 생각했던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있기에 어머니의 푸딩은 맛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사랑이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다.

  서툰 답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 가는 것은 아닐까?


  사랑이 뭘까? 이전에는 그 사람의 마음에 꼭꼭 드는 이야기를 하고, 완벽한 모습이나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내와의 성격차이로 이혼을 결심했지만 딸아이와 마음이 통하고 싶은 조각가 도쿠나가씨의 질문에 에이조씨의 답은 꼭 그렇지 않다고 내게 속삭였다.

 

  "딸이 사랑스럽지?" 
  "예"
  "그럼 그걸로 됐어."
  .....

  "다들 머리 싸매고 고민해. 얼마나 거리를 둘 것인가 하고. 그게 피가 이어진 부모 자식 간에도 어려운가봐. 난 잘 모르겠지만 다들 그런 모양이야.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저 서툴게 살아갈 뿐이야. 대답 같은 건 없어. 이곳에 오는 아이는 그저 어쩌다 우연히 맞아 떨어진 거지. 팽팽히 당겨진 실 같은 아이야. 지나치게 필사적으로 산다는 게 뻔히 보여서 나는 그냥 좀 느슨하게 풀어줘야 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아마 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내 뜻대로 되지도 않을꺼야.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또한 어머니와의 이별을 수긍할 수 없는 나오야에게 하야토가 해 준 여러가지 시도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어주고, 나오야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주고, 어머니의 이별을 다룬 동화책을 읽어 주고 푸딩을 만들어주려는 노력까지, 진심을 다한 그 마음이 닿았기에 나오야도 하야토의 마음을 알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하야토의 아버지처럼 어른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법에 익숙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야토가 울면서 나오야에게 필요한 건 미카 이모가 아니라, 아버지 역할을 하려 애쓰는 모습이 아닌, 아이와 이야기 해주고 아이의 작은 부분을 알아주는 것이였다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기대했던 부분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망하는 작은 부분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마음을 들켜버린 느낌, 부끄러우면서 속이 후련했다.

  진심을 다하는 건 미리 내 머리속으로 예단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을까봐 미리 마음을 닫아버리는 어떤일이 일어나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고집스런 등을 가진 이의 모습이 주변에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말 한마디로 시작되는 인연, 작고 쉽게 지나칠 수 있기에 더욱 소중하게 간직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관계는 따스한 말이 아닌, 끝까지 이어가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배웠다. 읽는 내내 따뜻한 무언가가 가슴에 뭉클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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