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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평점 :
# 3인 3색, 캐릭터 강한 그들, 한 몫잡아 이 곳을 떠나고 싶다.
야쿠자가 들어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먼저 생각나는 건, 피, 그리고 공포와 폭력이다. 무서워하는 대상을 상상하게 만든 후, 생각할 여유없이 몰아치는 협박과 어딘가 부서지는 폭력이 떠오른다. 야쿠자와 폭력, 절도, 사회가 허락하지 않는 어두운 세계에서, 부정한 돈을 가로채려는 세 남녀가 있다.
자신의 이름과 같은 재벌가의 자식이라는 오해를 받는 미타그룹에 입사한 미타 소이치로, 무언가를 외우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 업무에 관한 일은 둔해 회사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한다. 그리니치 천문대와 가까운 키리바시 공화국으로 이민하는 것이 목표인 엉뚱한 꿈을 가지고 있다.
짝짓기 파티업체 '비밥'을 운영하고 '협박'과 '공갈'로 2차를 가려는 남성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는 요코야마 겐지, 미타 소이치로를 미타그룹의 후계자로 오해하고, 임신이라는 '설계'를 통해 거액의 돈을 뜯어내려 야쿠자 '후쿠야'와 공모한다. 소이치로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는 성공하지만, 후계자로 잘못 착각한 사건은 겐지가 애지중지하는 포르셰를 빼앗기게 되고, 골동품 거리의 아파트 한채를 빌려야 한다는 숙제를 떠맡게 된다. 우울한 겐지는 미타를 협박해서 미타의 명의로 집을 빌리게 되고, 두 사람은 거액의 도박장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한 몫 단단히 챙긴 후 도망칠 생각을 한다. 큰 도박이 있는 다음날 숨겨둔 비밀금고의 돈을 빼내려 하지만, 다른 음모를 가지고 있는 '크로체'라는 가명을 쓰는 구로가와 치에에게 절도를 들키고 최루가스를 맡고 절도에 실패한다. 여러가지 사건과 함께 세 사람은 힘을 합해 크로체가 자신의 아버지가 사기로 모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려는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크로체 아버지의 사기에 휘말린 중국인이 가져온 1억엔을 포함한 10억엔을 횡령해 나누려는 세 사람, 10억엔을 모두 가로채려는 야쿠자 후쿠야, 돈을 챙겨 도망가려는 치에의 아버지까지, 각자의 욕망이 뒤얽힌 가운데, 여러가지 사건들이 벌어진다.
#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 역시, 오쿠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야기의 흡입력에 빠져 시간을 잊게 만다는 작품을 좋아한다. 각자의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작품은 재밌다. 오쿠다의 소설은 캐릭터가 살아있는 게 매력이다. 자기만의 뚜렸한 개성을 가진, 엉뚱하면서 재밌는 그들의 인생관은 동의할 수 없지만, 소설 속에서는 사회적 틀에 맞춰 사는 내게 일탈을 경험하는 듯한 스릴을 느끼게 한다.
부정한 돈을 중간에 가로채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과 숨막히는 머리 싸움,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 등은 읽으면서 예상하는 전개와 다른 진행으로 더욱 더 호기심에 빠지게 한다. 크로체를 좋아하는 겐지가 행동하는 순진한 모습과 목표를 위해 소이치로를 유혹하는 크로체, 겐지가 크로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소이치로의 모습과 엉뚱한 나라에게 일생을 편하게 살려는 소이치로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25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대기업 사원에게도, 어두운 곳에서 눈에띄지 않게 돈을 벌어야 하는 어두운 인생에게도 우울한 삶을 큰 돈을 잡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된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답답한 인생의 틀을 벗어나려 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뿌연 안개속에서 걸어가야 할 길을 찾기 못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건 나만의 착각이였을까?
일탈을 꿈꾸고,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즐겁고 유쾌하게 깨닫는다. 약간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의 엉뚱한 행동에 웃고, 똑똑한 척하는 캐릭터가 빠지는 함정에 다시 웃는다. 우울했던 기분도, 책을 읽고나면 기분이 나아진다. 뭔가 담겨있어 무겁던 마음에 쌓인 먼지들이 다 사라져 버린다고 할까. 가벼운 바람에 생각의 틈을 놓아버리면, 고민도 근심도 모두 한결 사라져 있게 된다.
# 미래가 밝지 않아도...
현실은 아름답지 않다. 여러가지 욕망이 꿈틀되어 있는 사회, 기대가 어긋나고 꿈꾸기를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일탈을 꿈꾼다. 야쿠자의 위협을 받아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있어도, 그 현실에 무기력하게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부딪쳐가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상황이지만, 현실의 매너리즘과 난 안돼... 하는 포기의 마음은 전혀 없다. 엉뚱하지만 부딪치고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잠깐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뭔가 의미를 남겨주는 교양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가볍게 가볍게, 책이 넘어가는 책장소리를 좋아하는 이의 책상에 살짝 놓아주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더위에 지쳤을 때, 더위를 잊게 했고, 지겨운 장마가 찾아와 우울할 때 기분을 덜어주었다.
책에 관대한 다른 계절에는 더욱 즐거운 책읽기, 재밌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즐거운 기억을 안겨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