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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찬
장석주 지음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 여유로운 마음의 눈에 비친 자연의 모습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자연에서 홀로 밥과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가 있습니다. 고독을 즐기는 그는 책을 만들기도 하고, 책을 쓰기도 하고, 책과 함께 많은 생을 지내왔습니다. 노자와 장자와 공자 읽기를 좋아하는 그는 각 수필 시작 전 머리에 도덕경과 논어의 글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오래 읽었기 때문일까요? 자연을 벗삼는 그의 글에는 세속적 욕망의 흔적보다는 편안한 자연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단정하게 잘 다듬어진 맑은 마음으로 보는 풍경은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시골이 아닌, 자연의 정취와 풀벌레 숲을 지키는 다른 여러 존재들과 공존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 그리고 생각들이 잘 어우러나는 그의 글을 읽는 건 마치 낯선 이국적인 풍경을 보는 듯 낯설며 경이롭습니다.
편안한 글투가 마음까지 잔잔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격정과 갈등, 대립과 반목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잘 배어진 옛 수묵화를 보는 듯한 기분에 빠졌습니다.
# 4계절, 안성의 풍경이 내게 다가오다.
그가 거처하는 곳은 안성이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삽살개가 있습니다. 직접 경험하고 체험한 그의 일상이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이어지는 4계절의 안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안성은 제게 유기와 안성맞춤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책의 이야기들은 안성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이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또 하나의 사실을 마음속에 건네줍니다.
안성에 산다고 모두가 안성의 경치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그 지역의 유명한 풍경이나, 멋진 곳을 눈치채기 어려워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멋져보이고 자주 보는 풍경은 익숙하기에 별반 느낌이 없으니까요.
# 작가의 글의 매력에 빠지다.
'앵두가 탱글탱글 여물다'에 나온 그가 지인에게 베푼 정성과 앵두에 들인 마음은 우정과 자연에 대한 예찬이 함께 스며있다고 할까요. 고사에 나오는 풍경과 함께 그가 보여주는 풍경들을 꼭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에 안성으로 발걸음하고 싶어집니다. '여름날이 긴 것을 사랑한다'에서는 이제하님의 '청솔 그늘에 앉아'라는 시를 알게되고, 그리운 벗에게 편지 쓰고 싶은 마음에 필사까지 하고 맙니다.
저자의 책에 대한 마음, 자연에 대한 예찬, 일상에 대한 경험, 그리고 삶의 사색에서 나온 깨달음들이 물씬 배어있는 내용은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읽을수록 더 깊은 맛이 배어나는 장맛의 느낌을 갖게 합니다.
# 친구, 책, 새벽, 안개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아름다운 글귀를 만나다.
좋은 벗은 평생을 두고 이어지는 연이라 생각합니다. 새벽녁 안개 자욱한 곳에서 마음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벗(지인, 친구)과 함께 듣기를 꿈꿉니다. 말없는 말이 들려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귀에 닿아 그저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는 그 느낌,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네 가지를 좋아하는 제게 저자가 들려주는 편안한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좋은 풍경을 만드는 대상들을 조금 더 다르게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덕무가 들려주는 친구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책으로 생계와 삶의 보람을 모두 누린 저자의 행복을 부러워하기도 하며, 조선이란 이름이 날이 새며 아침의 빛이 가장 먼저 닿는 땅이라는 말, 우리나라가 새벽과 인연이 깊다 는 걸 배우기로 하고, 새벽에 잘 자리잡은 안개를 묘사하는 모습을 보며 새벽녁의 안개를 꿈꾸어 보기도 합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지친 마음과 여유없음에 놓쳐가는 내 마음을 자연으로 눈길을 돌리게 해 주었습니다. 고맙고 마음 편한 책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