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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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하지만 그 흡입력에 더위를 잊다.
 

   재미 없으면서 길기만 한 글은 짜증이 난다. 길게 이야기를 풀수록, 늘어지지 않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50페이지의 분량, 짧지 않다. 지인이 읽고 싶다고 추천하지 않았다면, 쉽게 꺼내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50페이지까지는 읽는 도중에는 더운 여름의 기운을 느꼈다. 더위를 잊을만큼 책이 재미없었던 건 아니지만, 무더운 여름을 잊을 만큼 푹 빠져드는 무언가도 없었다. 그 이후부터 450페이지까지,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가 촘촘히 맞물리며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변사처럼 들리는 웃기고 울리면서 중요한 이야기 순간에 이야기를 재미를 끌기 위해 능청스레 변죽을 울리는 그의 글솜씨가 좋았다. 
  더위를 잊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에어콘을 구매해서 시원한 바람에 몸을 차갑게 할 수 있다.
대야에 시원한 물을 받아두고 발을 차갑게 해서 더위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건 뇌를 속이는 일이다.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더위를 잊고, 읽고 난 뒤 생각의 여운까지 담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재미있는 책에 빠지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재미를 느끼는 즐거운 기쁨을 얻었다.

# 독특한 스타일, 복수에 관한 3부작 연대 소설을 읽다.

 
  1부 부두, 2부 평대, 3부 공장 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방대한 분량에 비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노파, 금복, 춘희로 이어지는 각 부의 주인공들과 관계맺어지는 애꾸, 장수, 소금장수, 문, 쌍둥이 자매, 칼자국, 걱정, 트럭장수, 코끼리, 간수 등 인물간에 얽히고 얽히는 이야기의 늪에 말을 담그다가보면 결국 그 늪에 빠져 헤어나올 생각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파의 박복한 인생과, 금복의 우여곡절한 사연들, 춘희는 우직하고 단순한 삶을 보다보면 한 편의 '거짓'이 넘치는 재밌는 이야기속에 빠져있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에 작가가 농치며 넘기는 말이 재미있다.

  밥집으로 시작했다가 다방으로 넓히고 운수으로 큰 돈을 번 그녀가, 노파가 남긴 땅문서의 공간에 벽돌공장을 짓고 그 터에 담긴 늪을 메우기 위해 말도 안되는 많은 돈을 이유없이 쏟아붓는 모습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은 작가는 어느 책에 보았다는 구절로 넘겨 버린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금복은 늪지대에 벽돌공장을 지음으로써 무모하고 어리석은 여자가 되었다.

  논리적 이해가 아닌, 발생된 사건 뒤에 그것을 분석하는 합리화의 모습이라 할까, 레포트도 아닌 그럴듯한 개연성이 중요한 소설, 웃으며 넘기다 보면, 그가 말하는 '구라'들이 빚어내는 뇌를 스쳐가는 밋밋한 재미에 빠져들게 된다.

  거리의 법칙, 세상의 법칙, 자본의 법칙, 사랑의 법칙 등 저자의 수많은 법칙들이 나온다. 코끼리와 말을 할 수 있는 벙어리 춘희의 비현실적 소통까지 눈감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책은 재미있는 책으로 느껴질거라 생각한다.

 


# 정규교육을 받지 않는 늦깎이 작가의 작품, 다음 책이 기대가 된다.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기라성도 아니고, 세상의 많은 경험을 쌓아 올린 마흔살에 그는 등단하였다.공자님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되엇다는 불혹의 나이에, 글쓰기에 관한 아무런 교육없이 그는 '고래'라는 작품을 문학의 바다에서 노닐게 했다.  

  이야기의 힘이라고 할까,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책은 소리내어 읽었을 때 귀에 들리는 느낌이 어색하지 않았다. 좋은 책은 소리내어 읽었을 때 편하게 들리는 책이라는 어디선가 본 책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바로바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담겨있다. 평론가들은 캐릭터와 짜임새, 독특한 전개방식 등 여러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문학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난 재밌었다 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소설은 재미로 독자를 끌어당기면 그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교훈이나 느낌, 나머지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할까. 심오한 주제와 인생의 철학은 성경이나 불경등 종교에 맡기면 되고, 가볍고 짧은 위트는 개그맨에게 맡기면 된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시간이 다 읽은 후 아깝지 않으면 그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내게 작가의 짜임새 있는 글과 인물들이 살아 있어 좋았다.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낸 작가는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의 힘이 아닌 영상의 힘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춘희와 금복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까 상상하며 작가의 영화를 기다려야 겠다. 그 이전에 작가의 다음 책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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