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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양이현정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4월
평점 :
#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그렇게 느껴진다!
어감도 센 '미친년'-(여자로 태어나 미친년으로 진화한다) 이란 책에서 그녀를 알게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페미니즘은 '시스템이 아니라 관점이라는 말' 그리고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지만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급진적이 된다'는 통찰력에 매료됐었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남성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미친년'이란 책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그녀의 글을 꼭 읽어보기로 다짐했다.
기말고사 대신에 레포트 대체의 자료 수집을 위해 도서관에 들렸다. 필요한 책을 빌린 후 다른 쪽 서가를 서성거리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제목을 보게 되었다. '미친년'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를 보니 이름이 낯익었다. 예전에 추억에 이끌려 주저없이 책을 빌렸다. 성격이 못되어서 빨리 좋은 사람 되라고 좋은 책들이 찾아오나 보다. 좋은 책을 만날 땐,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처럼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진다. 내 맘에 쏙 드는 책을 만났다.
# 세상이 확 뒤집어 진다면...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4부의 시작인 1부의 시작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다. 이제까지 여성이 월경을 하기 때문에 겪는 많은 고통들을 '만약 남성이 월경을 한다면'으로 변화시킨다면, 남성우월의 사회에서 '월경'은 꺼려야 할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자기 존재의 확인 수단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권력의 차이를 정당화 시키는데 사용될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냉소와 함께 반성하게 만든다. 풍자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할까? 일단 그녀의 글은 쉽게 읽혀지면서 메세지가 바로 전해져서 참 좋다. 어려운 수사없이도 가장 쉬운 말로 가장 의도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 최고의 문장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엉뚱하지만 밝은 상상인 '여성망명정부에 대한 공상', 트렌스젠더 현상에 대한 서양의 남성우월적 시선을 꼬집은 '트렌스젠더 :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라'는 신화속에서 관에 맞춰 신체를 조정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습을 바꾸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사회에 대한 편협한 시각들이 보여 씁쓸했다.
2부에서 나오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아주는 잘 정돈된 논리의 칼날이 좋았다. 서양 문화에 밝지 못해 낯설었던 3부의 다섯 명의 여성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4부에서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서는 자신의 내적 경험들이 잘 드러나 있다.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몸의 상처를 보이기 싫어 계속 상처를 가리는 옷을 입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싫어 상처받을 것 같은 상황에 앞서 도망치거나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저하게 된다. 그만큼 무언가 드러낸다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롯의 노래'에서 드러난 그녀의 어머니에 관한 아픈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가 참 용기있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자매애'를 통해 남성우월주의자와 비슷한 논리를 생각했던 편견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나는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이었다'에서 자신의 이름을 실은 기사역시, 취재를 하는 데도,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기사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그녀가 더 멋졌다.
# 세상은 조금씩 좋아져 가고 있다. 차별이 아닌 공존의 그날을 꿈꾼다.
세상의 모든 권리는 권력을 가진 뛰어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권력자가 내려준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피와 땀을 흘려 투쟁해서 얻어낸 결과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좌충우돌과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때로는 불신과 증오와 때로는 하나에 빠지기도 하지만,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66세때 백인 남자인 데이비드와 결혼을 하게 된 것 또한 그 경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는 그녀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녀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여성운동의 영향으로 세상이 좋아져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아직도 페미니즘은 나에게 어려운 주제이다. 많은 걸 알지 못할 뿐더러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내용은 차별이 아닌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어 좋았다.
비상식적인 일상을 '상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여성운동'이라면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차별을 극복하는 다양성과 공존이 의식과 가치판단을 가진 사람들의 대화로 인해 '상식'화 되기를 꿈꾼다. 자신의 태성적 차이와 교육 환경의 차이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글로 쓰는 건 참 쉬운데.. 20년 이상 머리속에 내재된 문화적 편견과 이제껏 의식화 작업은 이성적 사고를 주춤거리게 만든다. 그 편견의 차이를 극복해 내는 것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긴 숙제이다. 원저인 'Outrageous Acts and Everyday Rebellions'를 두 권의 책으로 엮었다. 첫번째 책이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다. 두번째 책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일상의 반란'이다. 저자의 두번째 책도 올해가 가진 전에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