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 나무를 찾아 동산에 오르다.

 
  산에 오르고 싶어졌다. 하지만 높은 산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 근처 동산에 오르기로 내 마음과 타협을 했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피어난 잡초가 눈에 띄었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주춤거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꿀벌이 수정하는 노란 꽃도 보고, 치자 꽃 등 이름모를 꽃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꽃이 진 뒤에는 열매가 피어오르겠지?'

  자연의 매력은 자꾸 보아도 질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나무와 돌로 다듬어진 등산로를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산에는 소나무만 가득 있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한걸음 한걸음, 정상이 목적이 아닌, 나무 하나 하나를 살펴보며 걸었다. 소나무와 향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나무들이 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을에 오면 좋다던 단풍나무는 녹색빛으로 가득했고, 이름 모를 열매가 피어있는 나무들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많은 나무들과 각 나무마다 개성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사람만큼 다양한 나무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집에 도착 돌아와 나무로 된 물건들을 찾아 보았다. 책상, 책장, 전화 받침대, 옷장, 의자까지.. 주변 곳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목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업적 목적이였겠지만, 각 하나하나에는 목수의 정성이 들여있다고 생각했다. 아는 목공일을 하는 분이 없다.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자연히 멀어지게 마련이다. 하나의 목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연이 담긴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했었고 나무와 함께 동고동락한지 10년, 나무 작품전도 여러차례 내었다는 저자의 경력이 흥미로웠다. 국문학도의 깔끔한 글솜씨와 미술사의 예술 작품에 대한 안목,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배어난 경험의 노하우까지, 작품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닌, 작품 과정을 글로써 느낄 수 있는 좋은 책 하나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기기 시작했다. 들뜬 마음으로 펼친 목수 김씨의 이야기는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

 

# 색다른 매력을 지닌 목수 김씨의 감칠맛 나는 일기에 빠져들다.

  책은 5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나무는 다 다르다'에서는 나무에 얽힌 사연과 각 나무의 특성에 대한 목수 김씨의 경험이 잘 배어 나와있다. 그 나무의 특성과 나무로 만든 공예품, 그리고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은, 멀게만 느껴진 나무들을 가까운 이웃처럼 만들어 버린다.

  '본전 생각나는 의자'에서는 정성이 가득 담긴 추억이 서린 나무로 만든 '목물' 특히 의자들의 이야기가 배어있다. 등받의 의자에서부터 노래 부르는 악기인 기타의 등부분으로 의자의 등부분과 앉는 부분을 만든 '기타 의자', 야한 책상, 매달린 뚝지 스탠드, 지게를 만들 때 생각할 것들 등, 의자에 얽힌 에피소드와 작가 자신만의 삶에 대한 경험들이 목물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잘 배어나온다. 에세이와 목공예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두 가지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나무토막과 몽상'에서는 나무로 만든 인형들과 작가의 재미난 상상력을 느낄 수 있고, '서툰 목수의 연장 탓'에서는 목공을 할 때 사용되는 공구에 관한 여러가지 사연을 접하게 된다. 공구와 얽힌 이야기들에 때론 걱정하고 울고 웃다보면 자연스레, '목수 생각'으로 넘어가게 된다.

  '목수 생각'에서는 목공예 품에대한 작가의 다양한 생각들이 담겨있다. 작가의 목공예에 대한 가치관이라고 할까?, 미술사와 국어학의 공부의 실력이 깔려있어, 독특한 시각과 깔끔한 문장이 좀 더 그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 도판과 스케치, 글이 함께 어우러져 놓칠 수 없다.

  작품만 보는 전시회 도판이였다면 많이 허전했을 것이다. 작업 기록의 글만 있었다면, 글로 연상되는 상상력이  실제 작품을 왜곡할 수 있다.  작품을 처음 구상한 스케치 도안에서, 실제 만들었던 그림이 깔끔하게 올컬러로 잘 담겨있다.  그리고 단정한 문체와 어렵지 않은 어휘 사용으로 쉽게 글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입으로 글을 읽고, 눈으로 작품을 보고, 귀로 작품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력으로 만져보고 맛보는 냄새를 맡는 착각에 빠진다. 오감을 이용한 독서를 할 수 있다고 할까? 작가의 표현이 섬세해서, 마치 오감으로 작업실을 경험한 느낌이다. 

  거기에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작가의 내적 성찰과 만만치 않은 글솜씨는 작가의 깊은 인격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아무리 좋은 나무가 있더라도, 자연에 잘 어울렸을 때 그 마음을 접을 줄 알고, 나물꾼의 욕심에 나무가 헐벗고 꺾여졌을 때 욕해줄 수 있는 따뜻한 심성의 목수이기에 더 마음이 갔다. 

 

# 단정한 수필에 마음이 정겹고, 공예인의 삶을 배우고, 눈이 즐거운 목물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


  '상상력의 대한 몇가지 오해', '자연은 자연스럽지 않다'부분은  에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목물에 관한 이야기에서 목수 김씨의 작업실 뿐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과 여러가지 삶에 대한 시선을 알 수 있었다. 컬러에 잘 담긴 목물의 모습들은 전시회에 발품을 팔지 않고 전시회에 다녀온 느낌이다. '나무로 깎은 책벌레'의 단풍나무로 만든 '책의 바다에 빠져들다'는 구할 수 있다면, 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 소장 가치가 높은 책을 만나다.

  책은 읽어본 사람만이 안다. 타인의 서평은 말 그대로 그의 느낌일 뿐이다. 책 가격이 일반 소설책의 3배, 인문학 서적의 2배이지만, 작가의 10년의 세월과 많은 목물들을 두고 두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다. 한 번 보고 말 책이 아닌, 자연과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소장한다고 치면, 책 가격이 아깝지 않다.

  한 번 흥미롭게 읽어볼 사람에겐 도서관에서 구비하기를, 책의 가치를 느끼는 이에게는 소장하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무엇보다 도서관 사서분들이 꼭 구비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사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다.

# 작가의 삶에 마음의 여유를 얻다.

  아이러니하게, 오랜시간 목공예를 한 장인이 아닌, 40이라는 중반에 시작했다는 그의 삶이 더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20대에는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다. 뭔가 할 수 있는 걸 하나만 정하기에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내 자신을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들다. 자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선택의 압박에 더욱 스트레스만 받았다. 40에 시작했다는 그의 목물과 이야기와 삶을 보며, 너무 나이와 시간에 매달리는 건 바보같은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초조함은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할 뿐이다.

  지금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조금만 마음이 흐트러지면.. 무기력감과 패배의식이 나를 찾아온다. 인생이 힘들어 질때, 이 책을 보려 한다. 나무들과 작가의 글들이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느낌이 좋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책을 만났을 때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해 줄지 기대가 된다. 여러가지 삶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많은 고민거리들이 많았다. 다시 읽을 때는 그 고민거리와 씨름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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