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팥.빙.수.

 눈이 온 다음날 아침, 엄마는 마당이랑 대문 앞에 눈 좀쓸어내라고 성화지만, 뽀얀 눈밭이 아까워 차마 발자국을 내기가 망설여지던 기억이 있다.

 팥빙수 그릇을 받아들 때마다 그 비슷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얇게 갈아서 하얀 눈처럼 만든 얼음송이 위에 뽀얀 크림과미숫가루,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얹고 그 위에 검붉은 단팥과 캔디, 젤리, 혹은 달콤하게 조려진 깡통 과일 몇 조각이 흘러내리듯이 뿌려진 팥빙수.

이 유리그릇을 받자마자 뒤섞어 비벼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지막지하다. 그래서 조금은 망설여지고 몇 스푼은 이것저것 거두며 조심스레 떠먹기 마련이다. 그러다 이내 한목에 몰아 섞어버리게 되었을 때 눈송이 같던 얼음 가루는 벌써 녹아 단팥과미숫가루를 이리저리 뒤섞어버리고, 왠지 눈 온 뒤 풀린 날 오후처마 밑으로 흘러 흙탕물이 되어 질척거리는 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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