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사랑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 제목에 끌렸다. 역사 사랑(Love)? 역사 사랑(舍廊)!

  
  읽을 책을 선정할 때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아 그 저자를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읽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에는, 뒤통수를 강타하는 충격을 받아 정신이 혼미해지는 책을 만나면, 그 저자의 출간된 책을 다 읽기 전까지 마음이 안절부절해진다. 읽다 보면 꾸준함과 더 흠뻑빠지게 하는 작가도 있지만, 보통은 들쭉날쭉 하다는 걸 알게 된다. 속된 말로 '작가의 이름에 낚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제목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2-300페이지의 많은 내용을 한 번에 살펴볼 수 없는 나에게 제목은 큰 의미를 차지한다.

  서점에 가면 많은 책들이 손길을 달라고 애원한다. 모든 이에게 다 관심을 줄 순 없다.  예쁜 표지로 단장하고 손에 들기 좋은 모습이 처음에 눈에 들어오지만, 인상적 광고 한 줄처럼 제목으로 소리치는 그 모습에 끌린다.  '이덕일의 역사 사랑'은 작가의 유명세 보다는 제목에 끌린 책이었다. 처음에는 사랑방인 줄 모르고 역사에 대한 애정이 담긴 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머리말을 읽어 보면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사랑방 손님이 머무르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끊어지가 단절된 오늘날, 옛 사랑에서 나오던 이야기들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 제목을 역사사랑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옛 이야기들이 모인 역사적 기록을 사랑(Love)하기에 舍廊 이라고 지었다고 내 맘대로 착각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 6개의 갈래로 나누어진 많은 이야기들. 읽는 내내 함께해서 즐거웠던 사진자료들.


  지조와 절개의 외길을 걷다, 대륙에서 한 민족의 기상을 찾다, 시간의 날줄과 사람의 씨줄 민중과 함께하는 역사 혹은 생활의 발견, 해양을 향한 상상력 혹은 일본이라는 나라, 세계사의 들판에서 우리 역사의 좌표를 찾다. 라는 큰 6가지의 작은 상자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각 상자들 안에는 13개에서 33개 까지의 다양한 꾸러미들이 모여서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백과사전 식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지적 호기심을 찾는 이들에게는 큰 만족을 줄 수 있지만, 일관된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역사서로 기록된 사실들에서 느껴지는 살아남은 강자의 자기 합리화와 야사에 담겨진 정사에 보이지 않는 뒷이야기들 역시 모두 글을 적는 역사가의 개인적 주관에 배인 이야기이기에 사실은 많이 알 수 있지만, 진실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 사랑이라고 하지만, 역사에 대한 이야기거리가 담겨있는 이야기 보따리가 아닌, 역사 사랑을 지은 저자의 개인적 생각이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사실과 함께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때론 긍정하기도 때론 부정하기도 하면서 읽다보니 어느새 끝이 나 버렸다.

     나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기보다 작가의 역사관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작가의 생각과 내 생각의 합일점과 차이점을 찾아가면서 나만의 역사를 보는 시각을 알게 되어 소중한 만남이었다. 컬러로 된 생생한 사진이 첨부되어 글만 읽는데 따르는 피로감도 줄여주고, 사진 뒤에 숨겨진 여러가지 것들도 살필 수 있어 좋았다.


# 역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녁즈음에 작가가 만든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랑에 들어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와보니, 캄캄한 어둠 속이었다. 

  영화, 책, 시사, 역사적 분쟁, 효와 충, 무역마찰, 팔만대장경 제작 동기, 정치적 자살, 조선의 성폭행 처리, 윤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해 주는 그의 이야기는 한 번에 몰아쳐서 읽는 걸 권하고 싶지 않다. 필요할 때 찾는 사전처럼, 이야기가 궁금하거나, 잠깐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제목을 쭉 ?어보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으면 잠깐 읽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화제로 삼거나, 생각을 다듬어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시간에 한 번에 쭉 읽기에는 아까운 책이었다. 여섯 꾸러미로 구성되어진 꾸러미 내의 이야기들 사이에 연관성이 깊었으면 좀 더 책에 대한 애착이 컸을 텐데, 신문 칼럼을 모아놓은 것처럼, 그때 그때 달라지는 내용들은 한 번에 읽기에 많은 불편함을 준 것도 사실이다. 

  역사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한 때는 떨쳐버려야 할 귀찮은 승리자의 오만과 패배자들의 한탄이 섞인 읽을 가치없는 글 모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계속되는 반복의 순환의 고리에서 지금 발걸음을 옮기는 데 지침이 되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의 도구들은 변화하지만, 수천년간 변화해온 욕심과 욕망과 집착과 광기의 문화는  그 대상만 변주된 채로 계속해서 살아남아 우리를 괴롭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지식이 늘어가고 생각도 조금씩 늘어나는 지금은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다양한 의미들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떻게 대해갈지는 조금 더 역사를 알아나간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늘어나지 않는다. 조금 더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하는 이야기 창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러가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게 만들고 싶은 작가의 욕심을 엿보았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역사 사랑방에서 역사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많이 느끼고 돌아온 시간이었다. 역사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보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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