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 시간을 초월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고주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 RESET, 제목을 보고서 떠올린 생각.
 

    
  살다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가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 더 알아버진 지금의 마음을 가진 채, 예전의 후회스런 순간들로 되돌아가 그때 그 순간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지금 알고 있던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가 유명한 이유도 사람들 마음에 항상 미련이란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 구별지어서 초등학교가 끝나면 중학교를 가듯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지만, 초등학교의 실력이 중학교 실력에 기반이 되듯이, 과거는 분절적인 듯 보이지만 연속적이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일수록 RESET을 갈망하게 되는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SET은 무언가를 설정하는 것이고, RE는 다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상황인데, 자신의 미련을 만화하기 위한 RESET... 하지만 현실을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욕심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난 여전히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는, 그 순간 순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내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괜찮아, 이제부터 잘 하면 되잖아. 잊지 않으면 되는거야!'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나였다.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책의 내용은 나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 33년 주기로 찾아오는 별, 그리고 되풀이 되는 사건들..
 
 
1912년 러,일 전쟁때 떨어지는 사자자리 유성군,
1945년 전쟁의 혼란 속에서 떨어지는 사자자리 유성군.
1978년 테라스 앞에서 보이는 사자자리 유성군.
 
  변하지 않은 건, 33년을 주기로 사자자리 유성군이 떨어졌다는 사실이고,
그 동안 러,일전쟁의 격변의 시대, 패전직전까지 혼란스러운 상황, 전쟁이 지난 후 발전한 일본의 모습까지.. 매일 아침 해가 뜨고, 지고, 3개월을 주기로 계절이 바뀌어 가고, 일년을 마디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자연의 흐름은 변하지 않지만, 그 흐름속에서 사는 우리의 삶과 모습은 항상 다채롭고 새롭게 시작을 한다. 'RESET'이라는 이름에서 매일 같은 시스템에 설정된 하루 24시간, 세달, 일년의 일상을 살지만,  그 안에 새롭게 디자인된 우리는 매번 새롭게 시작을 해 나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 환생을 믿으시나요? 내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요?
   
   
  소설의 전체적 흐름의 가장 큰 핵심은 사자자리 유성군을 통한 이야기와 애틋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던 미완의 사랑을 가진 두 남녀의 환생이다. 처음부터 예전 기억을 간직하지는 못하지만, 데자뷰처럼 그 둘만의 추억의 매개를 통해서 다시 예전 기억을 떠올려 낸다는 것, 그리고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가 있다.
  환생을 한다고 해서 그 둘의 사랑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띠지에 나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태어난 환경을 선택할 수가 없다.'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내에서 다시 살아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은유적으로 지금 일본의 세대들에게 잊고 있던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는 작가의 말은 오래전 솔직하지 못한, 보기에 따라 배려가 깊은, 경우에 따라 소심했던 연애스토리와 찬란한 역사만이 우리가 받아들어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 역시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라는 사실이구나 등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게 너무 많은 미련을 남기고 죽어버리게 된다면,
난 다시 시작되는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관계는 다 정리하고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이 있었다.
   

   
# 섬세한 표현, 애틋한 사랑, 그리고 문화적 이질감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차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한 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쉽게 넘어가는 가독성이다. 첫사랑의 풋풋한 사랑처럼 피어나지 못하고 가슴속에 담겨둔 사랑이, 생을 반복하면서도 이어지는 모습과 그들의 순수한 모습들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는 예쁜 그림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 하나 섬세하게 표현한 이야기는 좀 더 그때 당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같은 장면을 보고 누구나 글로 표현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없다고 점을 알고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위해 공들인 시간들과 고민한 흔적을 느낄 수 있기에 더 정성들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애틋한 사랑을 좋아하지 않지만 쉽게 빠져들었던 것도 작가의 표현능력이 세련되면서 쉽게 감화되도록 의도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일본인이었다면, 더 열정적으로 작품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 읽는 건 쉽지 않았다. '반딧불의 묘'처럼 패전된 일본의 모습을 그렸다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책을 올바른 시선으로 읽는 건 쉽지 않았다. 위안부 사건과 과거의 행위를 부정하는 일본 지도부의 모습들이 계속해서 이슈화되고 있는 순간속에서 그냥 작품만으로 책을 읽는다는 게 쉽지 않다. 혹자는 세습된 컴플렉스라고 하지만, 혹시나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자신들 또한 피해자 였을 뿐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면서 냉정하게 책을 보기도 했었던것 같다.
그래서 일까 이 주정도는 책을 들였다 놓았다 참 힘들었다.

  여행을 떠나면서 마음을 비우고 책을 보았을 때,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관계없이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의 작품에 담겨있는 모습들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 걸려있는 안경을 벗고 맑은 눈으로 책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일본에 대한 문제제기에 분노하는 것 만큼, 한국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라이따이한'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의 '슬픈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중요한 건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그걸 반성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속 짐과 아픔은 부정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부정이 아니라 인정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할 때 해결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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