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습찾기
마리네야 테르시 지음,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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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브리엘과 함께 한 시간들..
 
     
  내 이름은 가브리엘이다. 알렉산드라라는 아이가 날 좋아하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법무사에서 서류작업을 돕는 일을 하는 엄마와 화실에서 작업을 하는 아빠와 살고 있다.
일 때문에 엄마는 항상 바쁘시고, 아버지와 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전형적인 아버지의 역활을 엄마가, 나를 돌보아주는 아빠가 늘 곁에 있었기에 난 엄마에게 서먹함을 느끼고,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렇게 혼자서 먼 곳으로 떠나버리다니..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아빠는 왜 날 버리고 떠나가 버린걸까? 아빠에게 난 무엇이었을까? 난 아빠에 대해 뭘 알고 있었었걸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난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를 다 적고 나게 되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까?.

...2주 후...

  2주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의 그녀를 만나게 되고, 첫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와 조금씩 이야기를 하면서 아빠와의 있었던 이야기들도 알게 되었다. 분노, 실망, 갑작스럽게 벌여진 많은 일들에 마음과 몸이 많이 아팠지만, 알렉산드라와 엄마가 있어서 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만나기전에 매일 썼던 아빠와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분노와 실망에 가득찬 모습이 아닌, 항상 내 곁에서 아빠만의 방식으로 날 사랑해 주었던 그가 보였다.

아빠.. 사랑해요..

 

방학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간 알렉산드라에게 진짜 편지를 쓰려고 한다.


#  성장소설과 편지형식의 글의 만남.

 

   성장소설의 매력은 세상을 순수한 눈으로 보는 주인공이 조금 더 삶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바라보는 걸 이해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죽음, 어른이 된다는 것, 사랑 등 인생을 살면서 꼭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들을 주인공과 함께 이해하고, 공감하고, 아파하고, 분노하면서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조금 성장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성장소설을 참 좋아한다.
Love is... 사랑에 대한 많은 말들과 정의가 내려졌다.
어디에선가 보았던 사랑은.. 믿을 수 없는 일을 믿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나만 사랑해주고 나와 함께 있었던 좋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가 다른 면에서도 멋지고 잘 할거라고 그 모습을 착각하게 되고 자신의 시선을 합리화 시키고,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배신자,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하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 나만의 눈을 가지고 앞만 바라볼 수 없기에, 그 사람의 뒷모습은 그냥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 사람이 보여지는 모습,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그 사람을 알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 같다. 모습찾기는 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가브리엘의 자신의 모습,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 알렉산드라의 모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 'Cowrds'

 

  표지에 나오는 시선을 발걸음은 앞으로 향해 있는데, 시선은 뒤를 향하는 그림이 보인다.
한 장을 넘겨보니, Kazimir Malevich의 "Cowards"라고 적혀있다. 겁쟁이들이라는 말인데,
앞을 향해 가면서도 뒤를 바로보는 모습이라서 겁쟁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여러번 읽고 엉뚱하게, 이 그림이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을 쳐다보는 그림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뒷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서 다가가는 것이 아닌, 그저 고개를 돌려서 '뒷 모습이 내 전부가 아니에요!!'라고
소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강풀작가의 순정만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게 되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이별한 고등학생의 깻잎머리 발랄 소녀 한수영과 띠동갑 연상의 소심한 남자가 등장한다. 우여곡절로 인해 서로 조금씩 친해지고, 꿈에서 아빠가 나타나는 꿈을 꾼 수영이는 남자에게 울면서 달려간다.

"왜, 아빠는 나에게 뒷모습만 남기고 난걸까요?"

수영이는 남자에게 어렸을 때 아버지와 헤어졌을 때가 항상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엄마와 손을 잡고 아버지가 뒤를 돌아서는데, 아버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고,
아빠가 왜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친구의 아픈 이야기를 들었던 남자는 수영이에게 

 "저기요.. 혹시 말인데요. 이런 건 아닐까요.. 아버님께서 분명히 사랑한다고..
잊지말라고 하셨잖아요"

"어쩔 수 없이 떠난거니까 뒤돌아 보면 너무 괴로우니까 ..
마음이 약해질까봐. 차마 뒤돌아 볼 수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수영이에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자가 있었기에, 가브리엘도 알렉산드라와 엄마가 있었기에 힘든 시련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아픔과 모순된 삶의 기억을 잘 이겨낸 가브리엘이 존경스럽다.

하나의 사실을 여러가지 모습에서 볼 수 있지만, 그 진실을 안다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다.
아빠의 마음을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깨닫게 되는 가브리엘의 모습을 통해,
모순된 현실을 밝게 이겨내는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랑이 너무 크고, 사랑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면 큰 미움이 된다는 말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말 우리에게 무서운 건 미움이 아니라, 그 모습을 보지 않고 내 생각대로 바라보고 판단하는 무서운 마음이 고집은 아니었을까. 내게 들리는 모습만, 내가 보는 모습만, 나에게 주어지는 생각들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마음에서, 쉽게 무언가 판단을 내리고 비난하려 했던 모습을 반성하고,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라는 걸 조금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P.S 나의 모습과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절에 눈물을 펑펑 흘리게 만들었던 옛 만화를 만나게 되어 더 기쁜 시간들이었다.

   책을 통해 또 하나를 얻어간다는 건, 그냥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만들어 준 기억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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