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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책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고민해 볼 만한 이야기거리만으로 서평을 써 보려고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 거절과 화를 내지 못하는 마음에 대한 생각, 관계를 맺는다는 것, 제목 그대로의 인간실격, 등 너무나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제기된 논점들이 바로 느낀대로 적는것보다 오랜 생각을 함께 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역시 책과 함께 이야기 하게 되어 버렸다.
일년뒤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지금의 마음에서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어린왕자를 꺼내 읽는다. 1년마다 내 생각의 변화를 체크할 수 있다. 어린왕자처럼, 인간실격도 친구처럼 계속 함께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는 음악과 좋은 술, 멋진 이벤트가 열리는 연회장이 있다. 실제 얼굴과 흡사한 웃는 얼굴의 가면이 있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가면을 쓴 채 입장해서 자유롭게 연회를 즐기는데, 홀로 입장해 버린 그가 있었다. 연회가 끝나기 전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섬세하고 예민한 그는 사람들이 가면뒤의 모습까지 알아버린다. 익살이라는 소소한 무기로 자신의 마음을 숨긴채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런 순수한 마음도 가식적인 모습과 행동에 조금씩 상처로 멍들게 된다. 결국 순수한 신뢰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잠깐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신뢰의 마음 때문에 곤란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점점 타락의 길로 내려가게 된다. 결국 극한 상황까지 가 버리는 인간실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기대가 클수록 그 관계가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는 것 같다. 좋은 느낌으로 친절하게 조금씩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만, 결국 그 사람이 원하는건 관계가 아니라 뭔가 목적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보지 않아도 좋을 나의 가치관에 맞지 않은 모습을 보았을때 그 사람에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내가 마음을 주고 내가 상처받았던건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세상 사람들의 맘이 내 맘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행동들이 조금씩 변했던 것 같다. 마음 그대로, 느낌 그대로의 행동보다는 적당히 생각하고 고려하면서 좋아하는 행동보다는 비난받지 않은 행동들을 선택하고 미소를 띠면서 상처주지 않으며 지내왔다. 사회생활에서 보면 매너이고, 인간관계에서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그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상처주지 않는다는 이름의 약간의 기만과 위선도 함께 스며있던건 아니였을까? 그 사람의 행동이나 표정을 더 유심히 보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에서의 행동을 택하면서 지내왔던것도 사실이였던 것 같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면의 마음과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사건들을 통해서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간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중에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자신이 되려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책은 3장의 사진과 3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에 하인들에게 슬픈 일을 당하면서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대로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겉으로는 좋은 척 하면서 뒤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헐뜯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에 대한 공포심을 키워나간다. 어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익살을 이용해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즐거워 해야 마음이 놓이고 그 자신은 마음이 음산해지는 불안한 상태가 유지된다. 자신의 연기를 눈치챈 친구에게 마음을 들켰을때는 무척 놀라지만, 비 내리는 날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면서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중학교에 입학하지만 폐결핵으로 요양하면서, 청년 시절에서는 호토시라는 사내를 만나게 된다. 5엔만 빌려주라는 부탁에 거절하지 못하면서 친해진 관계는 그에게 지갑을 맡기고 그가 경제적으로 돈을 사용하면서 이리저리 기생과 술집 등으로 삶을 허비한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허무감과 절망감에 빠진 그는 연인과 첫번째 동반자살까지 시도한다. 하지만 여인은 죽고 그 혼자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경찰서에 들어가게된다. 뻔한 대답을 원하는 작위적인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 주지만 그 역시 서장과의 조서를 꾸밀때에는 귀에 생긴 종기에 피가 떨어져 생긴 핏자국을 오해한 서장에게 진실된 답변을 하지 않고 회피함으로써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검사에게 속마음을 들킬 뻔한 모습에 깊은 좌절을 느낀다. 그러나 기소유예로 풀려나게 된다.
그 이후 돈이 떨어진걸 알게된 호토시는 그를 싸늘하게 대하고 인간에 대한 회의를 또 느끼게 되고, 이혼하고 딸을 가진 시즈코의 정부역활도 하면서 만화가로서의 삶을 지낸다. 점점 알콜중독에 시즈코의 패물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술을 마신다. 하지만 여인과 딸은 그가 돌아오길 기대하고, 딸과 여인이 자신에게 아빠의 역활을 기대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하지만 자신이 두 사람에게 끼여들면 그들의 행복또한 망쳐놓을꺼라고 생각한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오게 된다. 사람을 믿는 마음이 강한 순수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그 순수하고 믿음이 강한 모습때문에 겁탈당하고 그 이후 더욱 파멸적인 생활을 하다 마약에 중독되어 정신병동에 입실과 퇴실. 그 이후의 이야기로 나뉘어진다. 차츰차츰 조금씩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고도 세밀한 심리묘사로 표현해 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한 명의 여인을 빼고는 그에게 많은 걸 기대하고 이용하길 원한다. 순수하게 살고 싶은 그에게 그건 어려운 선택이였을까? 점점 타락하고 인간의 마지막까지 추락하는 그를 미워하는게 당연한거 같은데,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화가난다. 순수한 사람이 오히려 그것때문에 죄인처럼 되어버리는 가슴 아픈 사연은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 상처를 극복하는 건 역시 말처럼 쉽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된다. 사라지는게 아니라 잠시 잊으면서 버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스스로 인간실격이라 생각하는 그가 가식적으로 그들 나름대로 사회에서는 좋은 이미지를 보이면서 사는 사람보다 더 나아보였다. 진심은 결국엔 통하기 마련이니, 미리 겁내지 않고 조금씩 견뎌가면서 행동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ALL or Nothing 처럼 지나치게 순수하게 지내거나, 지나치게 타락하고 만 모습이 어쩌면 내 마음속에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작품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단 기분이 우울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보다는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가득할 때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읽고난 뒤 인간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순수한 사람이 잘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게 나부터 좀 더 진실되게 행동해야 함을 느끼게 한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