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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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은 2021년에 출간되어 그 해 국내 모든 온라인 서점에서 '올해의 책' 또는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평론가나 일반독자 대부분에게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고 지금도 꾸준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은영은 1984년생으로 이제 불혹의 나이로 접어드는데 서른 즈음인 2013년에 등단한 이후 약 10년간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하면서 상당히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전도유망한 기대주라 할 수 있겠다. 데뷔작인 '쇼코의 미소' 때부터 이미 그녀의 골수팬이 된 독자들을 비롯하여 두터운 팬층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작 '밝은 밤'은 그동안 중단편소설들만 써오던 그녀가 처음으로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전작들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녀가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는지 전혀 모르는 백지상태라 소개팅 같은 첫만남에서 미지의 낯선 상대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듯한 묘한 설렘도 느꼈던 것 같다.


일단 내가 책을 읽으면서 처음 받았던 인상은 글이 참 담백하고 순수하다는 점이었다. 문장에는 기교가 거의 없는 편이고 모호한 표현을 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작가다운 깊은 사유가 묻어나오는 감각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어 필력이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다만 작가가 나름 힘을 준 문장들이 그리 노련하다거나 세련된 느낌까지는 아니어서 평단의 찬사를 받는 인기작가라는 점을 고려한 기대감에는 살짝 못미친다는 느낌도 함께 받았던 것 같다.



초반 몇페이지를 읽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이런 글은 확실히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한 기운으로 감싸며 한참동안 문장을 곱씹어보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한다. 마음이란 것이 꺼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따뜻한 물로 씻고 햇볕에 잘 말려서 좋은 향기가 나는 상태로 가슴에 다시 넣고싶다는 이런 표현은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용도로 쓰여진 문장이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보다는 평소 한번씩 해왔던 작가 자신의 개인적 상념들이 자연스럽게 투영된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왜냐하면 이런 한없이 착하고 따뜻한 생각은 이혼과 함께 삶에 찌들려 다소 냉소적인 경향을 보이는 지연의 캐릭터와 약간 상충되면서 그리 잘 붙지가 않는 표현이라 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 최은영이라는 작가 본인의 성격과 성향이 실제로 굉장히 착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게 되었다.


책을 계속 읽다보니 이러한 나의 추측은 점점 확신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너무 착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오히려 독이 되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나는 중간중간 늘어지는 느낌에 살짝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스토리가 큰 변곡점 없이 너무나 평탄하게만 흘러간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비록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의 굴곡진 삶이 액자 형식으로 끼어들어 집중도를 올려주는 역할을 어느 정도 해주긴 하지만 그것 역시 이미 지난 얘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내니까 아주 드라마틱하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초반부 지연이 할머니와 조우하는 시점부터 대다수의 순수문학이 그러하듯 나는 혹시나 이 작품도 결국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는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한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너무나 여자 여자한 느낌이 강하다. 30대 여자 주인공과 그녀의 엄마, 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4대를 아우르는 여성들의 인생을 다루면서 한국 특유의 가부장 문화를 꼬집는 부분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분량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새비 아저씨를 제외하면 모조리 함량미달의 인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하나같이 우리나라 여성들이 질색하는 남자들 뿐이다.



밖에서 다른 사람과 정치얘기나 축구얘기에 열올릴 줄이나 알지 정작 아내와 자식은 나몰라라 하는 한량 그 자체인 남자라는 존재의 비루한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남자가 잘못했음에도 여자도 잘한 건 없다며 오히려 남자를 옹호하는 그 당시의 보편적 정서도 빠짐없이 끼워넣는다. 이 책은 작가를 모르는 상태로 글만 읽어도 여자가 쓴 글임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여성성이 강한 것이다. 물론 '82년생 김지영' 같은 노골적인 페미니즘 소설들과 비교하기에는 그 수위가 한참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남성보다는 여성들의 공감대에 어필하는 부분이 훨씬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뭏든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나름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많았던 것 같은데 그것들이 너무 나열식으로만 펼쳐져 있어서 장편소설이라는 긴 호흡의 형식에 걸맞는 기승전결의 견고한 짜임새를 보여주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중단편만 써왔던 작가라 그럴 지도 모르겠다. 장편의 큰 틀 안에서 각각의 에피소드와 분량을 적절히 안배해서 컨트롤하는 기술이 아직은 좀 부족한 듯 하다. 이혼이라는 상처를 안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주인공과 전쟁통의 역경을 억척스럽게 헤쳐나왔던 할머니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우정, 거기에 천문관측이라는 주인공의 직업과 연관해서 거대한 우주에서 본다면 찰나에 불과한 별 의미없는 인간의 삶을 환기시키는 구절도 주기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엮여서 하나의 큰 줄기를 타고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야가가 별다른 인과관계 없이 흩어져 있다보니 다 읽고나서도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바로 와닿지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은 캐릭터 구축력이 많이 아쉬운데 주인공이자 화자인 지연은 가장 중요한 캐릭터임에도 정보가 너무 빈약해서 감정이입이 힘들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다고만 간단히 언급하고 있어 그녀가 지금 어느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있는 것인지 또한 현재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최소한 전남편과의 이혼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이나 전사는 넣었어야 했다. 나는 솔직히 지연이 어떤 사람인지 책을 다 읽고나서도 잘 모르겠다. 


심지어 죽은 언니인 정연에 대해서도 엄마와의 가장 큰 갈등원인임에도 설명이 전혀 없다. 정연의 죽음에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 모르니 엄마와의 갈등에 공감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후반부 결혼식 전날 모녀의 언쟁은 거의 클라이막스(물론 이 장면이 후반부에 배치되어 클라이막스라고 한 것이지 이 작품은 기승전결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전혀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장면은 아니다)에 해당되는 중요한 장면인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건 치명적일 정도다. 



연을 끊고 살다시피한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갈등 또한 설명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다. 일부러 여백을 많이 둬서 나머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버리는 단편이나 중편은 캐릭터의 전사를 생략해도 상관없지만 감정이입을 통해 긴 호흡으로 끌고가는 장편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영화든 소설이든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에 드라마틱한 전개보다는 한없이 평범하고 별거없는 자잘한 일상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보게 만드는 이런 류의 이야기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당연히 이 책도 그런 쪽으로 어필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나 여성분들이라면 더욱더 감동적인 여운을 음미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리뷰를 하다보니 이상하게 단점만 말한 것 같은데 원래부터 나는 남들이 모두 좋다고 하니까 그냥 따라서 좋다고 하는 그런 성격이 못된다. 결론은 너무나 따뜻하고 착하고 좋은 작품이지만 약간은 심심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부모와 친구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새삼 안부전화라도 걸고 싶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같은 경우는 당연하겠지만 읽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분명 더 자주 찾아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것 같은데... 뒤늦게 마음이 쓰라린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B8kC3_XoxfU&t=277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52078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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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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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후버는 지난번 '우리가 끝이야'라는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이 작가의 글을 한번쯤은 더 읽어보고 싶다고 얘기한 바 있다. 작가에 대해서는 그 리뷰에서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4833020


이번에 읽은 이 '베러티'는 2018년에 출간되었으니까 나온지 이미 5년이 넘었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노출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작품이고 국내에 번역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판매량이 높은 걸로 나온다.


제목 베러티(Verity)는 '진리', 또는 '진실'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 최진실씨의 진실 정도로 비유하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어쨌든 책을 다 읽고나면 이 제목이 상당히 복선적인 의미로 쓰였다는 것도 알게된다.



역시 이 작가는 글을 잘 쓴다. 문장을 구성하는 스킬이나 플롯을 다루는 솜씨가 확실히 프로작가답다. 시선을 압도하는 첫 시퀀스부터 계속해서 강력한 흡인력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도 거의 최고 수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지난번 S.A. 코스비의 '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리뷰 때 비유법을 예로 들면서 프로 수준에 못 미치는 작가의 실력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 콜린 후버는 같은 비유법을 써도 이렇게 사용한다.



약간의 과장이라면 과장 섞인 비유이긴 하지만 그만큼 이 여자의 심리를 아주 생생하고 또한 맥락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처리를 하고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은 'like ~' 즉, '~처럼'이라는 대놓고 비유하는 조사를 쓰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비유법을 섞어넣은 표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이 집이 굉장히 호화로운 저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인물의 심리와 주변공간을 한꺼번에 묘사하는 효과를 노리는 상당히 감각적이면서도 고급스런 스킬을 구사하고 있다.


무슨 '담배 끝이 용의 눈처럼 붉게 타올랐다' 같은 맥락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마구잡이식 비유와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똑같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그 필력은 이렇게 천차만별인 것이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5011369


그런데 내가 볼 때 이 콜린 후버라는 작가는 자기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 나오는 두 여주인공은 모두 직업이 소설가인데 한명은 무명작가이고 다른 한명은 누구나 다 알 정도의 베스트셀러 스타작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 스타작가의 이름이 베러티다.


초반에 로웬이라는 이름의 무명작가가 베러티의 글을 읽고 주눅들어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베러티는 대단한 작가다. 정말 글을 잘 쓴다'라고 한다.



일반 작가라면 이렇게 베러티가 그저 대단한 실력이라는 간접적인 정보만 가볍게 흘리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콜린 후버는 적당히 말로만 떼우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는게 아니라 대범하게도 작품 속에서 베러티가 쓴 자전적 소설을 액자구성 형식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에게 로웬의 느낌이 진짜인지 아닌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고 자신있게 패를 까는 것인데, 이건 자신의 필력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으로는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설정이다.


물론 그 자전적 소설이 글쓰기 연습을 위한 습작이라는 아주 교묘한 안전장치도 빈틈없이 마련해두었지만, 어쨌거나 이 콜린 후버라는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 같고 또 실제로 그만큼 글을 잘 쓴다. 내가 지난번 리뷰 때 딱 한번 보고도 장르소설가로서는 필력이 최상급이라고 했지 않았나...


아뭏든 이 작가는 기본 베이스인 로맨스 장르에 스릴러적인 요소를 살짝 가미하는 스타일로 봤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반전을 포함한 스릴러 쪽에 비중을 훨씬 더 많이 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애정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에선 로맨스 작가 본연의 모습이 제대로 발휘되어 확실한 팬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런 문장은 확실히 로맨스 장인다운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가 묘사하는 성행위의 수위는 여전히 좀 낮은 편이다. 겨우 15세 관람가 정도? 아마 그래서 오히려 대중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고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베러티'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그것을 뒷바침하는 작가의 탁월한 필력 덕분에 쉴새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반전이라는 설정 자체에 너무 욕심을 낸 것인지 뒤끝이 개운하지가 않고 작가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한 것인지도 잘 와닿지 않는 점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든 소설이 반드시 갈등해소나 권선징악으로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법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리가 필요한데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의 방향성이랄까... 그런게 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지난번에 읽었던 '우리가 끝이야'가 훨씬 낫다.


그리고 번역도 이 책은 출판사가 달라서인지 번역가가 다른데 그냥 무난한 정도이지 좋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콜린 후버라는 작가의 필력을 번역이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특히 이 작가는 유머감각이나 통통 튀는 대사처리가 뛰어난데 그런 부분을 살려주는 번역가의 센스가 그다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끝으로 여담 한가지 추가하자면 내가 지난번 '우리가 끝이야' 리뷰에서 남녀 구분없이 모두 '그'라는 3인칭대명사를 쓰는 걸 보고 작가가 약간 페미니즘 성향이 있는게 아닌가 라는 추측을 했었는데, 내 유튜브 영상 댓글에 영문판 원서를 읽으셨던 독자분이 너무나 감사하게도 '여성 3인칭은 분명히 'She'라고 되어있었다'라는 제보를 해주셨다.



'우리가 끝이야'는 결국 남녀를 구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성향인지 아니면 진짜로 페미니스트인지 뭔지는 몰라도 하여튼 번역가의 지극히 개인적 성향에 의해 그런 표현법이 선택된 것임을 알게되었다. 사소한 단어 하나도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지 번역가들은 제발 좀 깊게 고민하면서 번역해주었으면 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콜린 후버는 평균적으로 거의 1년에 2편 정도의 신작을 뽑아내는 다작 스타일임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인데 물론 이것은 고정팬들의 관성적인 구매 때문일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도 가능하겠지만, 내가 이번에 두편째를 읽어본 결과 이 작가는 그만한 대접을 충분히 받을 만한 실력자임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혹시나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콜린 후버의 작품들 중에서 아무거나 골라서 읽어본다고 해도 크게 실망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Egel8sk5Mso&t=372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2878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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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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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Razorblade Tears'... 면도날 같은 눈물이라는 뜻일테고, 본문에서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가슴아픈 심정을 표현하는 의미로 묘사되어 나온다. 한글 제목은 마치 시의 한 구절처럼 멋지게 잘 지은 것 같다.


S.A.코스비라는 작가는 작년 초에 리뷰했던 '검은 황무지'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데 사실 이 책은 살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바로 번역가 때문에...


'검은 황무지'는 지난번 리뷰 때도 충분히 언급했지만 진짜 번역 엉망이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3300343


이번 작품은 번역가가 바뀌긴 했다. 그런데 하필 바뀐 번역가가 박영인씨라고... 별반 다를게 없는 수준이라... 박영인이라는 번역가는 그전에 '고리키 파크'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라는 작품을 연속으로 읽으면서 번역이 원작을 망쳤다고 느꼈을 정도로 너무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시는 이 사람 번역을 읽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더랬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2747035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2715937


번역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게 뻔히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작가가 어떻게 보면 흔한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이어서 다른 작품도 한권 쯤은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또한 이 작가가 문장에 기교가 없이 스토리를 직선적으로 쓰는 스타일이라 설사 번역이 좀 미흡하더라도 까짓거 내가 알아서 적당히 필터링 해가면서 읽으면 되겠지 싶어서... 또 거기다 중고책이라 돈을 좀 아꼈다는 위안까지 보태서 이번 구매목록에 겨우 집어넣게 되었다.



작가 S.A.코스비는 '검은 황무지'의 성공 이후 차기작들이 연이어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 판권이 팔리는 등, 현재 미국에서 굉장히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 버지니아주 출신 흑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이 흑인 갱스터랩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바이브와 함께 영화같은 액션씬들과 잘 어우러져 기존의 범죄스릴러 장르와 차별되는 신선한 느낌으로 어필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검은 황무지'를 읽었을 때도 느낀거지만 이 작가의 필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스토리를 연결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짜임새있고 흥미롭게 연출되어 있어서 킬링타임용으로는 준수한 먼치킨류 액션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쾌감과 만족도가 높았던 것일 뿐...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작가가 여러 측면에서 나름의 욕심을 좀 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황무지'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패시브로 깔려있는데 거기에 동성애를 비롯한 성차별과 성적 정체성,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 등, 현대 미국사회의 복잡한 문화적 인식과 현상에 대한 여러 메시지들을 문학적으로 좀 근사하게 녹여넣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글을 쓸때 단순한 문장을 좀더 고급스러운 문장으로 바꾸기 위해 시도하는 가장 초보적인 방법은 바로 수식어구를 추가해서 비유법을 쓰는 것이다. 예를들면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같은 지극히 심심한 문장을 '노을이 그녀의 도발적인 입술처럼 붉게 물들었다' 라는 식으로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갖다붙여서 살짝 화려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수법인데, 별 것 아니지만 뭔가 신경써서 글을 썼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어디까지나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한 수준이라 고수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더러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자신만의 감성과 기교를 더하게 된다.


이 작가는 자신이 이제는 프로작가로서 한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이번 작품에서는 문장에 이러한 비유법을 상당히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수아비 속에 들어찬 볏짚들처럼' '어린아이들의 애착 담요처럼'... 애착담요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이렇게 '~처럼' 하는 비유법을 한 문단에 사용하고도 또 바로 다음 문단에서도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할 정도로 기회만 있으면 꼭 뭔가에 비유해서 심심한 문장이 되지않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작가가 사용하는 비유법은 그리 고차원적이거나 고급스럽지가 않다. '기온은 물로켓처럼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담배 끝이 용의 눈처럼 붉게 타올랐다'... '물로켓', '용의 눈'... 이런 식의 마구잡이 비유법은 앞뒤 문장과의 연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소 뜬금없고 생뚱맞은 표현이라 실소가 나온다. 오히려 아마추어 티를 못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검은 황무지'는 투박하고 우직스러운 면이 의외로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마치 리 차일드의 '잭 리처'시리즈 흑인버전을 읽는 것 같은 단순명쾌함이 좋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은 이렇게 그냥 장르적 재미만 있으면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가가 의욕이 넘쳤는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그 덕분에 순수한 범죄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은 상대적으로 좀 약해져 버렸다.


나는 임팩트있는 제목처럼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의 피눈물나는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지길 기대했지만, 작가가 여기에 전형적인 헐리우드 버디액션 스타일의 클리셰적 설정을 집어넣는 바람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락가락하면서 중간중간에 좀 김이 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흑백 버디무비 역사야 워낙 오래되서... 시드니 포이티어와 토니 커티스의 '흑과 백' 같은 고전영화는 장르가 다르니까 예외로 치더라도 80년대에 나왔던 닉 놀테와 에디 머피 주연의 '48시간'이라는 영화가 있다.



진지한 액션 쪽을 담당하는 백인남자와 가벼운 유머를 담당하는 떠벌이 흑인남자 조합인데, 여기서 흑백 인종만 서로 바꾸면 딱 이 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샘 엘리엇 닮았다는 백인 아버지가 개그를 담당한다. 샘 엘리엇의 외모가 어쩌면 전형적인 남부 백인남성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하여튼 굉장히 심각한 사건을 파헤치는 와중에 수시로 끼어드는 백인 파트너의 개그는 흑백 버디무비의 티키타카를 살리는 장점으로 활용되는 면도 있지만, 메인 스토리의 무게감을 상당 부분 날려버리는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그래도 중후반부 이발소에서 슬라이스라는 지역 보스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대사와 상황묘사를 비롯한 몇몇 시퀀스는 참 좋았던 것 같다. '검은 황무지'도 그렇지만 이 작가는 주인공이 특정 공간에서 비중있는 빌런들과 마주하고 서로 신경전을 펼치거나 대화로 힘겨루기하는 장면을 흥미롭게 연출하는 재능은 탁월하다. 이런 장점을 극대화했으면 좋았을텐데 엉뚱한 방향으로 신경을 더 많이 쓴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리고 번역은 너무나 내가 예상한 그대로여서 더 실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한숨 밖에 안나오는 번역 상태를 일일이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일단 이 책에서 가장 거슬리는 번역은 각각의 대사 뒤에 붙는 '~가 말했다'라는 문장이다. 버디무비 형식이라 거의 대부분 두 주인공인 아이크와 버디 리의 대사가 무수히 이어지는데, 말끝마다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가 꼬박꼬박 붙어있다. 물론 원문에도 'Ike said' 'Buddy Lee said'라는 식의 영문 특유의 관성적인 문장이 붙어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달라서 '~가 말했다'가 너무 많이 반복되면 이상하게 거슬린다.


따라서 누가 말한 대사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상황이라면, 재량껏 적당히 빼버리면서 책을 읽는 리듬감을 살려주는 것도 번역가의 센스이자 능력이다.



이 부분만 해도 고작 반페이지 분량에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가 각각 두번 씩이나 반복된다. 특히 마지막에 쓰여진 '버디 리가 말했다'는 없는게 훨씬 깔끔하다.


이 책에 끝없이 반복되는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라는 문장은 아마 따로 모아놔도 수십페이지는 될 분량인데 솔직히 반 이상은 빼버려도 아무 지장이 없다. 작품성이나 문학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않는 문장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이게 정말 읽다보면 짜증이 난다.


그리고 매번 문제점으로 지적해왔던 등장인물들의 어투 설정도 여전히 나아진게 없다. '검은 황무지'도 그렇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역시나 마초적 성향이 가득한 거구의 근육질 흑인남성이다. 물리적 폭력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이 작가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개인적 취향인 것 같기도 한데, 아뭏든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면 그가 내뱉는 대사 역시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톤이어야 한다.


아이크와 버디 리 둘다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극중에서 나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역시 비슷한 또래의 동년배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백인인 버디 리는 처음부터 반말을 하는데 반해 흑인인 아이크는 존댓말을 한다. 아무리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평범한 사람으로 새출발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이라도, 메인 주인공인 아이크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좀 무게감있고 강한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고 그게 이 작가가 구사하는 흑인 갱스터 느와르 장르에도 훨씬 부합하는 이미지라 생각한다.


이른바 '샷 콜러'라고 일컫는 감방 보스로 지냈을 정도의 먼치킨급 피지컬을 무기로 무지막지한 완력과 폭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이 대사 치는거 보면 너무나 선량하고 순둥순둥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겨우 빌런의 보디가드 똘마니한테조차 소지품 검사 장면에서 '작업용으로 들고다니는 칼뿐입니다'... 이딴 식으로 나약하게 얘기하면 뭐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또 한가지 주석... 이 번역가는 언제나 그렇듯 주석 참 열심히 단다. 물론 성의가 느껴지는 주석도 없진 않지만 역시나 절반 이상은 불필요한 생색내기용이다.



'볼베어링' '슈퍼볼' 같은 너무나 대중적인 단어에 굳이 주석을 다는 이유가 뭘까? 물론 기계나 스포츠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주석 못 달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아뭏든 이런 주석들은 번역가가 자신이 신경써서 열심히 한 것처럼 눈속임하는 용도에 불과하다. 주석은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돕거나 자칫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디테일을 설명해주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



이 부분은 눈물 자국과 연관해서 '론 레인저'를 언급하고 있는데도 주석은 그냥 검은 가면 주인공이라는...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대로 받아쓰는 식의 코멘트 밖에 없다. 이건 그 영화에서 인디언으로 나왔던 조니 뎁의 눈물 자국 비슷한 얼굴 분장을 빗댄 말이다.



주석이 이런 점을 짚어주지 않으면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도 '더티 해리'가 나오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개인적인 징벌을 내리는 영화의 전형... 어쩌구 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맥락을 벗어난 내용으로만 주석을 달아놨다. 본문에는 거대한 권총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더티 해리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 주석에는 당연히 더티 해리가 애용한 '매그넘44'라는 대형 권총이 언급되어야 하고 그래야 독자들이 읽으면서 더티 해리라는 용어가 쓰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나...



이왕 주석을 달거면 제대로 달던가 아니면 차라리 안 다는게 더 낫다.



'단안경'이라고 번역해놓고 또 별도로 주석 달아서 '외눈 안경'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도 참 웃기는 부분이다. 그냥 처음부터 주석 없이 외눈 안경이라고 번역하면 되는 문장이다.



이걸 보고 버디 리가 상대에게 즉석에서 '파나마 잭'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는데, 이건 또 주석을 안 달았다. 상식적으로 한국에서 '단안경'을 아는 사람이 많겠나, 아니면 '파나마 잭'을 아는 사람이 많겠나...


어쨌든 구글 검색을 해보니까 'Panama Jack'은 스페인의 유명하고 전통있는 잡화 브랜드인데, 브랜드 로고가 외눈 안경을 쓴 남자였다.



그래서 버디 리가 일종의 개그를 친 것이다. 주석을 달려면 이런 걸 설명해서 유머코드를 이해하고 같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도 잠깐만 검색하면 알아내는 내용인데...


작가후기를 통해 짐작한 것이지만 이 작가는 남부식 구어표현에 능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미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나 유머도 상당히 많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측이 되는데, 만약 책을 읽으면서 특이한 억양이나 유머코드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것도 전적으로 번역의 책임이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보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조폭이 나와서 굉장히 신선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 작품도 그런 류의 남부 표현법이 읽는 재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해봤는데... 하여튼 나는 이 책에서 남부 억양 같은거 전혀 못 느꼈다.



'아이크는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하고선 대화하다가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똑같은 문장으로 또다시 '아이크는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가 나와서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황당한 오역 따위는 너무나 사소한 수준이니까... 번역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나는 이 책 읽으면서 주인공 아이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착해빠진 존댓말을 쓰면, 머릿속으로 내가 알아서 실시간으로 반존대 또는 반말 등으로 재번역 해가면서 읽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영화 스타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매력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검은 황무지'를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봤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내심 기대한 부분이 좀 있었던 것에 비해서는 의외로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필력의 한계와 함께 단점을 더 많이 보게된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앞으로 이 작가는 책보다는 나중에 영화로 나오게 되면 그냥 영화로만 보면 될 것 같다. 주인공은 이드리스 엘바나 드웨인 존슨이 맡아주면 딱일 것 같은데... 특히 이 작품은 이드리스 엘바가 많이 생각나더라...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9FZsoYkgos&t=34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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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문 -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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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는 10월에 개봉할 예정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디카프리오와 드 니로가 주연인데 두 명 모두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이고 이 신,구 페르소나가 함께 출연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서 기대를 많이 하고있다. (애플에서 만든 영화라 나중에 애플TV+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될 것 같은데 넷플릭스가 아니라서 못내 아쉽다)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1967년생으로 현재 50대 중반이고 주로 역사 속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나 모험담들을 발굴해서 취재하고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즈 No.1 베스트셀링 작가로 이미 유명한 모양이다. 국내에는 이 책 외에 역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잃어버린 도시 Z', 그리고 남극 탐험가의 일대기를 담은 '궁극의 탐험'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이 책의 원제는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고 2017년에 발표되었으니까 나온지 이미 5년이 넘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다음해인 2018년에 빠르게 번역되어 나왔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첫페이지 도입부에 바로 설명을 해주면서 시작한다.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커다란 달빛 아래 꽃들이 죽어가는 시기인 5월을 가리켜 '꽃을 죽이는 달 (Flower Killing Moon)'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인디언의 고유한 표현을 쓴 제목답게 미국에 남아있던 한 인디언 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클라호마 주는 그동안 고전 서부영화에서 참 많이도 등장했던 지역인 것 같다. 말과 소떼들... 그리고 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들판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미국 중남부에 위치하면서 아무래도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강제 이주지역이다보니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이 함께 등장했던 서부영화의 단골 배경지역으로 나왔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세이지 원주민 보호구역은 북쪽 캔자스 주와 인접한 변두리 지역이고 구글지도에는 '오시지 레저베이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흔히 '예약'을 뜻하는 'Reservation'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뜻도 있었다) 아뭏든 편의상 나는 '오시지'가 아니라 그냥 책에서 번역한대로 '오세이지'라고 쓰겠다.



바로 아래에는 '털사'라는 도시도 보이는데 최근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털사 킹'이라는 미국드라마 때문에 친숙해진 이름이고 책에 많이 언급되는 '포허스카'와 '그레이호스'의 위치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추적한 르포 형식의 논픽션이다보니 아무래도 오클라호마와 인디언의 역사에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을 미리 습득하고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거 몰라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고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모든 내용들이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어두운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함을 제대로 즐겼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살고있는 보호구역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원주민들과 그들을 노리는 백인들의 탐욕과 잔인함으로 얼룩진 가슴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클라호마가 석유 생산지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이 책 덕분에 새롭게 알게되었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인디언과 석유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석유 때문에 부자가 된 인디언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너무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인디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비록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항상 짠하고 좀 미안한...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분명히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음에도 항상 야만인 취급을 받아온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마치 난민처럼 척박한 변두리의 보호구역에 내몰려 있는데... 도대체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면서...


그래서 이 책 초반부에 석유의 수혜로 부를 누리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그려질 때는 속으로 약간의 통쾌함과 함께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본의 달콤함을 누렸던 인디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슴뭉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은 역시나 잠깐 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그렇게 공정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자기보다 하등한 존재라 생각했던 인디언들이 막대한 부를 가져가는게 못마땅했던 백인들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갑자기 운좋게 큰 돈이 생긴 사람이 설령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세상이 불공평한게 아니냐며 괜한 심술을 부리는게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 텐데, 하물며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존재라는 판단을 해버리면 기어코 숨어있던 최악의 심보가 올라와서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질투와 불만를 넘어 아예 뺏어서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인디언과 백인들의 역사는 바로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빚어진 어쩌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만큼 뻔뻔하고 비열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허구가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사실 그대로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에 충격도 충격이지만, 한편으론 그 추악함의 본질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것이어서 더 고통스러웠고 또한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본능이 주도하는 그러한 무질서과 공포 속에서도 정의로운 신념으로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려는 의로운 사람들 역시 함께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아직까지 세계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톰 화이트라는 연방수사관의 강건하면서도 집념어린 수사과정은 읽는 내내 진심으로 응원하게되는 숭고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위해 굳이 상상을 덧붙여서 양념을 치지 않고 오로지 재판기록을 비롯한 문서화된 증언과 실제 취재를 통한 팩트만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웬만한 추리소설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이 살아있다. 게다가 자료조사가 워낙 치밀해서 미국역사의 한 부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과 함께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상식을 새롭게 얻는 듯한 성취감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다른건 몰라도 '존 에드거 후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연방수사국 즉, FBI를 창설하고 무려 50년 가까이 국장으로 역임했던 FBI의 상징이다. (FBI 본부청사를 그의 이름을 따서 후버빌딩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후버가 FBI의 초석을 다져가던 시기에 인디언 보호구역의 사건에 개입하면서 톰 화이트를 고용하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초창기 연방수사국의 뒷얘기와 함께 후버의 성격도 엿볼 수 있어서 너무 흥미로웠고 덕분에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벌어지는 중범죄는 FBI 관할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윈드 리버'라는 영화를 보면 배경이 인디언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지역경찰이 아닌 FBI요원이 담당으로 파견된다. 확실히 어떤 상식이든 알면 알수록 그만큼 디테일을 즐길 수가 있는 것 같다.



'플라워 문'은 끔찍한 범죄와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적인 요소와 반전의 재미까지 갖추면서도,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일대기도 있고, 추악하고 잔인하거나 또는 나약한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국역사의 이면을 통해 여러가지 의미있는 상식을 얻은 점도 좋았다. 엄청난 자료조사를 비롯하여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책을 직접 읽어보니까 스콜세지 감독이 욕심을 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는 첫페이지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쉬지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몰입도가 대단하고 김승욱씨의 번역 또한 믿었던 만큼 안정적이어서 더할 나위가 없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uPJJk87QAyk&t=55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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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끝이야
콜린 후버 지음, 박지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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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생으로 43세인 여류작가 콜린 후버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면서도 영향력이 높은 스타작가 중의 하나임이 분명한 것 같다. 작가 홈페이지를 보면 주로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층을 겨냥한 로맨스 장르가 주종목인 걸로 소개되어 있다.



'로맨스소설' 분야에서 지금까지 화제가 되거나 성공한 케이스라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나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작품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되는데, 아무래도 남녀간의 닭살돋는 애정행각이나 성적인 묘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좀 심하게 갈리는 장르라 할 수도 있겠다.


나같은 경우는 불호 쪽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로맨스 장르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영화만 하더라도 '노팅힐' '세렌디피티' '어바웃타임' 같은 로코물 정말 좋아하고, 특히 '노팅힐'은 나의 인생영화 10편을 뽑는다면 반드시 넣고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쪽의 책은 글쎄... 오래전에 읽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로맨스물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책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읽어본 작품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로맨스 소설을 기피하는 이유는 작품의 주제나 소재 때문이 아니라 정말 처참한 수준의 글솜씨를 보여주는 저급한 작품들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선입견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질 떨어지는 글쓰기가 가장 심하게 몰려있는 장르가 바로 '무협지'와 '로맨스'... 이 두 분야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래서 이 책도 로맨스물이라는 사전정보 딱 한 가지만 접한 상황에서 읽기도 전에 대충 지레짐작하고 혹시 지뢰를 밟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 작품은 2016년작으로 나온지 이미 꽤 오래되었는데, 최근 2021년에 젊은층이 많이 이용하는 TikTok이라는 어플에서 이 책을 읽고 감동받았다는 영상들이 챌린지 형식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TikTok을 하지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BookTok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어서 책을 읽고난 느낌을 짧은 영상으로 공유하는 그러한 문화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요즘 세대들이 워낙 책을 안 읽는데다가 진지하고 지루한 거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이라 생각해서 이것도 책 내용의 질과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냥 또래들끼리 즐기는 밈(Meme)문화와 같은... 한때 가볍게 반짝 즐길거리로 어쩌다보니 그냥 얻어걸린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지만 예전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일본소설이 난리난 적 있었다. 2000년대 초에 일본의 어떤 유명 여배우가 그 책을 울면서 단숨에 다 읽었다느니 하는 소감이 화제가 되면서 갑자기 슈퍼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여파가 우리나라까지 덮쳐서 굉장히 많이 팔렸던 책이다. 일본어로는 '世界の中心で、愛をさけぶ'인데 이걸 줄여서 짧게 'セカチュー'라고 불렀고, 일본 현지에서는 'セカチュー신드롬'이라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당시에 나도 사서 읽었고 그때 썼던 리뷰가 블로그에 남아있는데, 어이없는 졸작이었고 차라리 황순원의 '소나기'가 열배는 낫다... 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프로작가가 썼다고는 도무지 믿기지않는 평범한 필력의 소유자가 분에 넘치는 성공과 함께 대단한 작가로 포장되는 현상이 씁쓸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그 이후로 일본의 호들갑은 절대 믿지 않는다.


아뭏든 그래서 이 책도 그냥 관종기 가득한 젊은이들의 놀이문화에 이용되었을 뿐인 그야말로 건질거 하나도 없는 흔하디흔한 로맨스소설일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을 안고 정말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 책은 좀 대박이다.



도입부 몇페이지 읽자마자 이 작가가 글을 정말 잘 쓴다는 건 대번에 파악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가면 갈수록 그 잘 쓰는 정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깜짝 놀랐다. 바로 전에 읽었던 프리다 맥파든도 필력이 상당히 좋은 작가라고 판단했는데 이 콜린 후버는 그보다 한수 위의 글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스피디하고 감각적인 상황묘사와 빈틈없는 캐릭터 구축력에 통통 튀는 대사 모두가 한차원 높다. 이 정도면 장르 소설가로서는 거의 최상급의 필력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말을 조리있고 재미있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들려주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훨씬 더 즐겁게 몰입하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일단 작가가 글을 잘 쓰면 스토리의 재미도 재미지만 문장 자체를 읽는 즐거움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 작가의 글은 뭐랄까... 한마디로 너무 사랑스럽다. 프로다운 문장의 기교가 살아있으면서도 쉬운 단어와 간결한 구성으로 풀어내기 때문에 실제로는 상당히 무겁고 깊이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모든 상황과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가 완벽하게 이해되고 쉽게 다가오는 한편, 별거없는 자잘한 일상사가 묘사되는 와중에도 뭔가 모를 품격이 느껴진다.


특히 나는 개인적으로 품위있는 서양식 유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사회자나 배우들이 한번씩 던지는 농담같은... 그런 유머를 좋아한다.


옛날 영화 중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감독 주연에 닉 놀테가 나오는 'The Prince of Tides'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사랑과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는데 당시에 별 생각없이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보다가 어느 틈에 흠뻑 빠져서 감상했던 영화다. 그 영화를 보다보면 중간중간 주로 대사로 묘사된 수준높은 유머가 나오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너무 내 취향이어서 좋았던 기억이 나고, 아직도 '사랑과 추억'하면 고급스런 유머가 제일 인상깊었던 영화로 남아있다.



이 작품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스타일의 유머들이 마치 융단폭격하듯이 이어져서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거나 킥킥거리면서 웃었던 시간이 많았다. 책 읽다가 하도 혼자서 킥킥거리니까 집사람이 한심하게 쳐다보긴 했지만서도... 하여튼 이 작가의 유머감각은 정말 취향저격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로맨스물이라고 하기에는 성적인 묘사의 수위가 한참 약하다. 켄 폴리트의 작품들에 비하면 거의 애들 수준이고 영화로 치면 15세 관람가 정도여서 이 책이 과연 로맨스 장르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물론 그래도 나름 로맨스물다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표현법이 눈길을 끄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어쨌거나 '가정폭력'이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와 이를 극복하려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진지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있는 것처럼 작품 전반에 항상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깔려있는 스릴러적인 요소가 오히려 강한 편이다.


TikTok 영상을 보면 업로드한 사람이 거의 여성인데 이것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들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강력하게 어필하는 메세지가 있다. 거기에 작가의 출중한 필력이 더해져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있는 것이라 본다. 과연 무엇이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페미니즘 성향이 좀 강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 책에는 '그녀(She)'라는 3인칭 대명사가 없다.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그'라고 지칭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번역가가 실수를 했나 싶었는데 나중에는 작가의 의도적인 표현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도 원문에는 'He'나 'She'의 구분없이 모두 'They'로 통일해서 쓰지않았나 싶다. 작가의 성향이 그렇다면 존중해줄 필요는 있다. (엉뚱하게도 설마 번역가가 페미니스트라서 자기 마음대로 '그녀'를 지워버린 거라면 정말 낭패지만...) 내 직감이 맞다면 이런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살릴 정도로 번역 역시 너무나 훌륭하다. 앞서 '하우스 메이드'도 그렇지만 장르소설에서 이 정도로 좋은 번역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에 운 좋게도 두 작품 연속으로 번역이 너무 고퀄리티라 웬일인가 싶다.


한가지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우리나라 독자들이 미리 알아두면 좋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엘런 드제너러스'라는 인물이다.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셀럽이고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도 몇번 맡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릴리가 멋있어서 오줌 쌀 뻔했다고 표현했던 대목은 바로 아래 장면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릴리가 어린 시절 심적으로 의지하는 동경의 대상으로서 그냥 실명으로 언급이 된다. '니모를 찾아서'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사용된 도리의 대사가 인상깊게 활용되는데, 그 도리의 성우가 바로 엘런 드제너러스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은 번역가가 주석을 달아주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살짝 아쉽다.



후반부 엘런 드제너러스의 사인을 받은 걸로 등장하는 책도 'Seriously...I'm Kidding'이 원제목이고 실제로 그녀가 쓴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만약 엘런 드제너러스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나라면 정말로 영광스럽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감동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나 엘런 드제너러스가 콜린 후버를 자신의 쇼에 초대한 적이 있는지 구글로 찾아봤는데 아쉽게도 두 사람이 직접 만난 흔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이 이 정도로 인기있는 베스트셀러라면 그녀가 모를 리는 없을텐데 그 흔한 SNS의 언급조차도 없다는 건 너무 이상해서 좀더 살펴보니... 엘런 드제너러스는 이 책이 TikTok에 의해 역주행하기 전인 2020년부터 여러가지 부정적인 구설수와 논란에 휩싸이면서 커리어가 완전히 무너지는 시기를 보냈다고 나온다. 그러니 이런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지도... 거기에 생각보다 인성이 별로 좋지않은 사람이란 것도 덤으로 알게되면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만약 작가가 이 책에서 엘런 드제너러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쯤 분명히 훈훈하고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가 후기에 절대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고는 했지만 그건 너무 떨릴 것 같아서 오히려 장난스럽게 반어법으로 쓴 것 같은데... 어쩌면 지금은 진심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랄 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지금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의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이고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는지 한번 제대로 느껴본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안읽는 세대라고 멋대로 넘겨짚었던 내 모습을 반성하기도 했고, 편견은 무조건 버려야 한다는 것도 또한번 깨달았다.


이 작가는 어떤 작품이든 기본 이상은 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서 나중에 그녀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볼 계획이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6po4J1dZcak&t=52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18520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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