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
루 버니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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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딱 한 편을 읽고 작가의 스타일을 논하기에는 좀 성급할 수도 있다. 간혹 작품 소재나 주제에 따라 글쓰기에 변화를 주는 작가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작가는 워낙 개성이 강해서 다른 작품들도 거의 비슷한 패턴일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느꼈던 인상은 좀 '올드하다'라는 점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사립탐정이라는 것 자체에서 벌써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고 스토리의 진행도 느릿느릿하다. 아무래도 작가가 50년대 '레이먼드 챈들러'나 80년대 '제임스 엘로이'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작가는 배경이나 상황 등의 묘사에 있어서 별다른 수식어를 쓰지 않고 담백하게 처리하는 편이지만, 범죄 미스테리 장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중심이 되는 사건과 별 상관없는 시시콜콜한 일상의 장면들에 할애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상당히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한편의 영화보다 20부작 드라마 쪽에 훨씬 어울리는 긴 호흡의 진행이기 때문에 확실히 이 작가의 진가는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대사처리하는 방식이 상당히 수준이 높고 유머감각도 고급스럽다. 특히 각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유머는 작가의 고향이자 이 작품의 주 배경인 오클라호마 현지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꽤 눈에 띌 정도로 지역색이 느껴져서, 아마 오클라호마 토박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이 웃으면서 즐길 것 같다. 작가가 각 캐릭터의 특징이나 심리묘사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대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각각의 대사를 음미하고 즐기지 못한다면 나머지는 거의 건질게 없다.


이 책은 번역이 많이 아쉽다. 이렇게 대화 자체의 잔재미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경우 각각의 어투와 뉘앙스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은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작품이 번역하기 가장 까다롭다는 건 알지만, 사립탐정인 남자주인공이 쓰는 말투만 보더라도 그다지 일관성도 없고 어떤 경우는 어울리지도 않아서 번역으로 인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살짝 줄어든 모습이다. 그리고 쓸데없이 많은 주석이 달려있다. 신경써서 꼼꼼하게 번역한 부분도 보이지만, 막상 대부분의 주석들은 굳이 따로 빼내어 부연설명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마치 번역가가 능력의 부족을 주석의 물량공세로 떼우면서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 알아봐달라고 생색내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어떤 돌팔이 번역가가 본문 번역은 개판으로 해놓고, 별 쓰잘떼기없는 주석만 잔뜩 달아서 눈가리고 아웅하던 모습이 겹쳐보여 씁쓸해진다.

실력있는 번역가라면 이런식으로 너저분하게 주석을 달지 않는다. 차라리 오클라호마 특유의 지역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부분만 깔끔하게 추려서 주석으로 활용하겠지...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의 설명이 필요하니까...

어쨌든 이 작품은 많은 상을 받고 그에 걸맞는 수많은 찬사들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내스타일은 아닌걸로... 임팩트있는 사건도 없이 너무 밋밋하게만 흘러가니 읽는내내 답답하기만 했다. 미국 사람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번역된 책을 읽고 호평을 한 독자들은 과연 어떤 점이 좋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아무리 취향은 다양하다지만... 다음에도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굳이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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