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물이 너를 베리라
S. A. 코스비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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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Razorblade Tears'... 면도날 같은 눈물이라는 뜻일테고, 본문에서도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가슴아픈 심정을 표현하는 의미로 묘사되어 나온다. 한글 제목은 마치 시의 한 구절처럼 멋지게 잘 지은 것 같다.


S.A.코스비라는 작가는 작년 초에 리뷰했던 '검은 황무지'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데 사실 이 책은 살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바로 번역가 때문에...


'검은 황무지'는 지난번 리뷰 때도 충분히 언급했지만 진짜 번역 엉망이었다.


https://blog.aladin.co.kr/771302103/13300343


이번 작품은 번역가가 바뀌긴 했다. 그런데 하필 바뀐 번역가가 박영인씨라고... 별반 다를게 없는 수준이라... 박영인이라는 번역가는 그전에 '고리키 파크'와 '오래전 멀리 사라져버린'이라는 작품을 연속으로 읽으면서 번역이 원작을 망쳤다고 느꼈을 정도로 너무 실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시는 이 사람 번역을 읽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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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게 뻔히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작가가 어떻게 보면 흔한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인상적이어서 다른 작품도 한권 쯤은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또한 이 작가가 문장에 기교가 없이 스토리를 직선적으로 쓰는 스타일이라 설사 번역이 좀 미흡하더라도 까짓거 내가 알아서 적당히 필터링 해가면서 읽으면 되겠지 싶어서... 또 거기다 중고책이라 돈을 좀 아꼈다는 위안까지 보태서 이번 구매목록에 겨우 집어넣게 되었다.



작가 S.A.코스비는 '검은 황무지'의 성공 이후 차기작들이 연이어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 판권이 팔리는 등, 현재 미국에서 굉장히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잡은 것 같다.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 버지니아주 출신 흑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이 흑인 갱스터랩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바이브와 함께 영화같은 액션씬들과 잘 어우러져 기존의 범죄스릴러 장르와 차별되는 신선한 느낌으로 어필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검은 황무지'를 읽었을 때도 느낀거지만 이 작가의 필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스토리를 연결하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짜임새있고 흥미롭게 연출되어 있어서 킬링타임용으로는 준수한 먼치킨류 액션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쾌감과 만족도가 높았던 것일 뿐...


그런데 이번 작품은 작가가 여러 측면에서 나름의 욕심을 좀 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황무지'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패시브로 깔려있는데 거기에 동성애를 비롯한 성차별과 성적 정체성,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 등, 현대 미국사회의 복잡한 문화적 인식과 현상에 대한 여러 메시지들을 문학적으로 좀 근사하게 녹여넣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글을 쓸때 단순한 문장을 좀더 고급스러운 문장으로 바꾸기 위해 시도하는 가장 초보적인 방법은 바로 수식어구를 추가해서 비유법을 쓰는 것이다. 예를들면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같은 지극히 심심한 문장을 '노을이 그녀의 도발적인 입술처럼 붉게 물들었다' 라는 식으로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갖다붙여서 살짝 화려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수법인데, 별 것 아니지만 뭔가 신경써서 글을 썼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어디까지나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한 수준이라 고수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뿐더러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자신만의 감성과 기교를 더하게 된다.


이 작가는 자신이 이제는 프로작가로서 한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지 이번 작품에서는 문장에 이러한 비유법을 상당히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수아비 속에 들어찬 볏짚들처럼' '어린아이들의 애착 담요처럼'... 애착담요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이렇게 '~처럼' 하는 비유법을 한 문단에 사용하고도 또 바로 다음 문단에서도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할 정도로 기회만 있으면 꼭 뭔가에 비유해서 심심한 문장이 되지않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작가가 사용하는 비유법은 그리 고차원적이거나 고급스럽지가 않다. '기온은 물로켓처럼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담배 끝이 용의 눈처럼 붉게 타올랐다'... '물로켓', '용의 눈'... 이런 식의 마구잡이 비유법은 앞뒤 문장과의 연계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소 뜬금없고 생뚱맞은 표현이라 실소가 나온다. 오히려 아마추어 티를 못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내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검은 황무지'는 투박하고 우직스러운 면이 의외로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마치 리 차일드의 '잭 리처'시리즈 흑인버전을 읽는 것 같은 단순명쾌함이 좋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은 이렇게 그냥 장르적 재미만 있으면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작가가 의욕이 넘쳤는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그 덕분에 순수한 범죄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은 상대적으로 좀 약해져 버렸다.


나는 임팩트있는 제목처럼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의 피눈물나는 처절한 복수극이 펼쳐지길 기대했지만, 작가가 여기에 전형적인 헐리우드 버디액션 스타일의 클리셰적 설정을 집어넣는 바람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락가락하면서 중간중간에 좀 김이 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흑백 버디무비 역사야 워낙 오래되서... 시드니 포이티어와 토니 커티스의 '흑과 백' 같은 고전영화는 장르가 다르니까 예외로 치더라도 80년대에 나왔던 닉 놀테와 에디 머피 주연의 '48시간'이라는 영화가 있다.



진지한 액션 쪽을 담당하는 백인남자와 가벼운 유머를 담당하는 떠벌이 흑인남자 조합인데, 여기서 흑백 인종만 서로 바꾸면 딱 이 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샘 엘리엇 닮았다는 백인 아버지가 개그를 담당한다. 샘 엘리엇의 외모가 어쩌면 전형적인 남부 백인남성의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하여튼 굉장히 심각한 사건을 파헤치는 와중에 수시로 끼어드는 백인 파트너의 개그는 흑백 버디무비의 티키타카를 살리는 장점으로 활용되는 면도 있지만, 메인 스토리의 무게감을 상당 부분 날려버리는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그래도 중후반부 이발소에서 슬라이스라는 지역 보스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대사와 상황묘사를 비롯한 몇몇 시퀀스는 참 좋았던 것 같다. '검은 황무지'도 그렇지만 이 작가는 주인공이 특정 공간에서 비중있는 빌런들과 마주하고 서로 신경전을 펼치거나 대화로 힘겨루기하는 장면을 흥미롭게 연출하는 재능은 탁월하다. 이런 장점을 극대화했으면 좋았을텐데 엉뚱한 방향으로 신경을 더 많이 쓴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리고 번역은 너무나 내가 예상한 그대로여서 더 실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한숨 밖에 안나오는 번역 상태를 일일이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일단 이 책에서 가장 거슬리는 번역은 각각의 대사 뒤에 붙는 '~가 말했다'라는 문장이다. 버디무비 형식이라 거의 대부분 두 주인공인 아이크와 버디 리의 대사가 무수히 이어지는데, 말끝마다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가 꼬박꼬박 붙어있다. 물론 원문에도 'Ike said' 'Buddy Lee said'라는 식의 영문 특유의 관성적인 문장이 붙어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달라서 '~가 말했다'가 너무 많이 반복되면 이상하게 거슬린다.


따라서 누가 말한 대사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는 상황이라면, 재량껏 적당히 빼버리면서 책을 읽는 리듬감을 살려주는 것도 번역가의 센스이자 능력이다.



이 부분만 해도 고작 반페이지 분량에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가 각각 두번 씩이나 반복된다. 특히 마지막에 쓰여진 '버디 리가 말했다'는 없는게 훨씬 깔끔하다.


이 책에 끝없이 반복되는 '아이크가 말했다' '버디 리가 말했다'라는 문장은 아마 따로 모아놔도 수십페이지는 될 분량인데 솔직히 반 이상은 빼버려도 아무 지장이 없다. 작품성이나 문학성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않는 문장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탄력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이게 정말 읽다보면 짜증이 난다.


그리고 매번 문제점으로 지적해왔던 등장인물들의 어투 설정도 여전히 나아진게 없다. '검은 황무지'도 그렇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역시나 마초적 성향이 가득한 거구의 근육질 흑인남성이다. 물리적 폭력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이 작가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개인적 취향인 것 같기도 한데, 아뭏든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면 그가 내뱉는 대사 역시 그 캐릭터에 어울리는 톤이어야 한다.


아이크와 버디 리 둘다 비슷한 나이의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극중에서 나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역시 비슷한 또래의 동년배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백인인 버디 리는 처음부터 반말을 하는데 반해 흑인인 아이크는 존댓말을 한다. 아무리 어두운 과거를 지우고 평범한 사람으로 새출발하려는 의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이라도, 메인 주인공인 아이크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좀 무게감있고 강한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고 그게 이 작가가 구사하는 흑인 갱스터 느와르 장르에도 훨씬 부합하는 이미지라 생각한다.


이른바 '샷 콜러'라고 일컫는 감방 보스로 지냈을 정도의 먼치킨급 피지컬을 무기로 무지막지한 완력과 폭력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인물이 대사 치는거 보면 너무나 선량하고 순둥순둥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겨우 빌런의 보디가드 똘마니한테조차 소지품 검사 장면에서 '작업용으로 들고다니는 칼뿐입니다'... 이딴 식으로 나약하게 얘기하면 뭐 어쩌라는 건지...


그리고 또 한가지 주석... 이 번역가는 언제나 그렇듯 주석 참 열심히 단다. 물론 성의가 느껴지는 주석도 없진 않지만 역시나 절반 이상은 불필요한 생색내기용이다.



'볼베어링' '슈퍼볼' 같은 너무나 대중적인 단어에 굳이 주석을 다는 이유가 뭘까? 물론 기계나 스포츠에 관심없는 사람들은 모르는 단어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주석 못 달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아뭏든 이런 주석들은 번역가가 자신이 신경써서 열심히 한 것처럼 눈속임하는 용도에 불과하다. 주석은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돕거나 자칫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디테일을 설명해주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



이 부분은 눈물 자국과 연관해서 '론 레인저'를 언급하고 있는데도 주석은 그냥 검은 가면 주인공이라는... 아무 생각없이 시키는대로 받아쓰는 식의 코멘트 밖에 없다. 이건 그 영화에서 인디언으로 나왔던 조니 뎁의 눈물 자국 비슷한 얼굴 분장을 빗댄 말이다.



주석이 이런 점을 짚어주지 않으면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도 '더티 해리'가 나오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개인적인 징벌을 내리는 영화의 전형... 어쩌구 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맥락을 벗어난 내용으로만 주석을 달아놨다. 본문에는 거대한 권총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더티 해리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 주석에는 당연히 더티 해리가 애용한 '매그넘44'라는 대형 권총이 언급되어야 하고 그래야 독자들이 읽으면서 더티 해리라는 용어가 쓰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겠나...



이왕 주석을 달거면 제대로 달던가 아니면 차라리 안 다는게 더 낫다.



'단안경'이라고 번역해놓고 또 별도로 주석 달아서 '외눈 안경'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도 참 웃기는 부분이다. 그냥 처음부터 주석 없이 외눈 안경이라고 번역하면 되는 문장이다.



이걸 보고 버디 리가 상대에게 즉석에서 '파나마 잭'이라는 별명을 지어 부르는데, 이건 또 주석을 안 달았다. 상식적으로 한국에서 '단안경'을 아는 사람이 많겠나, 아니면 '파나마 잭'을 아는 사람이 많겠나...


어쨌든 구글 검색을 해보니까 'Panama Jack'은 스페인의 유명하고 전통있는 잡화 브랜드인데, 브랜드 로고가 외눈 안경을 쓴 남자였다.



그래서 버디 리가 일종의 개그를 친 것이다. 주석을 달려면 이런 걸 설명해서 유머코드를 이해하고 같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나같은 아마추어도 잠깐만 검색하면 알아내는 내용인데...


작가후기를 통해 짐작한 것이지만 이 작가는 남부식 구어표현에 능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미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나 유머도 상당히 많이 들어갔을 것으로 예측이 되는데, 만약 책을 읽으면서 특이한 억양이나 유머코드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것도 전적으로 번역의 책임이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보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조폭이 나와서 굉장히 신선한 재미를 주는 부분이 있었다. 내 생각에는 이 작품도 그런 류의 남부 표현법이 읽는 재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해봤는데... 하여튼 나는 이 책에서 남부 억양 같은거 전혀 못 느꼈다.



'아이크는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하고선 대화하다가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똑같은 문장으로 또다시 '아이크는 휴대전화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가 나와서 읽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황당한 오역 따위는 너무나 사소한 수준이니까... 번역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나는 이 책 읽으면서 주인공 아이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착해빠진 존댓말을 쓰면, 머릿속으로 내가 알아서 실시간으로 반존대 또는 반말 등으로 재번역 해가면서 읽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영화 스타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매력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검은 황무지'를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작품으로 봤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내심 기대한 부분이 좀 있었던 것에 비해서는 의외로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필력의 한계와 함께 단점을 더 많이 보게된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앞으로 이 작가는 책보다는 나중에 영화로 나오게 되면 그냥 영화로만 보면 될 것 같다. 주인공은 이드리스 엘바나 드웨인 존슨이 맡아주면 딱일 것 같은데... 특히 이 작품은 이드리스 엘바가 많이 생각나더라...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F9FZsoYkgos&t=345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248129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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