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 문 - 거대한 부패와 비열한 폭력, 그리고 FBI의 탄생
데이비드 그랜 지음, 김승욱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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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는 10월에 개봉할 예정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이란 영화의 원작이다. 디카프리오와 드 니로가 주연인데 두 명 모두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이고 이 신,구 페르소나가 함께 출연한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서 기대를 많이 하고있다. (애플에서 만든 영화라 나중에 애플TV+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될 것 같은데 넷플릭스가 아니라서 못내 아쉽다)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1967년생으로 현재 50대 중반이고 주로 역사 속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나 모험담들을 발굴해서 취재하고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즈 No.1 베스트셀링 작가로 이미 유명한 모양이다. 국내에는 이 책 외에 역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잃어버린 도시 Z', 그리고 남극 탐험가의 일대기를 담은 '궁극의 탐험'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이 책의 원제는 'Killers of the Flower Moon'이고 2017년에 발표되었으니까 나온지 이미 5년이 넘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다음해인 2018년에 빠르게 번역되어 나왔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첫페이지 도입부에 바로 설명을 해주면서 시작한다.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커다란 달빛 아래 꽃들이 죽어가는 시기인 5월을 가리켜 '꽃을 죽이는 달 (Flower Killing Moon)'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인디언의 고유한 표현을 쓴 제목답게 미국에 남아있던 한 인디언 부족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클라호마 주는 그동안 고전 서부영화에서 참 많이도 등장했던 지역인 것 같다. 말과 소떼들... 그리고 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들판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미국 중남부에 위치하면서 아무래도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강제 이주지역이다보니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이 함께 등장했던 서부영화의 단골 배경지역으로 나왔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세이지 원주민 보호구역은 북쪽 캔자스 주와 인접한 변두리 지역이고 구글지도에는 '오시지 레저베이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흔히 '예약'을 뜻하는 'Reservation'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뜻도 있었다) 아뭏든 편의상 나는 '오시지'가 아니라 그냥 책에서 번역한대로 '오세이지'라고 쓰겠다.



바로 아래에는 '털사'라는 도시도 보이는데 최근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털사 킹'이라는 미국드라마 때문에 친숙해진 이름이고 책에 많이 언급되는 '포허스카'와 '그레이호스'의 위치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추적한 르포 형식의 논픽션이다보니 아무래도 오클라호마와 인디언의 역사에 관련한 기본적인 상식을 미리 습득하고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거 몰라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고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모든 내용들이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어두운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흥미진진함을 제대로 즐겼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오세이지족 인디언들이 살고있는 보호구역에서 유전이 터지면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원주민들과 그들을 노리는 백인들의 탐욕과 잔인함으로 얼룩진 가슴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클라호마가 석유 생산지로 유명하다는 사실도 이 책 덕분에 새롭게 알게되었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인디언과 석유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석유 때문에 부자가 된 인디언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너무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사실 나는 인디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비록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항상 짠하고 좀 미안한...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분명히 아메리카 대륙의 원래 주인이었음에도 항상 야만인 취급을 받아온 것도 모자라서 지금도 마치 난민처럼 척박한 변두리의 보호구역에 내몰려 있는데... 도대체 왜 저런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면서...


그래서 이 책 초반부에 석유의 수혜로 부를 누리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그려질 때는 속으로 약간의 통쾌함과 함께 그나마 이렇게라도 자본의 달콤함을 누렸던 인디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그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슴뭉클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감은 역시나 잠깐 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그렇게 공정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자기보다 하등한 존재라 생각했던 인디언들이 막대한 부를 가져가는게 못마땅했던 백인들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만큼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갑자기 운좋게 큰 돈이 생긴 사람이 설령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세상이 불공평한게 아니냐며 괜한 심술을 부리는게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 텐데, 하물며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한 존재라는 판단을 해버리면 기어코 숨어있던 최악의 심보가 올라와서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질투와 불만를 넘어 아예 뺏어서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인디언과 백인들의 역사는 바로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빚어진 어쩌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만큼 뻔뻔하고 비열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허구가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사실 그대로 낱낱이 보여주기 때문에 충격도 충격이지만, 한편으론 그 추악함의 본질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것이어서 더 고통스러웠고 또한 부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본능이 주도하는 그러한 무질서과 공포 속에서도 정의로운 신념으로 법을 수호하고 집행하려는 의로운 사람들 역시 함께 존재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아직까지 세계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특히 톰 화이트라는 연방수사관의 강건하면서도 집념어린 수사과정은 읽는 내내 진심으로 응원하게되는 숭고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이 작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위해 굳이 상상을 덧붙여서 양념을 치지 않고 오로지 재판기록을 비롯한 문서화된 증언과 실제 취재를 통한 팩트만 나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순서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웬만한 추리소설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재미와 긴장감이 살아있다. 게다가 자료조사가 워낙 치밀해서 미국역사의 한 부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느낌과 함께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상식을 새롭게 얻는 듯한 성취감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다른건 몰라도 '존 에드거 후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정도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연방수사국 즉, FBI를 창설하고 무려 50년 가까이 국장으로 역임했던 FBI의 상징이다. (FBI 본부청사를 그의 이름을 따서 후버빌딩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는 후버가 FBI의 초석을 다져가던 시기에 인디언 보호구역의 사건에 개입하면서 톰 화이트를 고용하여 문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초창기 연방수사국의 뒷얘기와 함께 후버의 성격도 엿볼 수 있어서 너무 흥미로웠고 덕분에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벌어지는 중범죄는 FBI 관할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윈드 리버'라는 영화를 보면 배경이 인디언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지역경찰이 아닌 FBI요원이 담당으로 파견된다. 확실히 어떤 상식이든 알면 알수록 그만큼 디테일을 즐길 수가 있는 것 같다.



'플라워 문'은 끔찍한 범죄와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스릴러적인 요소와 반전의 재미까지 갖추면서도,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일대기도 있고, 추악하고 잔인하거나 또는 나약한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국역사의 이면을 통해 여러가지 의미있는 상식을 얻은 점도 좋았다. 엄청난 자료조사를 비롯하여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책을 직접 읽어보니까 스콜세지 감독이 욕심을 낸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나는 첫페이지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정말 쉬지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몰입도가 대단하고 김승욱씨의 번역 또한 믿었던 만큼 안정적이어서 더할 나위가 없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uPJJk87QAyk&t=553s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198833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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