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지만, H마트에만 가면 어쩐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엄마가 어릴 때 즐겨 먹었다던 과자들과, 그때의 나만큼 어렸을 적에 엄마는 어땠을지 상상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 기억도. 그때 나는 엄마라는 사람을 온전히 그려내기 위해, 엄마가 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하고 싶었더랬다.

나의 슬픔은 뜬금없는 순간에 들이닥치기 일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한국 노인에게 짜증이 난다. 이 여인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단 사실에 화가 치밀어오른다. 마치 생면부지의 이 여인이 살아남은 것이 내가 엄마를 잃은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엄마 나이에도 자기 엄마를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골이 난다. 저 노인은 여기서 이렇게 매운 짬뽕을 후루룩거리며 먹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은 거지?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인생은 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이따금씩, 출입문도 없는 방안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정도로 깊은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단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단단한 벽에라도 부딪힌 듯한 심정이 된다. 출구도 없고 단단하기만 한 벽면에 쿵쿵 머리를 찧으면서, 앞으로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하리라는 절대 불변의 현실만 자꾸자꾸 떠올리는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H마트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쟁반에 음식을 올려 가져오면서 가족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이 사람들이 여기서 무언가를 먹는 것은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 축복을 나누고 싶어서일까? 이중에 누가 올해 또는 지난 10년 동안 고향에 못 갔을까? 누가 나처럼 죽을 때까지 영영 못 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나는 오늘도 H마트 식당가에서, 엄마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첫 장을 찾아 헤맨다

대개는 그 잔소리가 한국 엄마들이 하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겼다. 그걸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다 하련만……

그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우리 엄마를 그리워하는지 아느냐고 말해주고 싶다. 어머니한테 더 잘 대해드리라고, 삶은 허망해 어머니가 언제 훌쩍 떠나가버릴지 알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엄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절대로 못 잊는다. 엄마는 늘 먹던 대로 음식을 먹는 분이었다

듣기 좋은 말이나 끊임없이 지지하는 말을 해주는 식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는 걸 평소에 잘 봐두었다가 그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편안하게 배려받는 느낌을 받게 해주는 식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건조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11. 유적•유물/신라금관
신라의 금관은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보도 기사도 났었답니다.

황남대총, 금관총, 천마총 등 신라왕릉에서 발견된 금관은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뮨화재다. 하지만 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사용됐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평소에 사용된 것이 아닌 무덤에 부장하는 고급 예술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는 문헌에 기록된 바가 없고 금관 외에도 금과 은, 금동으로 만든 다양한 장식품이 사용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반대 견해도 가능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10. 장소/서원
서원이 번창함에 따라 폐단은 생기기 마련이었으니 서원철폐령이 내려졌고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그 중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9곳이 등재되었다.
소수서원/경북 영주
남계서원/경남 함양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필암서원/전남 장성
도동서원/대구 달성
병산서원/경북 안동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서원의 구조는 조선 최고의 교육 기관인 성균관과 같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좌우에는 동재, 서재라고 해서 학생들의 기숙사가 있고 중앙에는 학문을 논하는 명륜당이 있다. 또 서원 맨 뒤에는 성현을 배향하는 공간이 있다. 서원마다 정몽주, 김종직처럼 각자 존경하는 인물을 따로 모신다.
한국의 서원은 구조적으로 사찰과 유사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학문함을 통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완만한 오르막 형태로 짓는다. 불교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09. 인물/이성계
본관이 전주(全州)라 하여 궁금해서 검색했어요~

이하의 출처는 네이버입니다.
이성계의 조상분이 전주 이씨입니다.
전주 이씨의 시조는 고려 중후기 ‘이한‘ 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한의 17대손이 바로 이성계의 고조부에 해당되는 ‘이안사‘ 입니다.
본래 이안사는 20대까지 전주에서 살았으나 당시 무신정권과 여몽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함경도 원산으로 이주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안사의 고손자로 태어난 인물이 바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입니다. 후일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이안사는 목조의 묘호를 받아 왕으로 추존되었다고 합니다.

맹장보다는 덕장으로 불렸는데 국왕이 된 이후에도 이런 모습은 계속됐다. 사람을 한번 신뢰하면 든든히 뒷받침을 해주는 리더십으로 혁명의 많은 인재가조선 개국 전후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하지만 세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과 아들 이방원의 저돌적인 도전에 의해 왕자의 난 이후 권력을 상실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