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ㅣ 옥성호의 부족한 기독교 3부작 시리즈 2
옥성호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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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독교는 세상과 세계관이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다. 때문에 보는 시각과 하는 생각이 완전히 반대다. 그것은 서로 공방이 오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것은 둘 사이에 합일점이 있을 수 없는 이유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의 특정은 합일점을 찾는 순간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독교(정확하게는 개신교)가 불신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교회 = 기업 / 목사 = 사장'이다. 그것에 대한 변명은 거두고 믿지 않는 이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 보면 교회의 구조가 기업과 동일하고, 활동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은 이윤 추구, 즉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 섬김과 교제를 목적으로 하는데서 다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아무리 기독교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부인할지라도 '시각을 달리한다면' 아무 소용 없는 변명이다.

 오늘날 교회는 다른 시대와 견주어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각 시대를 상대적으로 봤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앞선 시대를 절대적 위치에 놓고 본다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더 화려하고 비대해졌다.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하던 교회는 매시대마다 곧 역기능으로 돌아섰다. 지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교회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 드러난다.
 그때마다 교회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모든 것을 부인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자정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 많이 부뎌진 것 같다. 그것이 발동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하나?

 교회는 신자 늘리기와 신자 빼앗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물론 거룩한 취지로 이야기 한다면 더 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목사들의 추임새 - 물론 흔히하는 말처럼 일부, 어느 목사의 이면에는 금전 지향성과 권력 지향성이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에 동조하여 맹목적으로 단순히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기 위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여기서 늘 따라 붙는 변명은 '인정하는 바이나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을 한들 돌아선 인심을 돌이키는 것은 한 사람을 구원 받게 하는 것 만큼이나 힘들다. 어쩌면 그보다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 내에 팽배한 마케팅 지향성을 고발한다. 마케팅에 대한 사회적 정의와 그 목적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교회에 수입 되었는지 분석한다. 전작에서 발휘된 저자의 날카로운 필치가 여전하다.

 많은 교회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많이 교회로 불러 들일 수 있을지 고심한다. - 그것의 이유는 위에서 설명 했다. - 그러나 그것은 난립하는 교회 수만큼 그리고 닫혀 버린 사람들의 마음과 비례해  상당히 힘든 일이다. 때문에 교회가 찾은 방안은 기업에서나 쓰는 마케팅 도입이다. 저자는 그것의 시작을 미국 교회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미국 교회들을 위시한 한국 교회들에 보편화된 일이다. 만연된 그 일의 시작은 좋았지만 무지몽매한 신도들에게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목사들의 책임으로 순수한 원목적이 많이 퇴색 되었고, 급기야 무분별하게 자행 되고 있다.



 이 책은 애석하게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따갑게 느껴지는 동시에 균형감이 떨어진다. 철저히 한 쪽의 입장에서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기에만 급급했지 균형잡힌 입장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 이는 저자의 신앙관으로 인한 결과로 생각 되어진다. 저자의 신앙관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이해는 간다.
 어쨌든 가장 애석한 점은 우리 한국 교회를 위한 책임이 분명함에도 우리 교회(우리 교회 내 교회로 구분한다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분석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 교회가 미국 교회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기에 그 모습 또한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미국 교회를 알면 우리 교회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할 뿐이다. 그들의 현상과 우리의 현상이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민족적 정서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행동 패턴에 완연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위 '미국 교회 까기'에 몰두한 것은 어쩌면 한국 교회(특히 대형교회)를 공격 했을 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 된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한국 교회의 보수성과 부족함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발언이 된다.



 복음을 상품화 시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한국 교회에 자성이 필요하다. 복음의 가치를 다시 제자리로 살려야 한다.
 마케팅이 좋은 뜻으로 도입 되었을지라도 많이 변질된 현재에 그것을 시금석에 견주에 잃은 목적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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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bum 2008-07-2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확히 어떠한 것을 균형감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 - 영어 학습자가 알아야 할 영문법의 모든 것
최인철 지음 / 사람in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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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시중에는 너무나 많은 영문법 관련 서적들이 즐비하다. 어느 것을 봐야 할지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 책을 받고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무겁다’ 였다. 두께가 두꺼워서(600 페이지가 넘는다.) 그렇기도 하지만 왠지 같은 두께의 다른 책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느낌이다.

 하얀 바탕에 붉은 색 제목. 뭔가 있어 보였다.

 이 책의 제목은 실용 영문법 백과사전이지만 저작 목적은 문법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어를 위한 책이다. 실제로 쓰이는 표현에 대한 어법 설명과 예문을 실었다고 ’책의 목적 부분’에서 밝히는데 그 효과는 글쎄, 학습자의 태도와 책을 얼마나 활용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책의 두께만큼 내용 또한 방대하다. 구문편, 품사편, EFL 이중언어 모델, 어휘편, 발음편. 총 5 섹션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목과 달리 문법만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구문편과 품사편을 보면 백과사전을 표방한 만큼 정말 많은 문법에 대해 설명한다. 각 설명마다 예문이 있어 이해를 돕는다. 다만 예문 분석이나 이해를 돕는 자세한 설명 없이 간략한 법칙만 나와 있어 아무 것도 모르는 학습자가 혼자 보기에는 약간 힘들지 않을까 싶다.

 흥미로운 것은 ’EFL 이중언어 모델’이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계속 크게 강조 되었고 중심 이론이 되어 버린 기존의 언어 습득 이론과 약간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어 흥미롭게 느껴졌다. 다만 이 또한 아쉬운 것은 자세한 언급 없이 맛보기 식으로만 소개하고 끝난다는 점이다. 그것은 지면의 한계와 이 책의 목적은 그것을 소개하기 위함이 아님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한다.

 이미 반을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았다. 어휘편, 발음편이 남았으니 말이다.

 백과사전이라는 말답게 정말 별걸 다 소개한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자세한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도움은 받았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구문편과 품사편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소개하려다 보니 충분한 이해를 돕는 설명이 생략 되었다. 아무 교수님이 강의하실 때 쓰시도록 교재용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휘편과 발음편 등을 위해 CD가 함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면 책값이 상승하여 구입에 더 부담이 갔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백과사전과 같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표방한 만큼 다른 문법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많은 것들을 다룬다. 그렇다고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지고 있다고 해서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학습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이다.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앞서 언급 했듯이 학습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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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의 심리학 - 감정적 협박을 이기는 심리의 기술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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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학은 1879년 독일의 분트(wundt)에 의해 새로운 학문으로써 그 기틀이 마련 되었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심리학은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양으로 세분화 되었고, 발전하였다. 과학이 발달 할수록 심리학의 입지가 줄어들 것도 같지만 오히려 심리학은 그 만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많은 비밀을 캐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소우주라 불릴 만큼 방대하고 오묘해서 그것의 완전한 정복은 아직도 멀게 느껴진다. 뇌에 대한 연구 못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가 인간의 심리분석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의 심리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경제와 사회 그리고 과학 등이 고도화 되어 인간의 심리도 고도화, 안정화를 찾을 것 같지만 오히려 불안정해지고 있다. 문명의 고도화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고도화와 동시에 수많은 모순과 병폐가 일어나 인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인간의 심리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심리학은 참으로 재미있다. 우선은 어느 분야에든 자리를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억심리학,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상담심리학, 생물심리학, 아동심리학, 임상심리학, 조직심리학, 청소년심리학, 학습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긍정의 심리학, 부모의 심리학, 선택의 심리학, 설득의 심리학, 소비의 심리학, (이 책의 제목처럼) 협박의 심리학 등과 같이 학문적 분야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 책 '협박의 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 서적의 계보를 잇는다. 다른 심리학 서적들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실용서로써의 기능을 한다.

 '협박의'라는 단어로 두 가지 내용이 추측 가능하다. 그것은 내가 남을 협박하는 이유와 심리. 또는 남이 나를 협박하는 이유와 심리이다. 이 책은 후자의 경우를 다루고 있다. 즉 비해자로서의 나. 당하는 내가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가해자의 심리와 그의 영향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본문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고, 그 아래 총 11장의 내용이 담겨 있다. 
 본서에서 다루는 협박자의 유형은 네 가지로 처벌형, 자해형, 비해형, 보상형 협박자이다. 각각의 협박자는 우리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반드시 취하게 만든다. 그것은 고도의 심리적 계산이 깔린 것이지만 의식적인 계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면서 몸에 밴 습관에 의한 것이다.

 협박자의 유형은 네 가지이지만 그들에 대한 대책은 동일하다. 그것은 바로 'SOS'로 1단계 '멈추기', 2단계 '관찰하기'이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대안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안개 극복'이다. 그 대안들은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솔직한 표현으로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알면서도 어떠한 이유에서건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물론 몰랐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을 제시할 때 뭔가 거창한 것을 내놓는 듯 말을 하니 잔뜩 기대하면 실망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안은 제시되어 있으나, 방법은 제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지면의 한계 때문인지, 노하우를 공개하면 소득 감소가 우려 되기 때문인지 모르나 -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참을 수 없는 은근한 협박, 가슴을 조금씩 옥죄는 협박에 당해온 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아무리 유명한 격언과 속담 등이 나를 감동시켜도 정작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실행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대안들이 모두에게 효과적일 것이라 장담은 못하지만 실행해 본다고 손해볼 것은 없을 듯 하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마냥 당하는 것보다 시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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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언어 - 하늘문을 여는 열쇠
김우현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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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너무나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무척 길어질 것 같아 몇 가지만 짚으려고 한다.



 이 책에 나타난 은사를 사모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한 가지 은사에 집착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주시지 필요없는 은사를 주시지는 않는다. 각 은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안에서 각 성도들을 사용하실 때 각자에 맞게 주시는 것이다. 각자의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코 각자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방언이 제일인 양 방언을 계속 강조한다. 한 마디로 방언제일주의이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말씀을 연구하는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도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는 과오 범하는데 말씀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지 않는 한 성도가 말씀을 얼마나 엉뚱하게 해석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우리는 지성이 있고, 심령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그분을 통하여 말씀의 비밀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기도 가운데 심도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깊이 연구해 보지도 않고 자기 체험에 비추어 말씀을 오역하는 사례의 전형을 보여준다. 말씀 변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 고린도전서 14:4

 이 구절을 "나는 방언의 은사가 '개인의 덕을 세우는 것'임을 강조했다." 라고 말한다. 즉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바로 앞 구절을 보자.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 고린도전서 14:3

 그리고 그 뒷부분을 보자.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 고린도전서 14:5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시대적 배경과 심정을 모른 채 앞뒤 구절을 살펴본다 하더라도 결코 방언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 고린도전서 14:5

 한 절의 전체 문장에서 앞부분만 뚝 떼다가 "바울은 초대교회 교인들 모두가 방언하기를 권했다." 라고 일축한다. 참으로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성경 변개지 않고 무엇인가? 어느 한 부분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계속 그러기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또한 부흥은 믿지 않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고개 숙여 철저한 회개를 통해 구원 받은 성도로 거듭난 사건과 믿는 성도가 하나님을 떠나 살다 회개를 통해 다시금 주께 돌아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지 믿는 성도가 여러 은사 중 하나에 불과한 방언을 한 자리에서 떼로 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부흥의 중심에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저자 김우현은 많은 이들이 동시에 방언을 받았다 하여 그것을 부흥이라 칭한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며 호도이다.



  물론 그의 체험이 정말로 성령님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을 근거로 체험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혹 말씀을 근거로 해석했다 하더라도 잘못 해석한 말씀을 바탕으로 체험을 자기 임의로 추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기독교는 결코 신비주의 종교가 아니다. 체험주의 종교도 아니다. 오직 말씀 위에 서서 말씀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느끼는 종교이다. 그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 초대 교회는 신비주의적 이단들과 싸워왔다. 그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정수가 오늘날에 전해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동일한 문제인,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떼어다가 마음대로 해석 했다는 것이다.



 허튼 사건으로 어린 성도들을 미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부분이 전체인 양 동일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처음 언급 했듯이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각자에게 다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한 채 한 가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내 의견 또한 절대성이 없기 때문에 부디 읽는 이들이 날카로운 분별력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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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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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요한복음 3장16절(이하 3:16로 표기) 은 성경의 핵심이자 요약문이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기독교를 설명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구절이다. 만약 누군가 성경의 말씀 중 가장(가장이라는 단어는 어폐가 있지만) 중요한 구절 단 하나만 제시해 달라고 한다면 이 구절이 언급될 것이다. 실제로 복음 제시 때 항상 언급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하나님(이하 읽는 분들을 고려하여 신이라 표기)은 인간들을 창조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의 관점에서 타락 하였다. 그럼에도 신은 인간들을 매우 사랑한 나머지 그들을 용서하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그의 한 몸, 아들이라 칭해지는 자를 이 세상 가운데 내려 보냈다. 신의 논리에 따라 그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게 하였고, 마침내 그를 통해 인류와의 화해를 이루어 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기독교 성경의 줄거리이고, 그것을 다시 압축한 것이 요한복음 3:16의 내용이다. 성경을 다 몰라도 위의 한 구절만 정확히 이해한다면 기독교의 중심 줄기는 이해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요한복음 3:16절에 대한 책으로써 그것을 신학적으로 분석한 책은 아니다. 그 구절과 관련 네 가지 대주제 - 1. 사랑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2. 사랑하는 만큼 헌신한다 : 독생자를 주셨으니, 3. 믿는 만큼 전도한다 : 그를 믿는 사람마다, 4. 내 생애 최고의 축복 :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를 통해 신이 인류에게 준 것들과 그에게 우리가 얻은 것들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 설명한다. 자신이 겪은 일들이나 누군가 겪은 일들을 차용하여 각 주제를 이용하는 것을 돕는다. 때문에 내용 이해가 쉽고, 크게 지루하지 않다. 미국 기독교계에 소문난 입담가인 저자의 양념 버무리는 솜씨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저자인 맥스 루케이도는 미국 서점가에서 상당한 파워가 있는 작가이자 목회자이다. 그는 수십 수백만의 고정적인 독자를 거르리고 있다. 그렇기에 써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매우 유명하고, 그의 책은 나오는 족족 잘 팔린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될만한 책인가? 팔릴만한 책인가?이다.

 이 책에는 독자들의 찬사가 무려 20여개나 실려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글, 그의 책에 수많은 독자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책이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기독교인에게 진리는 오직 성경 말씀이다. 기독교인은 성경책을 세상 그 어떠한 책보다 가장 많이 읽어야 하고,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신 여러 유명 작가의 글은 항상 읽고 열광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정작 그들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은 옆으로 밀어둔 채, 그들이 열광해야 할 성경책은 일주일 중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 시 잠깐 펼쳐보는 것으로 그치면서 유명 작가들의 책은 항상 본다니. 좇아야 할 것은 좇지 않고, 엉뚱한 것을 쫓고 있는 우스운 꼴을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글솜씨는 대단하다. 때론 동화 같아서 우리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고,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성경 말씀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알기 쉽게 풀어준다. 이는 자칫 중심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답을 찾기 위해 이용한 공식으로 인해 엉뚱한 답을 찾아내거나 답은 찾지 못하고 문제 풀이로 헤매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씌어진 책이 오히려 진리 행세를 할 수 있다.

 소위 유명 작가들의 책들이 다 그렇다. 성경의 말씀을 잘 알고있는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말씀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는다면 말씀을 엉뚱하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린다. 한 마디로 옥석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의 말은 너무나 유려하고, 대개의 독자들보다 더 뛰어난 논리력을 가지고 있어 자칫 오류를 바른 것으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도 전자의 입장이거나 그런 것들을 다 신경 안 쓰고 내용을 즐길 사람이라면 마음껏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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