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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바로보기 - 감추어진 이슬람 1500년 역사를 찾아서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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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교는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이다. 미국종교전문사이트인 dherents.com 에 따르면 현재 이슬람교인의 수는 15억 명이다. 21억 명의 신자를 갖고 있는 기독교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더불어 현재 전 세계를 향한 대대적인 선교 활동을 진행 중이다. 특히 한국에도 점진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캠퍼스를 비롯하여 일반으로 향한 그들의 포교 활동은 왜곡된 아랍 문화를 재인식시키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AD 622년을 원년으로 하는 이슬람은 그들의 선지자 무함마드(영어식으로 마호메트)에 의해 AD 610년 경 시작 되었다. 그 후 당시 세계(지중해)를 지배 했던 기독교와 자웅을 겨루는 종교로 발전하고, 그 세가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AD 732년 카를마르텔에 의해 유럽으로의 진격이 저지된 이슬람교는 오늘날 다시금 유럽을 향한 진격을 시작하여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의 상당 부분을 이슬람화 시켰고, 아직도 진격 중에 있다.

 

 '이슬람 바로보기'

 

 이 책은 무함마드 탄생 이전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의 이슬람과 중동의 역사와 정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슬람이 탄생하기 전 지중해 연안과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적 상황이 어떠  했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무함마드에 의한 이슬람 탄생과 그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이슬람의 긴 역사와 오늘날 복잡한 중동의 정세를 담고 있다. 1400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의 긴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잘 요약하고 있는 이 책은 이슬람의 긴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보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특히 이슬람의 역사를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된 시각이 아닌 중도적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어 이슬람의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살펴보기에 좋다. 다만 아쉬운 점은 내용이 역사 중심이기 때문에 이슬람의 찬란한 문화는 거의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읽어 본 이슬람에 관한 책은 (각기 서술 목적과 성격이 다른) "마이클 모건, 잃어버린 역사, 이슬람", "야민 말루프,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이다. "류모세, 이슬람 바로보기"는 이슬람과의 네 번째 만남이다. 다른 책들이 이슬람의 특정 역사와 지역에 국한하여 서술 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중동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의 전 역사를 담고 있다. 다른 세 책을 통해 나무를 보고, 이 책을 통해 숲을 보게 되었다. 그것들이 상호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 나에게는 유익했다.

 

 세계는 아직까지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그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로 인해 세계의 역사는 그들을 중심으로 기록 되었고, 기억 되고 있다. 이 말은 그 외의 다른 지역의 역사는 무시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양의 역사 - 특히 유럽 - 는 기독교의 역사이다. 그 역사는 단지 그 속에 속한 국가들만의 교합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축으로 하는 서양의 역사는 이슬람을 축으로 하는 중동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서양의 역사는 중세는 물론 근대와 현대까지 그 둘의 대립과 충돌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를 모두 이해해야 서양사를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에 유럽은 매우 낙후된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중동은 강한 군사력과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특히 유럽의 찬란한 문화는 십자군 전쟁을 통한 이슬람 문화의 수탈과 유입으로 이루어 진 것을 생각하면 이슬람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 볼 만 하다. 그러나 이슬람의 역사는 서양에 의해 상당부분 왜곡 되었고, 감추어졌다. 따라서 이슬람의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면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중동은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와 역사 가운데 오일 파워 등을 통해 무시 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과 이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이는 국가적인 차원이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오늘날 이슬람교와 그 문화가 빠르게 이 나라에 유입 되고 있는 지금, 그들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적 차원에서 맹목적인 반대와 무시, 또는 비종교적 차원에서 무관심으로 그들을 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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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성숙의 비결 - 당신의 가정도 변화될 수 있다
정동섭 지음 / (도서출판)이든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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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는 세상 어느 관계보다 가장 친밀하고, 은밀한 관계이다. 부부는 어느 누구보다 세상을 더 오래, 더 많이 함께 공유하는 동반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관계를 축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저주로 만든다. 누구보다 사랑해야 할 두 사람이 누구보다 미워하고, 저주하고 싶은 사이가 되곤 한다. 부부 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현대 사회는 전문화 되고, 분업화 된 사회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것들을 전문 기관에서 가르친다. 사람들은 자신의 발전과 이익을 위해 그러한 기관에 등록하여 실력을 갈고 닦는다. 그런데 갈고 닦아야 할 것 중 상위에 있는 결혼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결혼에는 참으로 무신경하다. 결혼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하면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결혼과 가정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원만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없다. 온전한 가정을 만들 수 없다.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에서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결혼과 가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웠다.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그 관계의 유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됨에 따라 결혼 관계와 가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배움이 사라졌다. 따라서 많은 부부가 결혼에 대한 아무런 경험과 지식이 없이 그것에 임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결국 파행으로 치닫곤 한다. 가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파괴한다. 그것이 대물림 되어 자식에 영향을 미치고, 자식들은 또 다른 파국을 맞는다. 악순환의 반복이 끊이지 않는다.

 

 '부부성숙의 비결'

 

  이 책은 남성과 여성의 이해를 다루고 있다. 가정의 유지 방법을 가르친다. 부부성숙의 교과서라고 칭할 수 있다.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미혼, 결혼, 가정이다. 1부 '결혼은 아름답다'에서는 남녀의 차이와 결혼 준비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다음 2부 '부부는 서로 섬겨야 한다'에서는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3부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에서는 자녀의 자아 형성 방법을 가르친다. 각각의 내용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이론적이며 분석적이다. 그렇기에 지루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녀의 차이, (성을 포함한) 부부 관계, 가정 유지, 자녀 양육 등의 실제적 근원에 대해 종합적으로 배울 수 있어 많은 유익이 있다.

 

 부부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형성된 관계이다. 그만큼 어느 관계보다 축복 되고,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러한 관계를 쉽게 대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 관계에 임한다. 그렇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갈등을 빚는다.

 부부 성숙과 더 나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배워야 한다. 배우기를 거부하거나 더디 하면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이 시대에 그것을 온전히 유지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고, 남녀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나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릴 때 비로소 부부 성숙의 발단이 마련된다. 서로의 합이와 노력이 이루어질 때 온전한 가정 형성의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부부 관계와 가정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 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부부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일꾼이요, 가정은 그분의 일꾼을 길러내는 양육터이다. 곧 가정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시작되는 곳이다. 그러한 부부 관계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가꾸어 나갈 때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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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철학, 답하는 종교
하카리 요시하루 지음, 김청균 옮김 / 어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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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기원은 고대로 본다. 반면 종교의 기원은 - 그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지만 - 그보다 훨씬 이전인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둘의 탄생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둘은 상당히 오랜 시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철학은 인간과 신, 즉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와 달리 종교는 그 문제에 대해 답을 했기 때문이다. 존재와 가치에 대해 종교와 철학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종교는 근원을 제시하였고, 철학은 그것을 음미하였다. 그에 따라 둘은 서로 맞서는 양상을 보이곤 했다. 서로 상반된 입장을 통해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였다.

 철학은 물음을 전제로 하고., 종교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서 물음이 없는 철학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고, 믿음이 없는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불확실한 이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묻고, 종교는 무엇을 답하고 있을까? 

 

 '묻는 철학, 답하는 종교'

 

 이 책은 종교철학입문서이다. 명확한 방법론에 따라 종교철학을 규명한다. 저자는 종교철학을 '인간적 현실의 과제와 그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탐구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과제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과제로부터의 방법이다. 전자는 다시 과제로 가는 방법, 후자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칭한다. 따라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는 종교철학의 과제로 가는 방법을 탐구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과제로부터의 방법에 관해 검토한다. 그것을 위해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수단으로 삼는다.

 본문에서는 그 세 종교의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종교철학의 과제를 풀어나간다. 따라서 세 종교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면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종교철학의 과정과 방법을 맛볼 수 있다. 

 

 중세에 서양에서 종교와 철학은 기독교 신학의 권위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신학자 다미아니는 철학을 신학의 시녀라고 표현하였다. 철학은 신학에 종속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시의 신학, 기독교의 권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신학은 모든 것을 규정하였다.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고, 통제하였다. 그에 반하면 이단자로 처단하였다. 종교의 수단에서 그 자체가 진리가 되어 버렸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종교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철학은 그렇지 못하다. 종교는 진리를 믿고, 철학은 그것을 의심한다. 따라서 종교는 답을 하고, 철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종교든 철학이든 자신의 역할을 벗어나 진리 그 자체가 되면 결국 진리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의 삶에 구제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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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3판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3
E. H. 카 지음, 권오석 옮김 / 홍신문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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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는

 

  "인류 사회의 흥망과 변천의 과정. 또는 그 기록"

 

이라고 한다. 저명한 역사가인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라고 말했다. 기존의 역사가들의 역사에 대한 견해를 비판하는 말이다. 정치인이자 사학자였던 카는 그 책 - '역사란 무엇인가'는 카가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 연속 강연을 하나로 묶어 출판한 책이다. - 에서 역사가들의 기존의 관점을 반박한다. 그것을 통해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 준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역사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읽고나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얻게 될 것이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 (반박의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반복 된다는 말과 같이 - 역사는 미래의 이정표이다. 그것은 미래의 단초를 제공한다. 역사에는 역사가에 의해 가치가 있다고 판단 되어 선택된 내용만 담기지만 어쨌든 그것은 미래를 대비하고, 설계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니 미래를 대비하고, 설계 하기도 전에 어쩌면 역사에 의해 미래가 결정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를 역사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래는 역사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투영이라고 본다. 미래는 역사의 영향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역사가 미래를 100%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개인이든 국가든 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역사를 절대적으로 바라 볼 수는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이 상대적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대함에 있어서 최대한의 합리적 기준과 보편성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현재를 살아갈 때에 보다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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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의 세계사
김희보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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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정은 가장이 이끈다. 한 국가는 수장이 이끈다. - 물론 당연히 가정과 국가의 모든 행사에 대한 계획과 결정을 그 한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니다. - 그렇다면 세계는 누가 이끌까? 표면적으로는 여러 나라 중 몇몇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강대국이 세계의 흐름을 주도한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집단이 존재한다.

 

 비밀 결사라 하면 아마 암살, 폭력 집단이 가장 먼저 연상 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어쌔신이나 닌자, 마피아와 야쿠자 등과 같은 집단 말이다. 그 외에 댄 브라운의 소설로 세계적으로 더욱 알려진 성당기사단 같은 집단이 연상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집단들은 비밀 결사 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두터운 베일에 사려져 있고, 모든 음모론의 중심에 있는 비밀 결사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일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이 집단들은 세계를 전복시키려는 야심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모론의 가장 중심에서 세계를 통합, 지배 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비밀 결사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 되었다. 한 사회에는 항상 한 개 이상의 비밀 결사가 생겨났다. 그것은 종교와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하였다. 종교적 비밀 결사는 자신의 종교를 수호하거나 다른 종교를 - 과장하면 - 박멸하기 위하여 생겨났다. 정치적 비밀 결사는 자신들의 입지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결성 되었다. 어떤 비밀 결사는 선한 목적으로 결성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처음의 마음이 사라지기도 했고, 또 다른 비밀 결사는 처음부터 좋지 않은 목적을 갖고 있었다. 모두 시작은 다르지만 결국 공존과 상생보다는 독존과 군림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게 된 것은 동일하다.

 

 그러한 비밀 결사의 존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무조건 나쁘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어느 부분은 좋게 봐주어야 할까? 비밀 결사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몫이다. 우리의 몫은 비밀 결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몫은 그것의 존재와 그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다. 왜냐하면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비밀 결사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비밀 결사의 존재는 뿌리가 매우 깊다. 그것은 인류 역사 곳곳에 관여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를 비밀 결사가 주도 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진정한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없다. 드러난 역사의 흐름 이면에 있는 비밀 결사의 역사를 이해할 때에 진정한 역사의 흐름을 알 수 있다. 물론 비밀 결사는 흑막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그 존재와 역사를 쉽게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반드시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알면 역사 인식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역사를 좀 더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 작은 대비가 가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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